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읽은 책을 접어두듯이, 때로는 미처 인사말도 나누지 못한 채 그 사람과 영영 작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나의 정신세계가 그의 정신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하나쯤 열려 있던 관계라면, 그의 부재는 언제든 아쉬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해마다 FW(가울과 겨울) 시즌이면 유초하 선생님이 더욱 생각나곤 한다. 어쩌면 그와 함께 했던 술자리의 대화들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초하 선생님은 생전에 '교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교수라는 이름은 단지 직업을 의미하는 것일 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간 된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명칭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백기완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자신도 남들에게 '선생님'이라고 호명되기를 바랐다.
유초하 선생님보다 한참 형님이셨던 백기완 선생님이 유초하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오셨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백기완 선생님은 힘없이 굽은 허리에 검정 두루마기를 걸치고 유초하 선생님의 영정 앞에서 서럽게 눈물을 훔치셨다. 두 분은 민주화를 일구는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한 동지였고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는 흔치 않은 사이였다.
나는 어쩌다가 그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분들의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내 입맛에는 도통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백기완 선생님께서 드시는 육류는 내가 전혀 먹지 못하는 종류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도 막걸리를 즐겨 먹는 습관은 아마도 그 식탁에서 유래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유초하 선생님은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소주파였다. 그가 직접 담가서 몸에 지니고 다니던 고수(?) 액을 소주잔에 넣어서 나름대로 건강을 챙겼던 선생님은, 평생을 즐겨한 담배와 술로 인해 얻은 위암으로 기어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신체가 고장이 나는 것은 일종의 타당성을 갖는다지만, 나에게 그의 부고는 너무 헐값에 저승의 뱃삯을 치른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전 고문을 당했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던 유초하 선생님과는 햇살을 받으며 함께 산보를 나간 적은 따로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식당 테이블에서 오고 갔던 것이 대부분이나, 내가 술을 먹지 않은 날이면 나는 때로 그의 운전병을 자처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처럼 햇살이 좋은 가을날이면 문득 유초하 선생님이 떠오른다.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던 그였지만 그도 역시 산보를 좋아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가 술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가벼운 산보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에 그를 동참시키지 못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십 년 이상 나이가 많은 유초하 선생님과 자주 어울리는 나를 보고 한 친구는 "늙은이와 어울리는 것이 뭐가 좋으냐"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친구를 나이로 평가하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재밌어서"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었다. 생물학적 나이를 불문하고 재밌는 영혼을 가진 사람은 그냥 재밌다. '재미'를 구성하는 근본은 솔직함이며, '재미'를 발현시키는 요소에는 지성의 합리적인 뽐냄과 인성의 타당한 겸손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런 재미의 덕성과 요소를 갖춘 인재는 그리 흔하지 않다.
여느 날처럼 남편과 집 가까이 있는 대학 캠퍼스를 산책하는데, 은퇴하실 만큼 연배가 높은 교수님 한 분과 제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천천히 속도를 맞추어 산보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남남 동행자였는데, 그 두 사람과 엇갈려 지나가는 길 위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향수가 뿌려진 것 같았다. 오~지성과 품성의 향수, 얼마 만에 맡아보는 향기란 말인가.
향기란 젊고 건강한 신체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나는 가끔 늙은 지성인에게서 지성과 품성의 느긋한 향기를 맡은 것도 같다. 내가 유초하 선생님의 곰방대 냄새를 일종의 향기로 느꼈던 것처럼, 고유한 정신의 소유자에겐 특별한 향기가 있다.
내가 젊은 시절 육십이 넘은 선생님과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젊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보다 한참 어린 남자 후배가 "다음에 같이 산책합시다~"라고 건넨 인사말에 그날 몹시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언제 식사 한번 합시다~"라는 피상적인 인사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