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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Sep 21. 2023

명품 인생

"한 옥타브가 뭐야?"

"오선지에서 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요. 도레미파솔라시도~ 그게 한 옥타브예요."


이렇게 설명하고도 나는 사실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휴대폰에 검색하면 다 나올 것을 구태여 아내에게 질문하는 남편이나, 정확하게 설명이 불가능하면서도 부득불 아는 체를 하는 아내나 별반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남편은 우리가 어렸을 적에 흔히 '콩나물대가리'라고 부르기도 했던 음표가 적혀있는 악보를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 피아노가 있었던 집은 대체로 부유했던 집이 틀림없었고, 깡촌에서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 태어났던 남편이 접했던 음악이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전부였다.


물론 정상적으로 학교 교육 과정을 밟아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남편이므로 당연히 교과 과정 중에 음악 시간은 있었을 것이나, 어찌 된 일인지 남편은 악보를 보는 것을 무서워하기까지 했었다. 그랬던 남편의 입에서 "옥타브"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큰아들은 누굴 닮았는지, 어려서 두 달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교육의 힘으로 급기야 고등학교 때는 같은 반 여학생들을 제치고 학급 반주자를 했었다. 얼마나 천재이길래 두 달 다녔던 피아노 실력으로 고등학생 때 반주자를 할 수 있었을까 의심하시겠지만, 당시에 큰아들의 담임쌤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엔 반주할 실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아이가 악보를 통째로 외워왔더라. 학급별 노래대회는 무사히 마쳤다."라고 하였다.


그날 강당에서 큰아들이 반주할 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 아들은 한 군데서 박자를 조금 틀렸으나 반 친구들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그 실수는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저 작은 재능은 필시 아들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악보에 트라우마가 있는 듯한 남편은 한이 서린 옛 노래와 트로트풍의 노래를 좋아한다. 온 나라에 트로트 열풍이 불어닥칠 즈음부터 남편이 '판소리'를 배워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기 시작했다. 태연이도 그렇고 다현이도 그랬듯이, 자고로 트로트를 잘하려면 판소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수년 째  판소리 교실에 관한 말만 할 뿐, 정작 판소리 수업이 어디에서 있는지 알아보진 않았다. 지난여름이었다. 장차 이번 여름 무더위가 대단할 것이라는 짐작이 현실로 와닿았던 7월의 첫 주였다. 식탁에서 저녁을 먹던 남편이 트로트를 듣다가 여지없이 판소리 이야기를 꺼내길래, 나는 즉석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아,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이 있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마누라가 급작스럽게 판소리쌤과 통화를 한 뒤, 남편은 다음 날부터 판소리 모임에 들어갔다. 판소리 첫 수업이 있던  날, 남편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달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대. 나도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데, 그게 말이지, 장장 한 시간 반이 넘는 극이라는 거야~"

"엥~생짜 초보가 무슨 극을 한대요? 겨우 무대 배경처럼 서있는 엑스트라겠죠."

"그게 아니야, 긴 대사도 세 번이나 있고, 게다가 춤도 추고 소리도 같이 해야 한다는군. 아이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랴~"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첫 무대는 판소리 <심청가>를  해학적으로 각색하여 새롭게 창작된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라는 제목의 창극이었다. 정말 놀랍지만, 남편은 판소리 배우러 들어간 지 한 달 반 만에 진짜로 초보 배우가 되어 판소리 극 무대에 올랐다. 그것도 관객들은 정식으로 인터파크 예매를 통해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 공연 작품이었다는 것. 지역 KBS방송에서 공연을 풀로 촬영해 갔고 지역 뉴스와 프로그램에도 몇 차례 보도가 되더니, 급기야 다음 달에는 타 지역의 무대에까지 초청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그러더니만 어느 날부터 남편이 휴대폰으로 악보를 들여다보는 일이 종종 생겼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악보와 음계를 봐야 한다는 설명까지 내게 덧붙였다. 매우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일은 남편의 영역이 아니었다. 사람이 변하면 뭐 한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마누라가 근성 있게 삼십 년 인내하며 보필했으면 변할 것은 변해줘야지 그게 상도덕(商道德) 아닐까 싶다. 부부간에 필요한 것은 룸메이트로서의 소양과 상도덕일 테니 말이다.


머지않아 육십을 바라보는 남편의 놀라운 변화는 단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기도 하고, 시간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큰아들의 예술적 기질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닮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한 순간도 삶이 평탄해본 적 없이 불우했던 아이는, 어린 마음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자 선생님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내게는 이제야 그 힘들었던 시골 아이의 마음이 보이고, 남편은 요즘에서야 드디어 하나의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명품 배우, 명품 소리꾼 같은 거 되어보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 남편 따라다니며 치닥꺼리 하느라고 나의 인생도 덩달아 재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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