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의 6시간 동안 어린이 스물 다섯 명을 돌보는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 버겁다. 게다가 나는 이걸 혼자서 감당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솔직해질 수 있을까?
벌레들이 자꾸 내 몸에 붙는다. 땀냄샐 좋아하시는가? 작아도 걸음걸이가 다 느껴져요. 오늘 한 학생이 급식실에서 큰 거미를 보자마자 말릴 새도 없이 달려가서 밟아버렸다. 거미는 납작해지고 다리가 꺾여 죽었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잘했다고 했다. 죽고 싶은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자, 죽고 싶어하면서 아무런 티도 내지 말고 25명을 돌봄해보시오. 자, 머리를 때리는 학생이 앞에서 머리를 때릴 때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자해방식인 내가 따라서 머리를 안 때리는 방법을 100가지 말해보시오. 왜냐면 교사는 죽고 싶어하면 안 되고 꿈과 희망을 줘야지요. 자해는 좋은 어른의 모습이 아니니까 아이들 앞에서 하면 안 되지요.
여러분, 사실요. 저는 아픈 사람이에요. 저의 특징 때문에 아파지기도 했고, 아파서 특징들을 지니게 되기도 했어요. 하루를 아프지 않고 살았던 때가 그리운데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아요. 가끔 사진으로 봐요. 요즘은 좀 더 자주요. 활짝 웃고 있었던 때의 사진을 봐요. 저는 여러분이든 나든 행복해야 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살이는 한 번 제대로 아파볼 사람들의 축제라고 생각해요. 아프지 않다면 저에겐 없어도 그만인 사람일 거예요.
여러분, 사실요. 저는 여러분이 하는 말과 행동 중 아픈 말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티를 내기 어려우니까 자해 충동이 올라와요. 자해란 스스로 해하는 걸 말해요. 해하고 싶지만 해할 수 없어서 제게 하는 거죠.
여러분, 사실요. 저는 어른만큼 어른이 아니에요. 저는 제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때면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 "못 하겠어!"하고 울어버리고 싶어요. 여러분이 하는 대부분의 말에 관심이 없어서 '어쩌라고'라고 말하고 싶고, 여러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면 으아아아아아아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러면 안 되겠죠?
저는 여러분의 선생님이잖아요. 선생님은 강하고 카리스마 있고 정상성의 수호자여야죠. 콜포비아가 있고 시끄러운 어린이를 싫어하는 비혼주의 반자본주의 정신장애인 동성애자 고기를 사체로 보는 비정상인 선생님은 아무도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그게 저예요. 몰랐다면 제가 모든 어린이를 사랑하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육식인 정상인 연기를 꽤 잘하나 보네요. 이 연기는 매번 저에게 수치예요.
제가 부끄럽나요? 이 사달을 어쩌면 좋을까요? 하지만 이 이상함을 쓸 곳이 있긴 해요. 당신이 이상할 때가 온다면 곁을 더 오래 당당히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이거, 모르는 척 할 거라면 앞으로도 행운을 빌어줘요. 그렇지만 저는 제발 발가벗고 싶어요. 연기하기가 싫어요. 제발 제 취약함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안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 약하고 아파요. 한없이 약하고 아파요. 이걸 알고도 우리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전 더 '좋은' 선생님으로 대체되고 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