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그리고 사랑

그가 사랑하는 법

by 갈휘연

4년 전 1월 말에 스키를 타다가 넘어졌다.

당시 ‘와, 목 부러진 거 아니야?’ 싶게 심하게 넘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고 스키헬멧에 감사하며 눈을 털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앞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어 뭔가 심하게 잘못됐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상 바로 MRI를 찍는 것은 무리.

일단은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refer되어 며칠 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MRI를 찍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전문의는 촉진을 하더니 Total ACL Torn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전방십자인대 완전파열”


뭐든 당장 죽는 게 아니라면 심각할 수 없는 캐내디언 전문의 아니랄까봐 “네가 원하면 수술을 해도 되고 좀 조심히만 살면 안 해도 된다”는 건조한 조언을 줬다.

‘진짜 그런가?’싶게 무릎에 brace만 하면 일상생활하는 데는 문제는 없었으나 간혹 무릎이 휙 앞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식겁한 일이 여러 번.

여러 가지로 리서치를 해 본 결과 역시 수술을 하는 게 났다는 결론으로 밴쿠버에서 Sports Medicine으로 가장 저명한 정형외과의사로 다시 refer를 받았다.


1월 말에 사고가 나고 10월 중순에 수술을 받았으니 운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리퍼 받은 surgeon이 면밀히 MRI 스캔도 보고 무릎 진찰을 한 결과 전방 십다인대 뿐 아니라 외측인대도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었고 수술 시간은 2-3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어났다.




그즈음까지 매일 아침 아이 셋을 등교시키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말없이도 가능한, 거의 머슬메모리로 완수가 가능한 테스크였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도시락을 만들고 나보다 더 꼼꼼한 유니콘은 애들을 깨워 준비물은 다 챙겼는지, 숙제는 다 준비가 돼서 가방에 있는지 챙기고 내가 만든 도시락을 나눠주고 전날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먼저 가라지로 내려간다.

그럼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애들과 같이 내려가 차로 아이들 등교 완료한 후 Granville Island로 가서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수술 후, 나는 수술한 환자가 되었고 아침에 애들을 챙기는 일은 온전히 유니콘의 몫이 되었다.




나는 워낙 야행성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끔찍하여 고등학교까지 학교 다는 것 중 가장 싫은 것을 꼽으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런 올빼미가 아이를 낳고 잠다운 잠을 아예 못 자는 삶을 살았다.

첫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할 무렵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통잠을 잘 무렵 셋째가 태어났고 막내까지 통잠을 잘만 하자 첫째가 프리스쿨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로 첫 아이를 낳은 후, 수술을 하기 전까지 나는 늦잠을 맘 놓고 자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늦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무릎수술을 한 환자가 된것이다.


이 세상, 100% 좋은 일, 100% 나쁜 일은 없다.


수술을 하고 다리는 아팠지만 나는 늦잠을 공식적으로 자도 되는 사람이 됐다.

너무 행복했다.

수술한 지 2주쯤 지났을 무렵, 아침에 아이들 라이드를 다 하고 돌아온 유니콘과 같이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말했다.


“자기야. 나 요즘 너무 행복해.”


“다리 수술을 했는데 뭐가 행복해. 아프고 불편하지.”


“아니야. 행복해.”


“뭐가 그렇게 행복해?”


“나 늦잠을 자는 게 정말 너무 행복해. 큭.”


“… 그래? 그럼 계속 늦잠을 자면 되겠네.”


“응?“


“계속 늦잠 재워줄게.”


“애들 등교 혼자 시키는 거 안 힘들어?”


“둘이 할 때보다야 힘들긴 하지. 근데 당신이 그렇게 행복하다는 걸 못하게 하는 거랑 바꿀 만큼 힘들지는 않아. 이제 애들도 많이 커서 나 혼자서도 할만하고.”


수술 한지 2년 반이 흘렸다.

아침에 좀 뻐근은 하지만 내 다리는 이제 멀쩡하다.


하지만 난 매일매일 아침이 계속 행복하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