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유명진
광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 김민경입니다.
저는 재료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구요. 제가 대주제로 삼고 있는 건 '생주이멸'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생기고 유지되고 변화하고 사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불교 용어인데요. 저 스스로나 주변 환경의 변화가 이 단어와 잘 맞아떨어지는 경험들을 하며. 정말 살아가는 세상과 알맞다고 느낀 덕분에 인생의 많은 일들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의미가 큰 단어로 자리 잡았어요. 그 모든 사물이 이렇게 생겼다가 결국엔 사라지기에, 작업 또한 유기적이고 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일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알긴산나트륨'을 재료로 선택하였습니다.
'한천'이나 다른 가루들도 써보긴 했었는데 '알긴산나트륨'이 만드는 과정도 재밌었고 말라비틀어지는 형태가 주는 느낌이 흥미로웠어서 작업에 써야겠다고 정하게 됐어요. <괴리>를 보시면 재료를 처음 쓰며 형형색색의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순환적인 재료를 사용은 했지만 결국 이 행위 자체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계속 발생하는 쓰레기나 잔재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많이 들다 보니 '이건 결국 내 욕심이었구나.', '이걸 만들고자 하는 이 마음마저도 내 욕심이구나.' 싶어서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차라리 작업하는 걸 선택하고 제가 느낀 바들을 이야기로 풀어보자 하여, 친환경 소재인 '알긴산나트륨'을 비교적 영속적인 재료인 철사, 알루미늄 소재같이 날카로운 것들로 찌르고 엮는 행위를 통해 제가 자연을 괴롭히게 되는, 작업자로서 갖는 욕심과 괴로움을 표현하게 됐어요. 철사 작업을 할 때는 저도 손을 되게 많이 다치거든요. 뾰족하고 차가운 제 욕심이 저 역시 찌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뒤엉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을 계속해 나가요.
'알긴산나트륨'으로 아직은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저의 모순적인 면들을 다 담고 있는 재료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질릴 때까지는 계속 쓸 것 같아요.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웃음) 재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되게 반죽 같은데 칼슘을 푼 물에다가 담가놓으면 경화 단계를 거쳐서 젤리처럼 변해요. 그 상태에서 말리면 다루기 쉬운 정도가 나오는데 그때 이제 철사를 엮어내요. 엮을 때 기분이 묘한 게 이 굳은 '알긴산나트륨'이 되게 피부 같거든요. 실제로는 차가운데, 이입이 많이 돼서 그런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색깔도 그렇고 제가 만들었다가 형태를 유지하고, 단단해졌다가 또 사라지는 게 실제 생명과 동일한 점들이 많이 느껴졌어요.
마지막에 '알긴산나트륨'이 사라진다고 해도 작업을 하면서 드는 부채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편한 마음인 것 같아요. 전에 완전히 기성품을 사용해서 전시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그래도 지금은 남는 건 이 철사들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회화는 저한테는 큰 벽 같은 느낌이에요. 회화는 한 화면 안에 배치하고 풀어내야 하는 건데 저한테는 좀 어렵고 막막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안에 다 담는 게 잘 안돼 서 설치 쪽으로 눈을 돌렸던 게 저에게 더 맞았죠. 공간을 채우는 게 저는 훨씬 낫더라고요. 항상 마음속에는 고향처럼 회화가 남아있지만, 화면만 덩그러니 보고 있으면 뭘 해야 할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계속 강한 것 같아요.
설치 작업 같은 경우에는 공간을 최대한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해서 감각적으로 구성하는 편입니다. 저는 계획을 완전히 잡아서 하기보다는 작업해 나가면서 이런 것도 재밌겠다 한번 해 봐야지 하면서 작업하는 식이에요. <머리 잃은 비둘기> 작업만 미리 계획을 좀 했었네요.
