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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Nov 25. 2022

노바 아페리오(Nova Aperio)

AI(인공지능)만 데이타가 풍부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인간의 두뇌로 측정이 불가한 분야에서라면야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위하여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서 활약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진 내 집 방불과 가스불 정도는 끄고 다닐 만큼의 정신은 유지하고 있으므로 나의 일상 속에서 AI는 그다지 실효성이 없는 편이다. 이 말에 대해서조차 누군가는 내게 반박할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는 입장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일개 아줌마의 의견은 대충 그렇다 치고 AI만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나의 입장으로 돌아가 본다면,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산 경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경제력과 상관없이 삶의 데이터가 풍족할 수밖에 없기에 그러하다. 어디엘 가도 사람들보다 한 번도 우세한 자리를 점유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나를 그저 만만한 일개 아줌마로 실컷 내려다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언제나 하수 중의 하수였다. 고수는 상대가 그 누구라도 결코 그를 내려다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수니 하수니 하는 말이 존재하긴 하지만, 나는 그런 말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분류법에도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부득이 그런 말로 설명해야 할 때가 반드시 생기곤 한다. 사람의 이해력이 다 비슷한 지성의 경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해력은 반드시 지성의 경지에서만 논할 수만도 없는데, 거기엔 타고난 품성과 노력하는 삶의 태도가 결부되어 작동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잘난 체 떠들고 있는 나도 오십여 년 인생을 뒤돌아보면 낯 부끄러운 실수들도 많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때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한 겹 한 겹 내 삶을 쌓아 올리면서,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칭찬할 때도 제법 있다. 인간 존재란 무릇 제 삶이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배워야 인간이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 암기나 휴대폰과 키오스크 작동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매일 눈 뜨면서도 내가 오늘 만날 사람들과 진실되게 잘 지내는 것, 그것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삼십 년이 되어가는데, 나는 대학 때는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던 선배 후배들과 동문회를 십수 년째 해오고 있다. 올 해는 집행부의 임원진도 아닌데도, 또 결국 정에 이끌려 송년 모임 준비팀에 끼어들고야 말았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모임 준비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 임원들의 요청을 두세 번 거절하기도 어려워서 시작된 나의 개입은, 누구라도 예측이 가능하듯이 모양새와 결과가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거절해야 할 때는 칼같이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깨우쳤다.


하지만 이것을 돌려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닌 것이, 도라지라는 인간이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조직에 포함되어 움직일 때는 개인의 성과와 남들의 인정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타입이라서다. 그래서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공공의 일을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재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말인즉 어떤 이는 돈 안 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두의 선"이라고 불리는 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성취하는 데서 매우 큰 즐거움을 느끼는 DNA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아마 유시민 작가도 그러한 성정의 사람이지 싶다.


하나의 사태가 "두둥~"하고 던져지면, 내 머릿속에선 AI처럼 즉각적으로 데이터 값들이 모아지고 실행 체계가 구성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는 하나의 그 사태를 해결해버리고야 만다. 아마 문제에 대한 이 해결 속도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2~3배 빠르게 걷는 속도만큼이나 신속한 편이다. 대체로 큰돈이 오고 가는 계약이나 신중하게 성패를 따져봐야 할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일들은 미루지 않고 즉각 처리한다. 그래야 그다음의 일들을 또 할 수가 있다.


죽음이라는 극한의 슬픔에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의 정서와 사고로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일들--일례로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언니와 구순을 바라보는 늙은 부모님이 함께 생활하는 '긴급구호 대상' 버금가는 기이하고 서글픈 가족의 동거 형태--을 겪으며 살다 보니, 세상 사는 이치와 돈의 이치와 사람 사이의 이치 안에서 가늠되는 일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하는 것도 같다. '이치(理致)'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동문회를 준비하며 참모들의 소통을 위한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있던 일이다. 선물로 나누어줄 수건 박스인쇄될 충북대 로고에 적혀있는 문구에 대한 설명을 붙일 때였다. 현재 충북대학교는 청주시 개신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신(開新)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연다'는 뜻이다. 라틴어 Nova Aperio는 '새로운 것을 깨우치고 펼친다'는 뜻이라고 하니, '개신'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노바 아페리오'의 뜻도 모르고 '개신동'에서 해마다 '개신 축제'를 열고 있는 충북대학교를 졸업한 걸 사죄하는 마음으로 몇 글자 자학적인 문구를 올리자, 동기가 "말이 길면 쓸데없다"라고 내게 일침을 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 단톡방에서 나는 바로 이십여분 전에 하나의 일을 순식간에 해치웠었고, 나의 일처리 속도와 해결 방식에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기분이 언짢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성질 못 이겨서 신속하게 일처리를 진행한 것은 나의 꼴값이었고, 그 일은 그렇게 순식간에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재수 없게 로고 문구의 뜻을 적어달고 인생 반성 퍼포먼스 문장까지 달았으니, 누군가에겐 한참 재수 없는 꼴로 보이기 딱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단톡방에서 또 주제넘게도 후배에게 진심 어린 충언까지 해댔다. 어차피 나의 사유의 진행 방식과 나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남들 보기에 적당히 거리감 있는 관계 유지는 하고 살겠지만 그는 결코 나의 친구는 될 수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언어의 조절 능력은 감정의 조절 능력이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과 새로운 마음을 열고 사는 그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노바 아페리오"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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