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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Dec 27. 2022

동문회 준비 일지 7

기세 싸움

인생은 매 순간 타인과의 기세 싸움이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세 싸움이란 결국 내가 가진 차크라와 성질이 다른 차크라가 서로 대면하는 것을 뜻한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차크라라고 하여 강함이 부족한 것이 아니며, 요란스럽고 사납게 돌진하는 차크라가 다른 수많은 차크라들을 포용하면서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숨을 고르며 인내하고 살아온 자에게는 하늘의 지혜와 맞닿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하늘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하여 저 혼자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하늘의 문이 내 앞에서 활짝 열리는 것을 고승들은 '도'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설명조차 난해한 그 높은 경지의 '도'를, 서양에선 예수라는 이름을 쓰는 자가 한 단어로 압축하는 데 성공했다. 예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명제만큼 위대한 진리는 지구상에 다시없을 것이 분명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매 순간 치러야 하는 타인과의 "기세싸움" 역시 누가 더 많이 더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의 대결로 끝이 날 때가 많았다.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기세싸움의 한판 승부는 누가 더 타인을 깊이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었는가로 결판이 나곤 했었다.


나에게 못되게 군 타인을 내가 미워할수록, 그 상처와 고통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전가되는 놀라운 체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세싸움에서 이기려면, 나에게 잘못한 타인을 재빠르게 용서하고 그의 부족함을 내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기도 하였다.


조직을 장악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내가 움직이지 않고 지시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전투에서 장수가 선봉장으로 직접 앞장설 때 군사들의 사기가 치솟는 이치와 같다. 내 몸을 아끼고 내 노력을 아끼는 장수는 진짜 대장이 될 수는 없다.


나는 TFT 일원으로 조직에 합류하였을 때, 단톡방을 거점으로 내가 처리하고 제작한 모든 일들을 낱낱이 공유하였다. 회장과 임원진의 의견을 특별히 경청하고 수용하며, 아랫사람의 자세로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일 처리를 하였다.


나의 놀라운 열정과 업무 수행능력에 대하여 임원진들이 어떠한 생각들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속에서 자꾸만 꿈틀거리는 "어떤 정당함에 대한 갈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사실상 그 조직을 장악했다. 순수한 열정과 뜨거운 노력을 가진 자에 대한 정당한 예우를 해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임원진들에게, 나는 끝까지 '약자'로 비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상대를 '약자'로 취급하는 무리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이익이 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아닌 동문회 일에서 "기세 싸움"이 웬 말이냐 하겠지만, 나의 전투 정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사회로부터 부여받았거나 혹은 나 스스로 부여했을지도 모르는 여성의 한계에 대한 저항을 나는 이런 식으로나마 표출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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