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ir There, Their Body

by 도라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데어 데어(THEIR THERE)"라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국내 최초로 발행된 국내 맛집 가이드인 "블루리본"을 세 번 수상한 명소라고 하는데, 나는 이 카페의 신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커피 마니아는 아니다.


카페에 가는 돈도 아깝게 생각될 뿐만 아니라 카페인에 매우 취약한 체질이다 보니 나는 주로 집에서 마음 편히 마시는 믹스커피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요즘은 한 명의 친구와 난생처음으로 정기적으로 카페 나들이를 하게 되면서 커피의 이런저런 맛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시작하게 되면서 방문했던 첫 카페가 아마도 이 카페였지 싶다.


친구가 설명해 준 대로 카페를 찾아가면서, 이 카페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광고 문구 같은 한 줄의 문장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나 가고 싶은 그곳, 거기에서 그들이 만난다. 그들의 그곳~ 데어 데어(THEIR THERE)" 내가 카페의 주인장이라면 나는 아마도 이런 문구를 공간의 한쪽 어딘가에 새겨놓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their'는 '그들의, 그것들의'라는 뜻의 3인칭 복수 소유격으로 인식의 터를 잡고 있지만, 어떤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언급하고 싶지 않거나 혹은 모를 때 his나 her 대신에 'their'를 쓰기도 한다. 어떠한 하나의 인물로 특정되지 않는 무작위성, 혹은 익명성이 주는 미묘한 안도감 때문에 나는 종종 'their'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도 같다.


내가 가끔 his나 her 대신에 'thei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인간은 다 거기(there)에서 거기(there)다."라는 시니컬한 착상(着想)에 근거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 영장류의 일종으로서 '사람'은 구태여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구별하지 않아도 욕망의 분포도에서 거의 일치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욕구와 욕망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은 다 거기(there)서 거기(there)라는 정리(定理)가 가능해진다.


영어에서 'there'는 문장의 첫머리에서 "어떤 것이 존재, 발생함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데, 유도부사 there는 문장 앞에 출현하여 '~이 있다'로 해석되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다. <예문 "There ie a time for everything.(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카페 주인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카페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데어 데어(THEIR THERE)"라는 이 카페의 이름에는 다분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들어있는 것도 같다. 단순히 반복적으로 소리 나는 음값에만 치중하여 작명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데어데어에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인다. 무심천이 바라다보이는 2층에 앉아 무심천을 오고 가는 새들을 무심히 보고 있노라면 모든 존재들이 어느 한순간 하나가 되어 시간조차 멈추어버리는 기이한 "무(無)의 상태"로 빠져들 때가 있다. 내가 이런 고백을 한다 해서, 카페인에 취약한 나머지 일종의 섬망 증세처럼 이성과 망상의 경계를 오고 가는 것으로 보는 시선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김건희의 명대사처럼 모든 인간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서는 들에 핀 한 포기의 풀과 같은 신세가 아니겠는가. 때로 "겸손과 허무"는 같은 토양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페를 채우고 있는 많은 신체(body)들과 커피 향들... 네이버에 "their body"를 치면, AI브리핑은 이렇게 설명한다. < "their body"는 문장 내에서 '그들의 몸', '그들의 신체'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입니다. 일상 영어, 과학, 건강 등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며,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신체', '동물의 몸' 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영어 학습이나 과학적 글쓰기, 사회적 논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쓰입니다. 문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사용 상황에 맞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네이버 인용)


철학에서 "신체(body)"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신체(body)"는 인간 존재와 인식, 주체성의 핵심 개념으로 전통적으로 정신(mind, spirit)과 구분되어 왔다. 오래된 전통 철학에서는 "신체(body)"를 의지와 욕망의 수동적 대상으로 간주함과 동시에 정신의 우월성을 강조했으나, 현대 철학에서는 오히려 신체가 존재의 본질에 깊이 관여하는 핵심 요소로 재조명되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올해 나의 목표는 "신체(body)의 회복"이다. 길가에 피어난 한 포기의 풀처럼 무례함과 비굴함 따위 전혀 모르고,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낮게 흔들며 살아가는 풀꽃만큼의 신체 능력을 회복하고 싶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모두 같은 영장류의 일원으로서 "their body"를 가지고 있을 뿐이겠지만, 때가 되면 풀꽃도 지고 사람도 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