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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Oct 04. 2023

하늘다람쥐 유괴의 날

명절 전날이었다. 졸업 후 지난 3월에 그래도 나름대로는 대기업에 버금가는 회사에 취직한 작은 아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온다는 연락이 있었다. 간호사 큰아들은 보건관리직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얻어 독립해서 나가고, 이제 입사 신입 6개월 된 작은 아들은 여전히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저녁 열 시가 넘어 들어온 작은 아들이 거실에 있는 아빠랑 쑥덕거리는 소리가 안방 문틈으로 낮게 새어 들어왔다. 나 혼자 가만히 침대에 누워 듣기엔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나는 은밀한 쑥덕거림이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장성한 아들이 퇴근해서 들어올 때마다 방문 열고 나가서 반길 나이는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서 "어머니, 저 퇴근해서 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쇼~"라는 인사말을 들을 만큼 내가 훌륭한 어머니 노릇을 한 것도 아니라서, 나는 구태여 자식 놈과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내는 유교적 관습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기어이 방문 열고 나가서 "잘 들어왔느냐~" 헛기침이라도 한번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어도 여자의 육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들과 저녁 안부 인사를 나누며 슬그머니 집안을 스캔하며 끝방으로 시선을 옮길 때였다. 자식 놈들 옷이 잔뜩 있기도 하거니와 내가 책을 읽고 가끔 무언가 작성하기도 하는 책상 옆 바닥에 턱 하니 생소한 바구니가 뚜껑이 덮인 채로 들어와 앉아 있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커다란 바구니가 들통이 나버리자, 그제야 작은 아들이 이렇게 이실직고하였다.


"친구랑 밥 먹고 나오는데 가 벽에 가만히 앉아 있더라고요. 도망가지도 않고 손에 잡히길래 어디가 아픈가 하고 데려와봤어요. 하늘다람쥐래요~"


아들은 바구니의 뚜껑을 살짝 열고 그 아이의 정체를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마트에서 파는 커다란 빨래바구니는 하늘다람쥐의 임시 케이지둔갑해 있었다. 거기에 구색을 맞추어 장만해 온 사다리용 철망과 둥지와 밥그릇은 동남이를 키워보겠다는 강렬한 열망의 증거물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아이가 국내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늘다람쥐냐 아니냐의 논쟁이었다. 겨드랑이 날갯죽지 아래로 검은색 줄이 퍼져 있는 것과 귀모양이 둥글고 꼬리가 넓적하게 펼쳐져 있는 걸 보면 미국산 수입 하늘다람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게 가장 큰 이슈였다.


그날 저녁부터 일단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으니, 시청이고 어디고 문의할 데가 없다는 구실로 우리는 그 아이를 임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작은 아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동남"이로 지었다. 그 아이가 발견된 곳이 도심의 외곽으로 새로 개발된 '동남지구'였기 때문이다. 원래 숲이 있던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곳에 서식했던 아이가 먹이를 찾아 사람 사는 동네로 내려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동남이는 우리 집 끝방에 임시 숙소를 마련하였다. 불법적인 것에 굉장히 취약한 작은 아들은 한편으로는 동남이가 사람에게 옮길 수도 있는 바이러스와 질병이 걱정되어서, 동물병원에 예방접종을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또 한참을 고민하는 눈치였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동남이가 국산인지 미국산인지 단박에 구별할 수 있을 것이며, 동남이가 국산 천연기념물이라면 당장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국가 조치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명절이라고 집을 찾아온 큰아들은 어릴 적에도 기니피그와 햄스터를 오랫동안 키워본 경험자였다. 동남이를 보자마자 단숨에 홀딱 빠져버린 큰아들이 혼자 사는 자취방에 데려가서 풀어놓고 키우겠다고 제안하였다. 하늘다람쥐는 특성상 제 아무리 높은 케이지라도 케이지 안에서 살 수가 없다며, 동남이의 동물권을 내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했다. 동남이의 동물권이라면 마땅히 원래 살던 숲으로 데려가 풀어주는 것이 가장 합당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큰아들은 동남이 때문인지 연휴 내내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동남이는 큰아들의 다정한 손길을 알아보고 만나자마자 큰아들의 어깨를 타고 올라가 똥을 쌌다. 야행성인 동남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밤마다 아이들의 욕실은 동남이의 숲이 되었다. 나는 동남이가 번번이 똥을 싸는 큰아들의 옷과 동남이가 욕실에 매달려 타고 노는 수건 등을 따로 세탁하고, 아침마다 밤새 동남이가 휘젓고 다닌 욕실 청소를 하느라 공연히 더 바쁜 연휴를 보냈다.


