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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어스아워

어둠 속에서 글쓰기

by 낮밤

공허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믿지 않지만

가르쳤기에 의무감을 가지고 껐다.

공허함은 나를 녹여

끄자마자 눈물이 나

물소리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작은 소리가 들려

말소리일까?

발소리일까?


없는 듯이 조용하기를 참 잘해.

없는 듯이 죽은 듯이 사는 걸 타고난 게 아닐까

외롭고 미안하고 눈치 보이고 걱정돼 그립고 감사하지만

내게 인간관계란 그런 거야

덧없고 모든 것이고 방해가 되고 힘이 돼

감각을 잠시 쉬게 두자.


잠시 쉬었다 쓰려니까 앞에 뭘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이어서 쓸 수가 없다. 글씨도 개발괴발이겠지.

파에 꽃이 피려는지 꽃봉오리 같은 게 나왔다. 잘려도 조용하고 뻔뻔하게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다. DNA는 신기하다.

난 호랑이 눈썹이 항상 났었는데 이제 안 나는 거 같다. 너무 많이 뽑았나 보다. 그게 그립다. 다음번에 나면 지니고 있겠다.


어제 동학년 선생님들과 회식을 했는데 삭발 때가 더 예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머리가 없는 게 제일 잘 어울려.


이 정도의 퓨어한 의식의 흐름은 오랜만이다. 지금 고작 길어 봤자 한 20분 지났을 텐데 온갖 주제가 다 나오겠다. 이제 눈물은 그쳤다. 하지만 언제든 흘릴 수 있다. 배우가 되었어야 했나?


내가 재미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또, 창의적이라고 했다. 내가 재미있고 창의적인 것은 아마도 내가 어색함을 싫어하고 남을 웃기기를 좋아하는 엄청 산만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나도 그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장점을 발휘할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어스아워 꽤 좋다. 혼자 살면서부터 적막을 꺼려하는 나에게 이렇게 반강제적으로라도 빛과 소리와... 모든 자극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시간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꽤 즐겁고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숲이 그렇다는 것처럼. 내 시계를 다시 원래대로 느리게, 느리게 원래대로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왜 장롱 속에 있던 우머나이저를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 무슨 용도인지를 몰라서 그럴까?


잠이 온다. 남은 시간은 잠을 자겠구나.



매년 진행되는 어스아워. 2023 어스아워 소등행사는 3월 25일 저녁 8:30~9:30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첫 참여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으니 해야겠죠. 일 년에 한 시간은 너무 적습니다. 어스아워뿐 아니라 더 자주 공존을 떠올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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