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를 ‘희망!’에서 ‘행복!’으로 바꿨다. 바꿀 때는 그냥 그러고 싶어서 바꿨는데 기차에서 생각해보니 이건 큰 변화다.
행복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한 거다. 희망을 가지고 견뎌내는 대신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기로 한 거다.
한 달 전, 도시에서 벗어나서 시골이라 불릴 만한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하루 일과가 단순해지길 바라면서 왔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눈앞에 보이고 잡히는 일을 하느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미뤄진다. 도시에서는 꽤 많은 부분 외주화하고 있던 것들을 직접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주변에 먹을 수 있는 비건 식당이 없으니 외식을 안 하게 된다. 그럼 직접 도마와 칼로 채소를 썬다. 배송이나 주문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집중력을 더 요한다.
눈앞의 과제를 마치면 다음 과제로 간다. 설거지하기, 동거하는 개의 똥오줌 치우기, 이불 빨래하기, 집 청소하기. 도시에서는 다른 일정들로 꽉 찬 스케쥴 때문에 고작 귀찮은 방해꾼이었던 이런 일들이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나를 봐, 내가 있었어!”
말그대로 살림을 하면서 나는 나를 살린다. 나를 ‘나아가게’ 하는 건 임금노동이지만 나를 살리는 건 이거다. 살림이라는 말이 지긋지긋하게 좋다. (가부장제에 의해 소외되는 집안일은 정말로 정말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내 삶에는 이렇게 얼마 전부터 나 스스로도 저평가했던 나-돌봄 노동이 조금씩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고요한 가운데 나의 상태를 더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픈지, 지쳤는지, 피곤한지, 무엇이 더 필요할지 가늠하는 시간이 늘었다.
기차. 서울에 잠시 갔다가 돌아가고 있다. 문득 내가 내 손으로 바꾼 프로필 메시지가 이해되어 버린 거다. 이제 나한테는 미래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고민하기보다 지금 여기의 나를 살피고 힘이 돼주련다.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현관을 쓸고, 두부를 볶으련다. 기지개를 펴고, 빨래를 하다가, 커튼을 걷고 해를 맞으련다. 힘들어하면 토닥여 미루련다. “나를 봐, 내가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