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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Dec 23. 2022

동문회 준비 일지 4

어디서 좀 굴러먹던 놈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창문의 크기가 크거나, 혹은 여러 개의 창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그 단순한 비밀을 이해하고 만물에 적용시키는 게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여럿이 모여있는 무리 속에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며, 고요한 빗물처럼 스며들어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자기만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창문을 가지고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 위에서 군림하려는 특성을 보이곤 한다. 소위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이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구태여 나를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지 않고도 살아남았다.


'그래, 네가 나보다 훨씬 더 잘났으니, 나 같은 사람은 경쟁자로 바라보지도 말려무나.'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나를 한없이 낮추어 지내곤 했다. 사람의 존재값은 수면 위로 연꽃이 피어오르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는 점이 조금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내 존재값을 은폐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제껏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제1 원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무리들 속에서 상대의 존재값을 띄우며 살았던 '나'라는 인간에 대해 그 누구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정확하게 내 존재값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찾아오고야 다. 상대를 단순히 본인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하여 "수단"화하는 경향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의 무리를 지어 움직일 때, 그 무리에 맞서는 길은 '은폐'가 아니라 '돌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과감하게 고개를 들고 내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친구들 모임이든 동문회 모임이든, 혹은 거추장스럽지만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회의 기타 조직에서든, 언제나 가장 나약하고 볼품없는 정신의 소유자들이 자신을 요란스럽게 포장하여 목소리 지분을 많이 갖는다. 그들과 비슷한 정신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혹자들의 그러한 포장에 격하게 호응하며 대단한 인물로 추앙하기도 하는 리액션을 버라이어티하게 구사하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기도 다.


지역에서 참으로 흔하게 있는 일들이 선거캠프의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나 정책팀에 여러 번 합류하는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정치판의 뒷모습을 엿본 적이 있던 나는, 비록 십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고인이 되신 백기완 선생님의 공연을 1493석이나 되는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성공적으로 마쳤기획자이기도 하였다. 물론 몇 해전 유명을 달리한 유초하 교수님과 공동기획을 했던 건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모 기관에서 발행하는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기획하고 사진 찍고 글을 써서 인쇄소에 넘기는 일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수행해 본 적이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했던 일들을 주욱 나열하고 보니, 남편의 말대로 참 돈 안 되는 일들만 하고 살아온 게 맞는구나 싶어 진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내가 하는 일에 관해 시시콜콜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내 가족까지도 나의 정체를 온전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에게 일이란 "그저 재밌으니까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일들을 통해 대단한 수익을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누구에게 떠벌려서 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시켜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숨어서 일을 하던 버릇이 동문회에서도 똑같이 발휘되다 보니, 동문회에 계신 선배님들조차 나라는 인간에 대해 너무 띄엄띄엄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똑같은 줄에 서서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들려오면, 내가 그 누구 못지않게 이런저런 일들을 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동문회 TFT의 임원진들도 내게 주는 시선이 다르지 않았다. 십오 년 동안 동문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을 거라는 그 부분에 대한 신뢰조차, 동문회에서 가끔 보았던 현재 총무 외에는 다른 임원들은 내게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였다. 동문회 행사 날짜는 자꾸만 임박해오는데 아무런 일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TFT 조직에 첫 발을 담갔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노역자의 삶"에 가까웠다. 부려먹을 노역꾼을 한 명 섭외해 온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임원진들의 저 고고하고 느릿한 심성으로는 이 행사를 제대로 치뤄내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일머리를 알고 있는 내가 서둘러 하나씩 직접 일을 처리하다가, 급기야 어느 날엔가는 나의 노역이 정당한 예우를 받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러다가 사회자 대본과 사회자가 진행해야 할 퀴즈의 문제까지 내가 직접 작성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직접 아이디어 내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노역자 같은 놈 따로 있고, 무대에서 박수받고 얼굴로 인사하는 놈 따로 있다는 게 어딘가 석연치가 않았다. 결국 밥숟가락까지 떠서 얼굴마담인 사회자의 입에 넣어주어야 할 판이라면 이 판은 무언가 불공정한 판이라는 생각에 나는 사로잡혔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내가 직접 만들어 준 모바일 초대장에도 임원진들의 이름만 요란하게 올라가 있을 뿐, 모든 일을 수행하고 있는 나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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