작업들이 부서지면 부서지는 대로 두고 형태가 사라지더라도 그냥 두는데요. 부서진 것들은 주워다 보관하고 있어서 아예 이 친구들을 모아서 공간 한쪽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알긴산나트륨'이 경화 단계에서 다른 대상을 눌러놓으면 자국이 그대로 남는 특징이 있어서요. 표면 모양이 남는 걸로 무언갈 각인시키는 작업을 해도 재밌겠다 싶어서, 지역 분들과 같이 돌아다니면서 도시 내에 혼적이라든지 빈틈이라든지 일부분을 찍어내 아카이빙 하는 작업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한테 이러한 재료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전에 전일빌딩에서 워크숍《흔적 없이 흔적 남기기》를 할 때 다들 만져보고 신기해하시는 게 기억에 남기도 했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혼자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올해 호랑가시나무 레지던시로 오셨던 뉴질랜드 신디 작가님께서 먼저 의뢰를 주셔가지고 작가님이 주신 재료로 제가 모빌 형태를 만들었거든요. 그때 협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어요. 항상 저는 혼자서만 작업해왔어서 누구랑 같이 하는 게 좀 어려웠거든요. 부탁드리는 것도 민폐가 아닌가 싶어 제 성격상 혼자 끙끙거리며 한 게 많았었는데. 신디 작가님이랑 협업을 해보며 '생각보다 할 만하다!'를 느꼈습니다.(웃음) 덕분에 저 역시 앞으로 도움도 요청해 보고 다른 사람들과 많은 걸 해봐야지란 생각이 들었네요. 사실 이번에 설치하고 싶었던 영상 작업이 하나 있었어요. AI를 다루는 친한 작가님께 제 드로잉 작업을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끔 부탁드렸던 작업인데요. 촉박했지만 되는 걸 보고 '아, 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더 부탁도 많이 하고 다니려고 합니다. 이번 개인전 《흔적의 아이러니》의 서문도, 설치할 때도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이라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고설켜야 더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뭐니 뭐니 해도 돈이지 않을까 싶어요. 작업실을 쓰거나 재료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돈에 종 연연하고 싶지 않은데 모든 생활이 돈으로 귀결되니까요.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과 예술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작업을 같이 끌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진짜 최고는 작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지만 아직은 안 되는 부분이어서요. 그래도 아직은 제가 고집이 좀 있어서 잘 팔리는 것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게 더 크네요. 다만, 일할 때마다 '이 시간을, 이 체력을 내 작업에 쓰면 훨씬 나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냥 아직은 젊으니 열심히 해야죠. 아직은.
저는 그냥 작업을 오래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주변에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나 할머니 될 때까지 작업할 거라고.(웃음) 꾸준히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만약에 아무리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어서 중간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예술 활동을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돌아가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업은 그냥 진짜 재미있어서 하는 게 제일 크긴 한데 저도 좀 신기해요. 작업할 때에 힘들긴 하거든요. 근데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일은 꾸준히 못 하는 게 많은데도, 창작만큼은 '아 죽겠다.' 하면서도 계속하고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냥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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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시끌벅적한 연말 분위기의 카페 속에서 이야기하니 우리가 하는 고민도 여기 누군가와는 맞닿아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된 공간에서 이해받지 못할 일들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일부라고. 많은 예술인들이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한 실효성을 의심하지만, 내 앞에 그리고 또 내 옆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걸 의심하지 말아야 함을 느낀다. 그림 한 장, 글 한 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작년 12월 느꼈기에 더욱이.
인터뷰어 : 유명진
사회의 이슈를 외면하기에는 조금 예민하고 주변에 편재한 문제를 느끼기엔 조금 둔감한 어중간한
사람으로서 붕 뜬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좋아하여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감각으로 기준선에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그러모아 전시 기획을 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통 속의 추구미 너머》(2024), 《단면의 총합》(2023), 《보물찾기: 빼앗긴 호기심을 찾아서》(2023) 등이 있다.
본 인터뷰는 2025년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특별의제
‘문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