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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Oct 11. 2021

니 죄가 무엇이냐?

(우화 "양파 한 뿌리"  패러디)

염라대왕이 물었다.

"니 죄가 무엇이냐?"


"예, 저는 간음을 했다고 합니다."

미스터 리가 조그맣게 말했다. 화가 난 염라대왕이 호통을 쳤다.


"어허, 니 죄를 니가 알진대, '~했다고 합니다'는 무엇이냐?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스터 리가 펄펄 끓는 뜨거운 땅바닥에 고개를 이고, 흐느끼듯 가는 숨을 몰아쉬며 자백했다.


염라대왕이 기다란 수염을 다듬으며, 미스터 리 옆에 있는 미스터 윤에게 물었다.

"니 죄가 무엇이냐?"


"억울합니다, 대왕님~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더러 왕이 될 사람이라고 손바닥에 적어 줘서, 그리 믿은 것뿐입니다. 저는 평생을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미스터 윤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세상 무서울 거 없는 검사처럼 대답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허, 참 이상한 일이로다. 여기는 명부에서 죄지은 자들만 보내는 곳인데, 너처럼 떳떳한 사람이 어쩌다 여기로 보내졌을꼬~이하구나."


한참을 고민한 후에, 염라대왕이 말했다.

"죄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죄가 아니다. 명부는 거짓을 좇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의 값으로 저울질한다. 자, 너희에게 여기에서 탈출하여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도스토옙스키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방식이다."


염라대왕이 미스터 리와 미스터 윤 앞에 각 한 개씩의 양파 뿌리를 던져 주었다. 눈치가 잽싼 미스터 윤이 조금 더 커 보이는 양파 한 뿌리를 얼른 낚아챘다. 염라대왕이 다시 말을 보탰다.


"그 양파 뿌리는 힘이 없어서, 너희들이 양파 뿌리에 매달린 채로 천상까지 겨우 도착할 수 있을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매달리거라~"


염라대왕의 말이 떨어지자, 미스터 리와 미스터 윤의 수호천사가 날아왔다. 미스터 윤이 커 보이는 양파 뿌리를 수호천사에게 건네며, 빨리 자기를 끌어올리라고 재촉한다. 수호천사가 잡고 있는 양파 뿌리를 따라 미스터 윤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여우같이 생긴 여인이 잽싸게 미스터 윤의 발목을 잡고 매달린다. 미스터 윤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여보, 매달리는 놈 있으면 발로 차서 떨어뜨려요. 이제 우리 둘만 천국으로 올라갑시다~"


여우 같은 여자는 남편의 주문이 떨어지기 전부터, 벌써 몇 놈을 걷어차고 있는 중이었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미스터 리가, 수호천사가 건네주는 양파 뿌리를 잡고 조금 뒤늦게 날아올랐다. 어느새 미스터 리의 발에는 수십 명의 죄인들이 매달려 있었다. 미스터 리는 그들에게 말했다.


"자, 조금만 힘을 내요, 제 발목을 꽉 붙드세요.  우리 모두 함께 천국으로 들어갑시다~"


미스터 리의 발목에 수십 명의 죄인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미스터 윤이 비웃듯이 말했다.


"아까 염라대왕님 말씀 못 들었나? 우리가 잡고 있는 양파 뿌리는 힘이 약해서 끊어질 수 있으니, 조심히 매달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 거는 금방 끊어질 걸세."


여우 같은 여인과 미스터 윤은 계속해서 달려드는 죄인들을 걷어차며 높이 높이 올라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스터 윤이 잡고 있던 양파 뿌리가 툭 하고 끊어졌다.


한편 미스터 리의 양파 뿌리에는 어느새 죄인들 수백 명이 매달려 있었다. 미스터 리가 계속해서 아래 매달린 사람들에게 말했다.


"한 명도 밀어내지 말고, 한 사람이 한 명씩 앞사람의 발을 잡아서 기다랗게 사다리를 만듭시다. 그러면 모두가 함께 올라갈 수 있어요~" 


미스터 리의 말처럼 수백 명의 죄인들이 사다리 모양으로 차례차례 매달려 있는데도, 신기하게도 미스터 리의 양파 뿌리는 끊어지지가 않았다. 미스터 리의 수호천사가 말했다.


"미스터 리, 당신은 한순간 욕정을 이기지 못했으나, 사람들을 향한 당신의 연민 어린 마음이 당신의 죄를 씻었어요. 당신과 함께 매달려온 모든 사람들이 각 한 사람씩을 구원했으니, 당신들은 모두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미스터 리의 수호천사는, 한 사람 당 한 명씩 구원한 죄인들을 천국 문 앞에 데려다 놓고 웃으며 떠나갔다. 미스터 윤의 수호천사는 끝도 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미스터 윤을 가엾게 바라보며, 울면서 떠나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우화 "양파 한 뿌리"를 패러디해 보았습니다.


(2021년 10월 1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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