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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Jun 10. 2023

10. 부채감

친구의 문자로부터

  도원결의처럼, 다 같이 하자고 했던 일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쏟기 위해 발을 빼던 그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 100g짜리 분동이 두 개쯤 놓였다. 아니다, 구석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운데인 것 같다. 아무도 원한 적 없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부채감이 피어난 것이다. 전과 후는 그대로였지만 이것만이 달랐다. 같이 힘을 모았던 일에서 내 무게를 가볍게 할수록 마음은 거꾸로 무거워갔다.


  부채감은 좋은 동력이 되었다.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온통 쏟고 난 한정된 시간 속에서도 느리지만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테다. 내게 부채감은 한 번 갚았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총합이 일정한 운동-위치 에너지 일정 법칙처럼, 행동-부채감 일정 법칙이 성립했다. 내가 하는 행동만큼 부채감이 감소한다. 행동이 줄면 부채감은 다시 그만큼 증가한다. 그래서 주 5일의 근무가 끝나는 순간부터, 금요일 저녁과 주말을 작당모의와 책모임과 돌봄과 시위로 채우기 위해 애썼다. 잠시 환희에 차는 주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사의 자리로 돌아간 월요일에 느끼는 부끄러움이 커졌다. 강간, 임신, 출산을 반복하고 아이를 빼앗기는 여성 소들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하면서 아침부터 "우유 가져가세요"라고 말하는 나. 동물에게 '고기'라는 말을 쓰고 싶지도, 그것을 먹으라고 하기도 싫지만 "고기 한 조각 더 먹자"라고 말하는 나. 우유 급식을 없애달라고, 채식 급식을 활성화해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 동료의 여성, 퀴어, 장애 혐오 발언을 정정하지 못하는 나.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겁쟁이인 듯한 나. 시스템을 같이 허물겠다는 건지, 아니면 동료들이 애써 허물어 놓은 걸 성실히 다시 짓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뭘 하는 사람인 걸까.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는 나는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가 없었고, 부채감이 변형된 수치심은 주 5일 근무에 맞춰 성실히 나를 둘러쌌다.


  역시나 독서모임에 참여한 그다음 날, 함께 모임에 참여했던 친구가 나에게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너는 내 부채감 대상 10명 중 한 명이야.' 평소에 그 친구는 놀랄 만큼 책을 많이 읽어 내게 부러움과 존경심을 느끼게 하던 친구였다. 기본 300쪽이 넘어가는 사회학/철학 책들을 게눈 감추듯, 또는 내가 아침마다 베이글을 먹어치우듯, 읽어재끼는 친구다. 나는 그런 책을 한 권 읽는데 굉장한 시간이 드는 데다가, 고작 한 권 읽었으면서 내가 아주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과한 자부심까지 느끼는데 말이다(이건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에 대해 부채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이다. 놀란 감정이 들었음을 솔직하게 전했다. 나도 당신에게 부채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책을 더 읽지 않아서, 더 알지 않아서 관심 갖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그렇다고.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의 <부채감1>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어짐을 느꼈다. 부채감을 꺼내 놓으니 그것이 날아갔다.


  비건을 시작하고서 얼마 안 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환경을 위한 일을 충분히 하고 있어(아주 오만하다)."

  사회운동에 '충분히'가 성립할까. 내 앞에는 무조건 누군가가 있다. 나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 사람들 앞에도 그보다 더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앞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다 보면 '제일' 애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이듯 남의 일이 더 빛나고 멋져 보이는 법이다. 어찌 보면 좋은 차, 좋은 집처럼 부를 좇는 것보다야 건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무력감이 도사리는 사회운동에서 '비교'는 번아웃을 앞당기는 요인이 된다. 어차피 사회 운동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제일~ 사회운동 많이 해~(‘내가 제일 잘나가’ 멜로디)



그러니 부채감은 느끼자면 끝도 없는 것이다. 즐거운 동력이 될 것만 남기고 날려 보내고 싶다. 부채감의 고백이 떳떳하고 편해질 수 있을까? 일단 창문을 열자.


1. 나는 직장에서 튀지 않는 일원이기 위해 비인간동물에 대한 혐오를 묵도하거나 직접 이행한다. 그럴 때마다 동물권 운동과 동료들에게 부채감을 느낀다.

2. 나는 같은 이유로 퀴어임을 숨기는 말과 행동을 한다. 퀴어 운동에 부채감을 느낀다.

3. 나는 장애해방 운동과 그 외 내가 이제 막 첫 책을 읽었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누리고만 있었음에 부채감을 느낀다.


이렇게 활짝 열고 고백하면 부채감들도 숨을 쉴 거다. 솔직하게 꺼내 놓으면 공기를 머금어 날아갈 거다.

오래, 조금씩, 길게 함께하기 위해 창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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