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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an 22. 2024

본드걸

"우리 후배님은 말이야, 접착제 같어.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을 모아서 한 군데 딱딱 붙여놓는단 말이지."


이름을 손쉽게 불러도 그만이건만, 인품 좋은 선배는 조심성 있게 '후배님'이라고 나를 칭한다. 선배가 나를 가리켜 '우리 후배님'이라고 표현하는 게 참 듣기가 좋았다. 인품도 좋고 센스력도 좋은 사람 앞에선 나도 덩달아 센스가 장난 아니게 발동할 때가 있다.


"제가 본드걸이에요? 접착제처럼 달라붙게요~큭 큭 큭"


스스로를 본드걸이라고 칭한 나의 말장난에 선배가 눈빛을 반짝이며 대꾸하였다.


"본드걸? 와~ 재밌다, 이제부터 우리의 암호명은 본드걸로 합시다~"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세 명도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들을 지으며 동의했다. 분위기도 제법 무르익었겠다, 쓸데없는 애국심이라도 한번 상기시킬 요량이었던지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공본드걸로 합시다~ 3M은 외산, 오공은 국산이니까요. 큭~"


그날 나는 두세 가지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나와 오래된 지인의 음식점에서 사장님이 특별 서비스를 아낌없이 제공해 주는 걸 보고 감탄한 우리 멤버들이 사장님께 통하는 암호명을 지어야겠다고 제안하였다. 구태여 암호명 같은 거 필요 없이 내 이름 석자를 말하면 된다고 해도, 작명에 재미 들린 멤버들은 기어이 돌아가면서 하나씩 이름을 호명하였다.


술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의 성별이 나를 제외하고 다 남성들이었던 터라 백설공주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술자리를 파하고 나가면서 검은색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느닷없이 소환되기도 했었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백설공주, 메텔, 본드걸이라니~ 아무래도 상관없이 우리는 그저 즐거웠다.


자고로 사람이란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이름은 있을 수 있으나 그 또한 사람이 부여한 것일 뿐, 동식물들이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한 적은 유사 이래 없다. 창조설을 기반한 성경에는 첫 인류부터 이름을 갖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나면서 동시에 언어가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태의 순서를 파악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인류의 첫 출현 이후로 여러 세대를 거치고 난 뒤 언어란 것이 생겨나면서 존재의 이름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후에 세네카가 이 문장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동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고 정의한 것 역시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름'이라는 표식이 없다면, 그야말로 인간 사회는 토마스 홉스의 지적처럼 자연상태의 약육강식 무법천지 아수라장일 것이다. 일찍이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 늑대이다(Homo omni lupus)"라고 말한 적이 있다. 늑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이름'으로써 표시하고,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법과 도덕의 사회적 제재를 감당하고 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물론 간혹 세상에는 출생 신고가 누락되었거나 사망 신고로 처리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이름 따위 필요 없는 곳에서 고립무원으로 살다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줄곧 '이름'을 선택(choice)하며 살아간다. 이름이란 것이, 출생 때 부여받는 하나의 표식(sign)부터 사회적 관계에서 부여받는 여러 개의 표식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요즘은 본명 이외에 부캐를 표시하는 여러 닉네임을 가지게 되는데, 그래서 때로 우리는 '이름' 하나를 듣고도 그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를 유추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인품 좋은 나의 선배가 나를 가리켜 '우리 후배님'이라고 불러주듯이, 작가 유시민은 언제나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을 회상할 때마다 '대통령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님'이라는 글자 하나에 담긴 그분들의 마음에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싶다. 새해엔 나와 인연이 되어 지구별에 와주신 가족들과 벗님들의 이름 한 글자라도 성의 없이 부르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본드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짓을 나는 얼마쯤 더 수행할 수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소집력을 언제까지 발휘할 수 있으려나~ 내 나이 육십 넘어서도 그런 시답잖은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붙이고 모으본드걸로 살다가 먼 훗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매우 복 받은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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