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by 소로

눈을 떠보니 환승역이 코앞이었다. 이래저래 정신이 없이 있던터라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열차의 계단 손잡이에서 손 끝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니 날선 추위가 온 몸을 관통했고 비로소 낯선 곳에 왔음이 실감났다.

다음에 갈아탈 기차는 5시간 뒤에나 도착한다. 나는 그동안 오직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발길이 닿는대로 우선 승강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오는 길부터 몹시 지쳐있었다. 이럴 땐 아무 것도 하고 싶지도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이 주는 묘한 설렘과 긴장 때문인지 역사 안의 풍경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비로소 대합실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광판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편의점, 식당, 안내소, 이 지역의 특산물이 진열된 가게......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나는 한참을 역사 안을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다. 너무 오래 걷자 더 이상의 설렘은 사라지고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역사 안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왠지 늘상 그곳에 앉아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꺼내 읽어보기도 했지만 도통 시간이 멈춘듯 흐르지 않았다. 문득 유리창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췄다. 그것은 초저녁의 달처럼 창백하고 어딘가 어울리지 못한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겉잡을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역 밖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철로 아래 사각의 커다란 구조물들이 겹겹이 쌓여 끝이 안보일 정도로 쭉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늘이 져서 어두컴컴했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여전히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나는 곧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사이에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두 눈을 감으니 웅성거리는 말소리, TV 뉴스 속 사건사고, 열차를 타러가는 발걸음 소리, 기침 소리 등이 뒤섞여 몽롱하게 들려왔다.

시간이 다시 흘러 승강장으로 나가보니 이미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머리 위에서 하얀 조명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안내 방송은 크게 울려퍼지다가 순식간에 어둠 속에 집어삼켜졌다. 드디어 5시간의 기다림 끝에 열차가 도착했다. 나는 다시 남은 여정을 떠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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