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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y 28. 2023

보리수나무

아주 오래전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연애하는 사람들이 성행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옳게" 답변해야만 교회의 승인을 받을 수가 있는 일련의 질문 리스트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성문화한 까닭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성욕에 사로잡혀야만 괜찮은지에 관한 규정들을 수집함으로써, 금욕적인 성직자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순결보다 결혼이 더욱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물론 그 시대를 우리는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런 질문지를 통과해야만 성행위에 도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으로 세뇌시켜야 할 만큼 그 시대는 성적으로 흥분된 시대이기도 했던가 보다. 인간의 욕망이란 감추고 억압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불타오르기도 하는 것은 비단 암흑의 시대뿐만은 아니었다. 태초에 빚어진 아담으로부터 인간의 호기심이 욕망과 죄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성직자들과 달리 중세시대의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런 규정들을 얼마나 알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세계를 주도하는 현재에도 사람들의 성적 행동에 관한 데이터를 뽑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미 천년 전에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의 성생활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생활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성생활이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한 모든 존재가 골고루 나누어 먹는 데 있다. 먹을 것이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잠자리를 나누는 것은 보편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허용하지 못하는 나눔이 있었을 것인데,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채색된 "성의 소유"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먹을 것을 나누는 것처럼 나의 파트너를 타인과 나누는 게 용납되었더라면, 윤리와 도덕의 카테고리는 매우 협소해졌을 것이며 사회복지제도 역시 크게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남을 음해하기 위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인간 행동의 금지 사항은 이 정도의 몇 개 항목으로 축소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담이 선악을 구분하는 열매를 먹으면서 발생하였다는 기독교의 원죄는 결국 "성(性)"을 구별함으로써 가지게 된 수치심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것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도덕성을 확립하는 단초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제가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이었다. 지금의 네팔 지방인 북인도 카필라 왕국에서 BC 560년(?)에 태어났다는 싯다르타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를 '석가모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산스크리트어 '샤카무니'를 음역한 것으로 "샤카족(석가)의 성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싯다르타가 태어난 '카필라'왕국은 고대 인도의 '샤카 부족'의 소왕국이었다. 싯다르타는 훗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지극한 깨달음을 얻어 '깨달은 자'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붓다(부처)'가 되었다.


부처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다. 인간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면서 갖게 되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어 최고선의 상태인 니르바나(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갖기 마련이다. 쾌락의 그림자는 괴로움이기에 붓다는 고(苦)와 락(樂)이 결국 하나이며, 반복되는 고락의 윤회(輪廻)로부터 벗어나야만 무아(無我)의 경지인 해탈에 이르러 진정한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싯다르타가 북인도 지역에서 '열반'의 경지를 가르칠 때, 그 위쪽의 대륙에선 공자가 인자애인(仁者愛人)을 제시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선 대략 비슷하거나 싯다르타보다 아주 약간 뒤늦은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며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고 외쳤다. 이 셋의 사상은 구태여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세 사람은 현재에도 세계의 4대 성인 가운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4대 성인 가운데 가장 뒤늦게 출현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법주사 앞마당에 가면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두 그루 있다. (경내를 주의 깊게 돌아보며 보리수나무가 몇 그루 있는지 찬찬히 세어 보지는 않았으나, 일주일 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그루였다.) 보리수나무라고 적혀있는 나무의 명패에는 괄호 열고 (염주나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사찰에서 보았던 보리수나무는 덩치가 상당히 큰 느티나무 정도 되었기에, 남편과 나는 작년 가을 화분에 심어놓은 보리수나무 묘목이 십 년 후면 제법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마음이 흐뭇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작년 여름의 시작 무렵 인근 동네 산책길에서 우리는 빨간 열매가 수북하게 달려있는 나무 한그루를 우연히 보았다. 그 마을은 도심 속에 위치해 있는 아주 오래된 마을이었는데, 빛바랜 대문과 낡은 담장이 있는 누추한 민가 옆으로 마을 공동 시설 부속용지와 맞물려 있는 애매한 땅에 그 나무가 한 그루 호젓하게 서있었다. 남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 앞으로 다가가 타원형의 루비 반지알 같은 빨간 열매들을 몇 개 따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때 마누라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남편은 얼마 뒤 보리수나무 묘목 한 그루와 듬직한 화분을 하나 사서 사무실 앞에 심어두었다. 사무실 화분에서 첫겨울을 보내야만 했던 아직 어린 보리수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지난겨울 한철을 재밌게 보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무가 법주사의 나무처럼 저렇게 우람한 나무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앞선 생각을 하던 부부는 급기야 땅 한 뙈기 없으면서 보리수나무 몇 그루 더 사다가 심어야겠다는 욕심까지 냈었다. 사무실 화분에 심어놓은 보리수나무에선 아직 열매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을 의아해하다가, 우리 화분에 살고 있는 보리수나무와 법주사 경내의 보리수나무가 '동명이목(同名異木)'이라는 사실을 며칠 뒤에야 알게 되었다.


흔히 사찰에서 이야기하는 보리수나무는 피나무(달피나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피나무의 동그란 열매를 염주재료로 쓰기도 하고 목재를 목탁 만드는 데 쓰면서부터 내력을 알 수는 없지만 보리수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어린 묘목이지만 올봄이 왔을 때 새잎이 났듯이 그래도 때가 되면 몇 알 열매를 맺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사무실의 보리수나무에게선 아직 열매 소식이 없다. 욕망을 초월한 존재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는 '부처'의 이름을 따서, 마음이 어진 사람을 이를 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라고 표현한다. 그런 사람은 선행을 하고도 자신이 선한 줄 조차 모른다는데, 고작 일 년도 돌보지 않고서 맛있는 열매를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도둑놈 심보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묘목을 팔았던 아저씨가 분명히 다음 해에 열매가 열릴 거라고 했다는데, 이번에 열매를 보지 못했으니 다시 일 년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다음 주말에는, 성행위 승인 질문지 같은 거에 답변을 작성할 필요도 없는 얼추 늙은 부부가 다시 어슬렁거리며 그 동네로 산책이나 가야겠다.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모든 괴로움과 쾌락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와 참 평화에 이르는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늙은 아줌마는 빨갛게 잘 익은 열매 공짜로 얻어먹을 생각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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