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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Dec 28. 2023

하루

며칠 전 오빠가 부모님 댁에 다녀갔을 때, 어머니는 성탄절에도 문을 연 동네 의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아버지는 또 어머닐 모시고 병원엘 가야겠다고 하셨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물을 것도 없이, 나는 서둘러 대답을 하고 짐을 쌌다. 까딱하다간 어머니가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나 혼자 지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침낭, 엄니 기저귀, 슬리퍼, 추리닝바지, 후드티, 속옷, 양말, 종이컵, 물병, 치약과 칫솔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부리나케 짐을 꾸렸더니 가방이 세 개나 되었다. 가방 세 개를 싸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8분이 될까 말까였다. 차 트렁크에 황급히 짐을 싣고 부모님 댁으로 가보았다. 외투를 차려입으신 어머니 얼굴이 아주 나빠 보이진 않았다.


지난겨울에도 호되게 앓으셨던 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기력을 조금 회복하시긴 했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어머니의 연약한 신체가 비싼 영양제를 받아들이는 데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 몸에선 알레르기 반응처럼 두드러기 같은 발진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이틀 전 어머니가 수액을 맞았다는 병원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주사액의 성분을 확인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틀 전 맞았던 주사액은 장염 치료차 투입했던 성분이라서, 영양제 주사를 맞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앙상한 팔에 수액줄이 꽂히는 걸 보고 난 뒤, 아버지를 모시고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구십이 되도록 전기밥통에 쌀 한번 안쳐본 적이 없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배탈로 며칠간 미음만 몇 숟가락씩 드시자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평생토록 단 한 번도 마음 맞아본 적이 없는 마누라지만,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가 아버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대장암수술을 하고 몇 달 뒤부터 아버지는 식사할 때마다 간간이 맥주를 시켜드셨다. 어머니는 식사 대신 영양제를 맞고 있고, 아버지와 나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소고기를 먹었다. 아침부터 혼비백산하여 나오느라 선크림 바르는 것도 잊고 나온 푸석한 내 얼굴에 비로소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내일 어찌 될지언정 오늘은 모두 무사한 날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후 네시가 넘어서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멀리 출장 갔던 남편이 먼저 돌아와 있었다.


"당신 이선균 죽은 거 알아? 아까 그 얘기하려고 전화했던 건데, 당신이 하도 정신없길래.."

"네? 이선균이 자살했어요?"


아침 뉴스에서 보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26일 국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을 연설했던 한동훈 다음으로 이선균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걸 보았다. 아침 뉴스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면서 '저 사람, 저러다 잘못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적폐 청산은 겉껍질도 두드려보지 못했는데 반대편에선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을 해야 한다고 광고를 하는 세상에서 아침부터 속이 답답했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선균은 또 죽음을 택했을까.. 그의 선택이 너무 안타까워서 또다시 속이 갑갑했다. 비록 믿고 따를만한 정치인이 없는 국가에서나마 오늘 내 부모는 무사히 또 하루를 넘겼지만, 누구는 그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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