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림의 탄생 5

(태풍 속 보라카이 여행기)

by 도라지

가이드 쟈니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일행들은 로비에 모였다. 빗소리가 요란했다. 쟈니가 너무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식사 장소로 곧 이동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옵션 상품 주문하고 오신 고객님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오후 일정 속에 있는 옵션 상품은 진행이 어려울 거 같아요. 보시다시피 비가 많이 와서, 어떤 것도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내에서 진행하는 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행사측은 급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옵션 상품에 대한 환불을 약속했지만, 옵션 상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보라카이에서 햇볕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해변을 구경도 못한 채 돌아가게 생겼다.


로비에는 다른 여행사를 통해 온 팀들도 보였다. 그쪽 가이드로 보이는 젊은 여성도 쟈니와 같은 내용을 전달 중이었다. 저쪽 관광객들은 주로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태풍이 온다는 걸 알았으면, 어제 인천공항에서부터 출발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일정도 망치고,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갈 수나 있는 건가요?"


성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팀에선 아무도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무던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일행은 또 오토바이 뒤에 딸린 마차에 나누어 올라탔다. 비는 내리지만, 거리엔 우리같은 관광객들을 태운 오토바이들이 자주 다니고 있었다.


쟈니는 점심 식사 후 쇼핑몰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얕으막한 쇼핑몰은 상점이 몇 군데 되지는 않지만, 낯선 곳은 늘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넘쳐난다. 두 시간 삼십분 후 픽업 장소로 오라는 쟈니의 말을 뒤로 하고, 우리 부부는 비가 들이치는 쇼핑 단지를 따라 걸었다.


여자 네 명이 여행 온 팀은 치렁치렁한 옷들이 걸려있는 옷가게로 들어선다. 딸 둘을 데리고 온 가족은 과일 가게가 있는 시장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느리지 않은 발걸음으로, 쇼핑 타운 안에 있는 가게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팔아서 그들의 먹을 것을 장만하며 사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그들의 삶과 인생이 늘 궁금하다.


시장쪽까지 다 훑어보다가, 가보지 않은 반대편 거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쟈니와 만날 장소의 위치는 다시 눈으로 확인해두고 지나간다. 현지인들이 주로 다닐만한 큰 마트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시장 과일 상점들보다 과일들이 더 신선하고 값이 저렴했다. 망고스틴 몇알과 망고를 샀다.


가이드는 본인들의 업무상 고객들의 활동 범위를 제한시킨다. 시간 상의 제약과 고객들의 안전 때문이다. 일일이 고객들을 다 케어하기 힘들므로, 대신에 바운더리를 좁게 해서 풀어놓는다.


나는 늘 바운더리 저 너머가 궁금했다. 그래서 빠른 걸음과 눈치를 활용해서,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곤 했었다. 아직까지는 가이드가 제시한 시간 내에 약속 장소에 도달하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로를 정해야 할 때가 찾아오곤 한다. 우리는 사업에서 좌표도 찍지 않고, 가는 방향도 모르는 채 막연히 신기루같은 헛된 희망을 쫓다가 낭패를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이후로, 가야할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좌표를 찍고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남편은 스스로 선장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괜찮다. 그깟 선장 노릇 누가 하면 어떠랴. 선원들 굶기지 않고 안전하게 항구에 닿기만 하면 된다. 낯선 여행지에 오면, 좌표 찍고 일행들 만나는 장소부터 입력해놓아야 한다.


두시간 이십여분이 지난 뒤, 쟈니와 헤어졌던 쇼핑몰 입구에 도착했다. 일행들이 다 모이자, 쟈니가 일행을 다시 호텔로 인도했다. 쇼를 예약한 팀은 한 팀뿐이었다. 나머지 네 팀은 자율적으로 저녁 식사를 해야만 했다.


호텔 근처 해변가에 불빛이 반짝이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잠시 비가 그쳐서, 흐릿하게 흐르는 저녁 빛의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해변 속에서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물 속에서 수영을 하는 건지 물놀이를 하는 건지, 회색 바다에 사람들이 몇몇 들어가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답진 않지만, 잿빛 보라카이의 해변가를 남편과 둘이서 맨발로 걸었다. 보라카이해변에서 첫날이 희미하게, 별다른 흔적도 없이 흘러갔다.


(2021년 9월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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