큰아들이 연휴 마지막날을 앞두고 제 자취방으로 혼자 돌아가고, 우리 부부도 근방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작은 아들이 외출하면서 동남이를 빨래바구니 안에 잘 넣어두었다고 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바구니 안에 동남이가 보이지 않았다. 바구니 뚜껑 위에는 2리터짜리 생수병이 덮여 있어서 뚜껑을 열고 탈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남아~ 동남아~" 두세 번 부르니까, 소파 뒤에 있던 동남이가 튀어나와서 거실 커튼에 매달리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동남이는 화분의 나무로 점프해서 이동하더니, 보란 듯이 화분에 심어져 있는 나무줄기의 끝을 갉아먹는가 싶다가 이내 화분에서 내려왔다. 고무나무의 수액이 동남이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동남이는 어제도 격자모양의 플라스틱 빨래 바구니를 이빨로 갉아내고 그 틈으로 탈출해서 큰아들 방으로 들어갔다가 검거된 적이 있었다. 그 주위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놨었는데, 오늘은 테이프 밑에를 다시 갉아내고 또다시 탈출한 것이었다. 탈출로를 확인 후 공기구멍을 남겨놓고 바구니를 통째로 테이핑 하는 작업을 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는 동안, 동남이가 사방을 돌아다닌 흔적들이 역력했다. 베란다에 걸려있던 남편의 팬티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 동남이의 똥도 있었다. 안방 바닥에 정체 모를 커다란 물방울이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무심히 그것을 남편의 소행이라고만 생각하고 휴지로 닦아내었다. 그런데 어라, 노란색이었다. 동남이가 안방까지 와서 오줌을 놓고 간 것이다. 연휴는 끝나가고 있고, 그때부터 생각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작은 아들을 설득하여 동남이가 살던 으로 보내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15년 장수를 누리는 것보다, 혹여나 천적을 만나거나 해서 짧은 생을 마감하더라도 자연에서 제 짝을 만나 번식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 동남이에겐 더 동남이다운 삶일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 부부는 작은 아들에게 동남이의 만행(?)을 일러바쳤다. 명절 연휴 동안 동남이와 시간을 보낸 뒤라서, 작은 아들도 동남이에 대한 처음의 호기심과 사랑스러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던 시점이었다. 모든 애정엔 그만큼의 수고가 따른다는 것을 작은 아들도 얼추 깨달은 눈치였다.


남편은 고양이가 많은 도시 근교의 숲이 미덥지가 못한 나머지, 연휴의 마지막 날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관광객들이 있어서 그런지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한 직원이 친절하게 상담해 주었다. 가장 좋은 선택은 그 아이가 발견된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국립공원 관리자의 말에, 우리 부부는 작은 아들에게 동남이가 발견된 위치를 파악한 뒤 동남지구 쪽으로 출발했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앉나 싶더니만, 금세 주위가 까맣게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동남이가 내려온 건물 뒤로 산이 조금 남아 있었다. 원래 있던 산이 개발로 인해 깎여나가면서 산의 규모가 공원만큼의 규모로 축소되어 있었다. 불빛조차 없는 깜깜한 산길을 오분 정도 걸어 올라서, 남편이 상자를 열자마자 동남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휴대폰 라이트 기능으로는 동남이 뒤통수조차 볼 수가 없었다.


"잘 가, 동남아~ 너네 집 잘 찾아가야 해."


동남이를 데리고 온 상자 안에는 동남이가 까다가 남긴 도토리가 들어있었다. 낮에 산책길에서 주워 온 도토리 봉지를 동남이가 올라간 나무 아래 뿌려주었다. 마누라는 동남이를 데리고 온 종이 상자를 한쪽 손에 들고 남편은 휴대폰을 라이트 삼아 한쪽 손에 들고, 나이 들어가는 부부가 각자 남은 한 손을 서로 붙잡고 밤의 숲 속을 걸어 내려왔다.


"그거 엄연히 유괴 아녜요? 숲에 먹을 게 없어서 동네로 내려왔을 수도 있던 멀쩡한 아이를 잡아 왔으니, 유괴가 아니고 뭐겠어요. 안 그래요? 우리 모두 공범이었네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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