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고브의 겨울

by 도라지

모든 아름다운 경험은 결코 계획적일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모두 우연성에 기반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영화의 시사회에 가기로 했다든가, 어떤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티켓을 구매했다든가 하는 결정들이 우연은 아니었겠지만, 그 영화나 콘서트에서 받게 되는 감동은 우리가 촘촘하게 계획하고 얻어낸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한 아름다운 경험의 우연성은 사람에게서 받는 감동도 마찬가지며 자연이 주는 풍경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선사한 순간의 감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라는 사람은 평생 한 직장에 소속되어 출퇴근 시간의 고단함을 누려본 적도 없어서 퇴직 후의 여유로움을 잘 알 수도 없지만, 인생에서 늘 쫓기듯이 바쁘게 살아오기는 직장인이었던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던 듯싶기도 하다. 노년을 준비하는 지금의 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금 한적한 나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늘 청년처럼 새롭게 마음가짐을 하는 남편은 벌써 노년을 운운하는 마누라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어제도 그렇게 느슨한 하루를 소파에서 뒤척이다가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내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BBC 스코틀랜드가 제작한 < Eye of the Storm>이라는 필름이다.


< Eye of the Storm>은 1932년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에서 출생하였다가 2020년 스코틀랜드의 몽트로즈에서 사망한 화가 제임스 모리슨(James Morrison)을 다룬 영화다. 제임스가 사망하기 전 시력을 점점 잃어가면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2년 간의 기록을 담은 이 필름에는 세계적인 미술 감독이 일부러 의도하여 연출한 듯한 수채화톤의 색조들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제임스 모리슨의 작품을 그대로 카메라가 스크린에 옮겨주고 있기 때문인 듯 보였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이 주는 감흥이 강력한 것처럼 예술은 첫 장면, 첫 소절에서 이것이 걸작인지 아닌지 판가름이 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영화의 오프닝이 시작되면서 그의 작품 하나가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내 심장은 그 찰나에 찬란하게 멈추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인생에서 모든 감동은 매우 짧은 찰나에 우연히 스파크처럼 터져버리는 것이란 걸 다시 한번 생생하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바로 <발고브의 겨울>이라는 풍경화였다.


발고브는 아마도 지명 같았다. 그림 아래쪽에 작가가 적어놓은 1986년이라는 작은 숫자가 선명했다. 그림 속에 펼쳐진 어느 한적한 시골의 눈 쌓인 풍경 속에는 작은 농가가 한 채 있었다. 하얀색의 겨울 들판 너머로 스코틀랜드의 맑고 투명한 날씨가 마치 먼 곳까지 바라다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평생토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발고브라는 시골 마을에 워프(warp)하여, 1986년 겨울의 스코틀랜드 어느 시골 마을의 전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생생함에 사로잡혔다.


<발고브의 겨울>은 겨울 풍경화지만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림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황량하거나 쓸쓸하거나 적막하지가 않다. 작은 농가 안에는 따뜻한 불이 있을 것이 분명했고, 시골 가족들이 도란도란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사람을 그려 넣지 않았어도 충분히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하얀색 도화지(때로는 캔버스)를 묵묵히 이고 서 있는 이젤 앞에서 작업할 때면 제임스 모리슨은 드뷔시의 곡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기법의 특이점은 드로잉 없이 곧바로 채색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가 보았던 하늘이 있으면, 그의 붓은 캔버스 위에 그대로 하늘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몽트로즈에 정착할 무렵 이십여 년 동안 예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절대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었노라고 회고하였다. 제임스는 학생들에게 그림(예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가 자연 속에서 언제나 따라다닌 것은 "빛"이었다. 그의 겨울 풍경 그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역시나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빛"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50년대 산업화를 이룬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글라스고의 공동주택들은 훗날 산업화의 급류를 타고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그림 속에선 아직도 당시의 글라스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파른 경사길에 지어진 공동주택을 화폭에 옮겨 담으면서 그가 공동주택을 바라보았던 시선의 각도 때문인지, 그림 속 글라스고 공동주택은 수직선을 약간 이탈한 듯 기울어져 보인다.


글라스고의 공동주택들이 철거되어 사라진 것처럼, 1986년에 그가 바라보았던 발고브도 1990년대에 개발붐에 휩쓸려 골프 초보자와 가족들을 위한 9홀 코스로 변신하고야 말았다. 제임스가 바라보았던 1986년 발고브의 겨울 모습은 이제 과거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스코틀랜드의 풍경화가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북극 식물학자인 '진 벨푸어' 박사를 알게 되어 1990년에 캐나다령의 엘스미어섬을 방문하고도 30년이 흐른 뒤였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나머지 그는 북극 지방의 강추위 속에서도 한 달간 텐트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렸다. 30여 년이 지난 뒤에 영국 던디 미술관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 전시회의 중심에 제임스 모리슨의 그림들이 있었다.


물론 제임스가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일종의 사명감만을 띠고 북극 지방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싸우며 그림을 그렸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에 매료되어 즐거움을 알게 되었듯이, 위대한 자연이 주는 풍경 그 자체에 매혹되어 그의 붓 끝으로 북극 지방의 사라져 가는 풍경을 기록해 둔 결과물이 지구인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가 남긴 북극 지방의 그림들도 아름답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가본 적도 없는 1986년의 발고브를 오후 내내 회상하며 그리워하였다. 제임스 모리슨의 <발고브의 겨울>과 다른 그림 몇 작품을 겨우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았을 뿐인데,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무언가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바깥 풍경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분명히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내 눈은 어느새 제임스 모리슨의 눈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한 순간 세상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제임스 모리슨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죽는 날까지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그의 그림을 한 점이라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영국 왕실과 J.K.Rowling이 그의 작품 몇 점을 소장하고 있다는데, 혹시라도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모를까 내 생전에 모리슨의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할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서울에서라도 그의 전시회가 열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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