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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un 12. 2023

(소설) 계절이 바뀌는 길 7

오대빵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진수애의 비정상적인 섹스욕구에 관해서는 나도 아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수애가 인간 파트너 외에 다른 사물과의 자극으로부터 쾌락을 추구하는 비정형적인 성적 기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섹스 상대발표하는 것을 대단한 업적인 양 떠벌리는 것에 구애를 받지 않는 진수애의 입에서는, 한 번도 여성의 이름이나 다른 동물의 이름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진수애가 내 앞에서 다른 남자들을 언급할 때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섹시한 여자인지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일 것이고, 두 번째는 그놈들보다야 내 남성성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본능적인 투쟁력을 자극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수애의 계산법은 단순했다. 행위를 나눈 남자들이 한두 번의 섹스를 마치고 작별을 고하거나, 혹은 몇 달 정도 길게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 어떤 선택을 한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전리품처럼 진수애의 리스트에 또 하나 올라갈 뿐이었고, 그 리스트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수애의 체력과 욕망이 허락하는 한 오늘 밤 상대와 내일 밤 상대가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어찌 보면 진수애가 파트너에 관해 떠벌리는 건, 또 다른 측면에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일종의 이해"를 얻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진수애가 먼저 남자의 품을 파고들거나 남자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터치라도 하면 남자들은 그녀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흥분하기 시작했으므로, 진수애의 입장에선 남자들이 그녀와 잠을 자기 위해 환장해서 덤벼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우스운 논쟁의 선상에서 진수애는 진수애대로 남자들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리스트업 시킬 뿐이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유학파 아티스트 여교수가 자기에게 반해서 먼저 대시한 것으로 해석할 뿐이었다. 어느 산골의 삼류대 교양학부 교수 명함 하나로 진수애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둔갑하여 지방의 촌빨 날리는 남자들을 사로잡는 신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상한 행동 양상은 비단 국내에 돌아와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유학 시절에도 이미 그녀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했노라고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공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수애는 영악한 구석이 있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진수애와 술자리를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애의 예술작업과 연관하여 만나는 사람들인데, 진수애는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그들의 조력을 발판 삼아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예술가로서의 능력이 뛰어나기보다는, 남자들의 속성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이끄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수애와 잠을 잔 남자들은 지역 일간지 기자, 공무원, 사업가, 동료 교수, 카페 사장 등 연령층 뿐만 아니라 직업군도 다양하였다. 남자와의 잠자리를 통해서, 수애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사는 데 익숙해다.


내가 잠시 진수애의 행적에 관해서 더듬고 있을 때, 내 앞에 앉아있던 오대빵 그녀가 이번엔 숲을 지나는 맑은 바람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애씨와 처음 만났던 날, 제가 왜 현우씨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는지 아세요? 수애씨를 따라 나온 남자들은 모두 수애씨의 멍청한 추종자들에 불과했거든요. 멍청한 추종자들이란, 수애씨의 일부만 바라보고 열광하는 남자들이란 뜻에서 쓴 표현이예요. 그런데 현우씨는 멍청한 추종자가 아니라 신랄한 비판가에 가까웠어요. 현우씨가 수애씨에 대해 어떤 목적 혹은 어떤 필요를 가졌든, 현우씨가 수애씨에 대해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무언가를 뛰어넘은 마음이 아니고선,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제가 수애씨 주변에서 본 남자 중에 최고 멋진 분이셨어요."


나는 그녀의 칭찬에 잠시 갈팡질팡하였다. 수애는 내가 구태여 찾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 들어와서 옷을 벗는 여자였다. 그렇다고 내가 수애를 하찮게 여기거나 혹은 대단한 예술가로서 존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잠을 잤던 모든 여자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걸 기본으로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였다. 수애도 그녀들 가운데 그저 한 여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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