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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ug 11. 2023

타인의 오두막 1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오두막 하나를 갖고 싶었다. 그런 소망이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마도 일곱 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 등에 업혀 학교 교문을 처음 들어서던 날부터, 나만의 오두막에 대한 상상이 시작되었던 것 같.


키가 크고 힘이 좋았던 어머니는 등 뒤에 업혀있던 나를 학교 운동장 위에 내려놓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려야 한다는 둥의 기초적인 공동체 생활 지식은 이미 집에서 언니와 오빠들을 통해 다 배워왔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했을 터였다.


나는 결코 눈치가 부족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학부모와 어린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던 학교 운동장에서 그날만큼은 무엇엔가 압도된 듯 공연히 주눅이 들어있었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교사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아이들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갈라놓았을 때, 가뜩이나 작은 몸뚱이들이 아주 작은 하리보젤리처럼 쪼그라들어 보였었다.


내 손을 붙잡고 있던 어머니의 믿음직한 손이 저만치 멀어져 가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적막하고 광활한 세계의 공포감을 느꼈던지도 모르겠. 나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조(Joe)"를 재빨리 떠올렸다. 조는 파트라슈 정도의 몸집은 아니어도 제법 덩치가 컸던 우리 집 흰둥개였다. 언니와 오빠들은 학교에 갈 때마다 조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곤 했었기에, 학교에 올 수 있는 건 '선생님'과 '아이들'뿐이라는 걸 나는 이미 수긍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날 학교 운동장에 날리던 먼지들은 마치 인어공주가 살았다는 드넓은 바다의 거센 파도를 연상케 했었다. 꼬맹이들이 나란히 서있는 기다란 줄의 중간쯤에서, 어떤 사내아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줄을 이탈하였다. 나는 훌쩍이는 작은 남자아이를 바라보다가, 그 아이의 울음에 동참하게 될까 봐서 이번엔 숲 속의 작은 오두막에 혼자 사는 허클베리핀을 상상해 보았었다. 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 속의 허클베리핀은 언제나 용감했고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어린 내 마음에도 훌쩍이는 사내아이처럼 남들 앞에서 자신의 유약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어쩐지 멋진 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운동장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학교 건물은 너무 낯설고 웅장해 보였다. 나는 그날 처음 내디딘 새로운 땅(운동장)에서 용감한 허클베리핀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을 수도 있다. 어딘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학교라는 이 세계에서 용감한 아이가 되려면, 허클베리핀처럼 나만의 오두막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차례로 들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제 나는 드디어 나만의 오두막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오두막은 법적으로 나의 소유가 아니므로 나의 오두막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지만, 준영은 이것은 오로지 나의 오두막이라고 말해주었다. 언젠가 반드시 나만의 오두막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그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인생에서는 드물게 이런 놀라운 우연이 일어나기도 한다.


<타인의 오두막>이라는 현판이 걸린 나의 오두막에 앉아서 나는 지나가는 태풍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키가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싫은 내색 없이 비를 맞고 있었다. 하늘은 형언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들로 태풍의 길을 안내하였다. <비트의 오두막>을 나서며 우산을 펼치고 이리로 걸어오는 준영의 모습이 보였다. '타인의 오두막'과 서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있는 준영의 오두막에는 '비트의 오두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팔 년 전 준영과 처음 만났던 날에도 뉴스에서는 강력한 태풍에 외출을 금지하라는 주의가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었다. 태풍이 불었던 그날에도 나는 우산을 쓰고 맨 발로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황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앗, 그쪽은 위험해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려보니, 거기에 서 있는 한 사람도 맨 발인 채로 우산을 들고 있었다. 공원 관리 직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네, 더 이상 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큰 소리로 대꾸하는 사이에 거센 강풍이 매몰차게 불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우산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려고 할 때, 내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가 순식간에 벗겨져서 그의 발아래로 날아갔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쓸려가는 모자를 그가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이번엔 그의 우산이 뒤집히면서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그의 삼단 우산은 뒤집히면서 우산살이 몇 개 부러져버려서 도무지 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내 손에 들고 있던 튼튼한 장우산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날 우리는 각자 타고 온 차로 가서 신발을 신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불분명한 경계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야기하다가 가끔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사이로 순식간에 발전하게 되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철학자 중에 특별히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때  내가 대답했었다. "비트겐슈타인요. 평생 확실한 것을 찾아 헤맸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위태로운 경계에 있었거든요. 나랑 비슷해서요."


그러자 그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럼 언젠가 당신이 나를 원할 때 '비트'라고 부를래요? 내가 당신을 원할 때 나는 당신을 '타인'이라고 부를게요. 우리들만의 사랑 암호, 어때요?"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비트"


비트의 입술이 타인의 입술을 처음 찾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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