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난가병
얼마 전에 유튜브 짤을 본 적이 있다.
진반농반으로
성인 ADHD의 양상에 대해 묘사한 짤이었는데,
등장인물이 애들 방을 치우러
방에 청소기를 들고 방에 들어가서
책상 위에 물컵이 보이고
갑자기 본인이 목마르다는 게 느껴져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다가
카운터탑에 있는 전화기를 보고
병원 예약 해야 하는 거 생각이 불현듯 나서
전화기를 짚어 들었는데
폰 첫 화면에 보이는 게임 아이콘에 꽂혀 게임을 하다가
문득 기침을 해서 환기를 시켜야겠다고 창문을 열었는데 방충망이 찢어진 걸 보고
업자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친구의 애의 안부를 묻는 류의 스토리…
그걸 보면서 웃지 못하고
이건 ”난가“도 아니고 ”나네“
며칠 전에도 내가 스캐쥴 다 받아 알려주기까지 한
엄마 백내장 수술 당일날 까맣게 까먹고
엄마한테 수술 잘 받았는지 전화도 안 하는
까마귀 짓을 해 놓고 “나 왜 이럼?” 하고 있던 차.
어제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검도를 갔고
난 수업이 늦게 끝나 혼자 집에 돌아와
남편이 따로 챙겨 준 스시를 엄마랑 통화하면서 먹고는
접시를 싱크에 넣으려는데
아침에 끓인 오뎅탕이 눈에 띄었다.
꼬치 스틱 때문에 뚜껑이 잘 안 닫혀 곰방 상하겠으니
한 번 끓여놔야지 하고
부러 꼬치까지 일일이 다 뽑아서 스토브를 켜고
오늘은 운동하지 말까? 함시롱
침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에잇! 놀면 뭐 함? 걷다 오자!’ 하면서
갈아입으려던 옷을 다시 제대로 입고
그 길로 현관을 나섰다.
그게 9시 반 남짓.
워낙의 스캐쥴이라면
남편과 아이들의 귀가 시간은 저녁 11시쯤.
한 20분 정도 걸었을 때
내가 아직 학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에게 문자가 옴.
“집 난리 났어!”
난 그때까지도 무슨 얘긴지 못 알아먹고
”왜? “
”내가 아까 애들 먹인다고 오뎅탕 불 올려놓고
안 끄고 그냥 검도 갔나 봐 “
”Oh my God!“
머릿속에선 주마등처럼
약 30분 전 엄마랑 웃으면서 통화를 하면서
유유자적 오뎅탕을 데우겠다고
오뎅꼬치를 국자로 밀어 빼고
그 빌어먹을 스토브를 켜는
내 손이 생생히 스쳐가고…
그 길로 난 “당신이 아니라 나야”라는 대답도 못하고
가던 길을 뒤돌아 미친 듯이 걷기 시작.
수술 한 무릎 때문에 뛰지 못해
환장하게 답답한 맘을 부여잡고
정말 미친듯한 경보를 시작했다.
“집 난리 남” 이란 말에
원래 11시에 오는 사람이 지금 전화를 했다는 건
집에 불이 나서 남편에게 연락이 갔구나 라는 지레짐작과 함께
소방차가 출동하고
막 아파트 이웃이 전부 다 밖으로 나와 대피해 있고
우리 애들은 막 놀라서 울고 하는
별의별 소름 돋는 상상의 나래가
한계를 벗어나 정수리 꼭지를 뚫고 뻗쳐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당도한 남편의 메세지…
“당신 어디야. 당신이 스시 먹었어?”
”응. 힝.. 내가 범인이야~ 히잉~“
”크하하하하 “
저 크하하하하 메세지에
난 긴장이 풀려 미친 경보를 하다가 주저앉을 뻔했다.
‘아. 괜찮은 건가… 소방차를 포함한 일련의 상상은 현실이 아닌 건가.‘
다행히 그 소름 끼치는 상상은 현실이 아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마치 미리 내가 사고를 칠 것을 누군가 대비를 한 것 마냥
UBC 검도 연습 스캐쥴에
여러 우연을 겹쳐
남편과 애들의 검도 연습이 일찍 끝나
내가 운동하러 나가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집에 도착한 덕에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
내가 심각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나 진짜 ADHD 아닐까??
“아니? ADHD 아니고 A. G. E. D야.
”에이쥐이디가 뭐야… A Gressive.. e… 뭔 디스오더?”
“피식”
아….
Aged…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