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하는 옆 아파트가 분진과 소음의 합의 조건으로 합의금과 아파트 외벽 물청소 그리고 페인트질을 걸었다. 그래서 물청소와 페인트칠을 편하게 하려고 벽에 닿는 나무를 합의금으로 모두 잘라 없애버렸다.
사진: 숙환
나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지키고 싶어서 처음으로 대자보 같은 것도 써보고 혼자 그리고 동료들을 모아서 비폭력 직접행동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의 조건으로 진행하는 것이라서 찬성을 했나 보다. 반대를 하면 뭔가 잃는 느낌이었나보다. 찬성이 더 많아서 벌목이 이번 주 내내 이루어졌다. 공교롭게도 4월 16일부터 시작했다. 계속 나무가 잘렸고 나무의 도살은 금요일 저녁에 끝났다.
고등학생 시절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은데 세월호 사건 당일의 감각은 구태여 지금까지 생생했다. 잘린 나무를 만지다가 송진이 묻는 말캉하고 끈적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느끼고 애도하면 괜찮을 수가 없었다. 슬픔, 그리고 아마도 화와 무력감. 을 닫으려 애쓰면서 휘청휘청 걸어 다녔다.
사진: 숙환
목요일은 정담회가 있었다.
(고기, 새우, 닭알이 모두 들어있는 샐러드를 내 쪽으로 밀며) 이거 많이 드세요. 비, 건, 식단이잖아요.
종합적으로 다 들어 있어서 그렇지는 않네요. 같이 드세요.
아유, 아니에요. 많이 드세요.
000 선생님은 단백질은 어떻게 채우나?
콩을 아주 많이 먹습니다.
엄마도 채식하세요?
아니요.
그럼 엄마가 반찬 하기 힘드시겠다. 나물 반찬 힘든데.
따로 살아요.
항상 안 먹는 거예요?
어떨 땐 신념을 굽히고 먹기도 해요.
이 피자는 야채 많아서 000 샘 먹어도 되겠다.
그렇네, 그렇네.
그냥 그렇다고 맞장구치면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감각을 둔화시키고 먹었다. 자책을 하지 않기 위한 둔화였다. 아빠가 다음에 또 물어보면 붙잡고 30분 동안 구구절절 안 먹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동물 종 별로 어떻게 태어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죽는지까지. 진짜 그렇게 해버려야겠다. 어떤 동물부터 소개해 드릴까요?
회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장님이 태워주셨는데, 이번 주말에 아기를 데리고 동물원에 가서 동물 쇼를 본다고 하셨다. 아놔. 다시 한 번 느낌과 생각을 닫으려고 애쓰면서 아. 그렇군요. 우와. 최고예요, 반응을 했다.
사진: 숙환
결국 이번 주엔 참지 못하고 학교에서 자해를 했다. 그냥 순간적인 충동이라서 생각하고 막기도 전에 내 손이 행했다. 교실도 아니고, 복도에서 조급함과 불안함이 역치를 넘어버렸다. 누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런 내가 선생을 해도 되는 것인지.. 아직도.
내내 긴장과 불안 속에 있어서인지, 피곤해서인지, 감각을 둔화시키는 노력을 해서인지 뭐가 됐든 지금 감각이 둔화되었다고 느낀다. 근데 나는 이런 나의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딱하고, 사무적이고 나의 감정도 타자의 감정도 별로 신경을 쓰려하지 않는 상태다. 이럴 때 눈물을 흘리면 조금은 돌아올 수 있다.
사진: 숙환
만지고, 숨 쉬고,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은데 이 세상은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굳어지고 꺼야 덜 아파하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