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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Nov 02.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29

선거를 앞두고 성훈은 시간을 더욱 세밀하게 쪼개서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은정의 전화를 받고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차를 몰았다.


"은정씨, 제가 바빠서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정말 미안해요."


"성훈씨 하고 계신 일이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그건 이해해요."


"그건 이해가 된다고 하면, 은정씨가 제게 이해가 안 되는 어떤 게 있다는 말로도 들리는데요. 제 해석이 맞나요?"


"네.."


은정은 잠시 머뭇거렸다. 2월의 햇살이 차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서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성훈씨, 우리는 무슨 사이예요? 친구인가요, 동지인가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요?"


의미심장한 질문 속에 담긴 은정의 혼란스러운 속마음을 성훈은 금세 알아챘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시작한 연인 사이죠. 은정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연인~ 아~ 그 말 하나로 충분한 거 같아요."


성훈의 입에서 나온 '연인'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은정은 깨달았다. 앞으로 닥쳐올 시간들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따위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설령 성훈과 결혼을 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님을 은정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은정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남자의 와이프라는 자리가 아니다. 한 남자를 마음껏 사랑하고 그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다.


"그럼 우리에겐 매우 열심히 사랑하는 일만 남은 거네요. 성훈씨는 내가 성훈씨를 어떻게 사랑하기를 원하나요? 가령 뜨겁게, 아니면 쿨하게? 아이처럼, 아니면 어른처럼? 어떤 사랑을 원해요?"


조금 편안해진 목소리로 은정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성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은정의 시선을 느끼며 성훈은 한적한 곳으로 차를 세웠다.


"은정씨가 나를 향해 갖는 모든 마음의 빛깔로 사랑받고 싶어요. 나의 직업이나 일 따위 상관하지 말아요. 은정씨는 처음부터 나를 그냥 남자 주성훈으로 대했잖아요. 그렇게 계속 대해줘요. 나는 은정씨 앞에서 그냥 하나의 남자일 뿐이고 싶어요. 언제까지나요."


성훈의 오른팔이 은정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사이, 성훈의 입술이 거칠게 은정의 입술 위로 올라왔다. 남자의 부드러움과 거침의 이중성이 여자의 환상과 쾌락을 얼마나 재빠르게 증폭시키는지, 그것을 제공하는 남자는 알 수 없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 속에 부서지는 2월의 햇살 속에서, 여자는 존재의 기쁨과 쾌락의 동질성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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