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유리 너머 도시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길쭉한 도로에 자동차들의 불빛이 깜빡이며 물결처럼 흐르고 있다. 밤거리를 거친 속도로 내달리는 자동차들, 고층 빌딩의 창문으로 보이는 작은 실루엣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과 가끔씩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가로등. 유리창의 틈서리로 스며드는 도로가의 아비규환 같은 소음은 레스토랑 안의 악기 연주에 잠식되어 버렸다. 모든 것들은 적어도 이 레스토랑 안에서 만큼은 황홀하고 아름다운 전망이라 불리고 있었다.
박 사장은 테이블 위 접시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딘가 골몰해 있는 모양이었다. 이따끔씩 주위를 돌아다니는 직원들을 의식하는 듯 했으나 그의 시선은 대체로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옆자리,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자리에 그의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표정으로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첫 요리가 나오자마자 그녀는 아무 말없이 사진 속에 담았다.
유경은 시종일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녀의 발치에 포크와 냅킨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계속해서 발로 툭툭 건드리기만 했다.
승호는 의자 끝에 가볍게 걸터 앉아 포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테이블 아래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어딘가 침울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묻는 말에 흔쾌하게 대답을 해줄 것만 같은 평범한 고등학생 모습이었다.
두번 째 음식이 나오자 부인이 다시 카메라를 켰다. 그러자 박 사장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인은 눈을 살짝 흘기면서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급 승용차가 지하 주차장 입구를 나와 방금 전 레스토랑의 통유리창 너머로 보였던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서로 아무 말없이 조용했다. 부인이 유경과 승호에게 한두번 정도 말을 걸었으나 돌아오는 건 짧고 성의없는 대답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네 식구는 각기 뿔뿔히 흩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 고층 아파트의 거실 베란다창문으로 서울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거실의 작은등만 켜두었다. 전구색의 은은한 불빛이 집 안의 가구들과 값비싼 장식품들을 화려하게 덧칠했다.
유경은 책상 앞에 앉아 이튿날 있을 쪽지시험을 준비하며 전공서적을 펼쳤다. 자그마한 글자들이 종이 위에 가득했고 그녀는 글자들을 더듬어 읽어가며 종이 위에 볼펜으로 써 내려갔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글자들이 또렷한 선을 잃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을 깨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하지만 잠시 귓가에 맴돌 뿐 그녀는 책 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외워야할 책의 내용들과 음악 소리가 뒤섞이다가 어느순간 웅성거리는듯한 기계음과 속삭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머나먼 곳에서부터 이 속삭임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음이 귓가를 울렸다. 유경은 잠시 눈을 떴지만 거세게 몰려오는 졸음에 다시 눈을 감았다.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짧지만 아주 강렬한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아주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것은 사람 손에 미끄러져 실수로 떨어진 소리라기 보단 누군가가 의도한 악의적인 소리였다.
유경은 의자에서 몸이 떨어지질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았다.하지만 두 눈은 점차 초롱초롱해졌다.
'쨍그랑!'
'쾅!'
유경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 바닥엔 반짝이는 유리조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유경은 유리 조각을 하나 집어들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방이 전부 날카로운 조각이었다.
잠시 뒤 불이 꺼진 거실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유리를 삼킨 유경과 새벽을 기다리는 마지막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