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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Dec 26. 2022

성탄절 이브에 떠나간 새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영업하시죠?"


남편이 운전하는 차가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할 때쯤, 나는 옥천에 갈 때마다 들르는 한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네이버에는 현재 영업 중이라는 안내 문자가 나오고 있었지만, 그 집 밥을 먹기 위해 일부러 잡은 산책 방향이므로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한번 더 확인하였다. 생겨먹은 태생이 이럴 때면 더 꼼꼼한 것을 나인들 어찌하랴.. 그저 생긴 대로 살다가 가는 도리밖에 없다. 이렇게 생겨 먹었다고 좋은 것도, 우리 남편처럼 허술하게 생겨 먹었다고  부족한 것만도 아니다.


비룡 분기점을 지나 옥천 IC를 8킬로미터쯤 남겨 놓은 지점을 통과할 때, 도로 위에 가로로 길게 누워있는 커다란 철판을 발견한 남편이 2차선에서 급히 1차선 쪽으로 차선을 변경하였다. 까딱하면 철판이 튀어올라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나는 황급히 도로공사에 전화를 걸어서 철판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신속히 치워달라고 제보를 하였다. 상담원은 이미 다른 누군가가 앞서 제보한 위치와 동일한 곳이라며, 다시 한번 전달하겠노라고 친절하게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날 뉴스에서는 그 지점에서의 별다른 사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날은 예수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성탄절 이브였다. 며칠간 계속된 눈으로 사방이 온통 하얗게 뒤덮여있던 날, 남편은 사주에 물이 없어서 유난히 강과 산을 좋아하는 마누라를 데리고 옥천으로 향했다. 연말이라 특별히 바쁠 게 없는 남편은 삼일 전엔 무주로 마누라를 데려갔었다.


입찰 건이나 납품 건이 없으면 남편과 나의 업무는 한가한 편이라서, 우리 부부는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조금 멀리 산책을 다니는 편이다. 매사에 허술하고 영특한 부분을 찾아보기 어려운 남편이지만, 그래도 마누라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더 괜찮은 것은 마누라가 좋아하는 산책을 자주 함께 다닌다는 것이다.


식당에 도착하기 십분 전에 미리 전화를 걸어서 돌솥밥 정식을 주문할 때, 식당 주인은 친절하게 응대하였다. 그 식당은 옥천에서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이 아니라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식당 이름을 지었는데,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배추전이 일품이다. 시래기를 넣은 고등어조림과 된장찌개를 곁들여서 돌솥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식당 앞으로 흐르는 작은 도랑 건너편에 있는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 때였다. 남편이 시동을 걸다 말고 황급히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저기 좀 봐, 까치가 무언가를 잡았나 봐~ 쥐를 잡았나, 아니면 다른 새인가?"


요즘 들어 부쩍 멀리 있는 사물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나는 부리나케 안경을 쓰며 차의 정면 유리창을 응시했다. 차에서 내려서 벌써 바깥으로 나가버린 남편이 큰 소리를 치며 눈밭에 앉아있던 까치에게로 다가가자, 까치가 하던 일을 멈추고 억지로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남편이 저를 혼내는 것을 알아차린 까치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날갯짓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까치가 앉아서 부리로 무언가를 쪼고 있던 눈밭에서, 남편은 피를 흘리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어떻게 하지? 우리 집까지 데리고 가다가는 죽을 거 같은데.."


우리는 삼십 분 전에 옥천에 도착했고, 앞으로 서너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이고, 불쌍하기도 하지. 저러다 죽을 거 같으니까, 우선 급한 대로 식당에 데리고 들어가 봐요. 빨간 약 있으면 좀 발라달라 하고 따뜻한 곳에서 붕대 감고 좀 쉬면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편은 까치에게 쪼아 먹히고 있던 새를 손에 감싸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빈 손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물었다.


"식당 주인이 잘 치료해 준대요?"

"아니, 쳐다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치며 문을 닫길래 그냥 나왔어."

"그럼 새는 어디에 두고 왔어요?"

"그 식당 옆에 식당 주인집 있잖아. 거기 작은 나무 우체통이 걸려 있길래, 햇빛이 잘 들 거 같아서 우체통 안에 넣어놓고 왔어."


피 흘리는 작은 새가 우체통 안에서 쓸쓸히 죽어갈 걸 생각하니, 그것도 못할 짓이었다. 남편은 도로 우체통에 가서 새를 데리고 나왔다. 까치의 날카로운 부리에 끔찍하게 당한 새를 마누라가 만질 엄두를 내지 못하자, 남편은 뒷좌석에 휴지를 서너 겹 깔고 새를 조심히 눕혀놓았다. 우리가 약국을 찾아 헤매고 다닐 때쯤, 가련한 새는 저 혼자서 먼 길을 떠나갔다.


우리는 살리지 못한 새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추궁이라도 하려는 듯이 둔한 몸짓으로 나무로 날아올랐던 까치를 "나쁜 놈"이라 욕해주고, 즐겨 가던 식당 주인 부부의 인정 없음을 나무라며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말자고 약속했다. 나는 남편에게 어디 양지바른 곳에 새를 묻어주라고 부탁했지만, 사방이 온통 하얀 설원의 어디쯤에 새를 묻고 돌아온 남편에게 구태여 위치를 캐묻진 않았다.


허술한 거 투성이지만 미물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는 남편이 까치의 수상한 행동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연약한 새는 산 채로 까치에게 뜯어 먹히는 고통을 당하다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 것이다. 까치의 살생 장면을 아주 조금만 더 일찍 목격했더라면 작은 새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던 남편은,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얼마나 잔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내게 이야기하였다.


남편과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브런치에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마누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성탄절 이브에 까치는 먹잇감을 놓쳤고 작은 새는 허망하게 죽었으며, 아직도 서로에게 감출 것이 남아있는 중년의 부부는 하얀 눈길에서 각자의 생각 속으로 호젓하게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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