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이 아니라 그냥 걷는 갠데요 길 안 잃어버렸는데요
2022. 1. 14.
‘유기견’은 그냥 ‘견’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정상성에 맞춰 설계된 이 곳에서 그들은 발 디딜 곳 없이 자꾸만 밀려난다. 그들의 외출은 길을 잃은 것, 떠도는 것으로 이름 붙여진다. 그들을 가두지 않고서는 인간은 견딜 수가 없다. 비-정상적인 종이 활보하는 것이 실제로 타종을 전혀 고려하여 설계되지 않은 도시에서는 위험하기도 하고, 틀에서 벗어나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은 보호소에 들어가 ‘유기견’이 되어 선택 또는 안락사의 결과를 맞는다. 보호소는 터지고, 그들은 '갇혀'있기 때문에 매일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없다. 돌보고자 하는 인간들은, 최소한만 하더라도 하루도 쉼을 가질 수 없다. 그야말로 죽어난다.
인간들은 ‘견’을 자꾸만 가두어 도시를 단정히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뒤엎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그들의 산책이 ‘탈출’이 아닌 ‘산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이름이 ‘유기견’이 아닌 ‘견’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걷는 개.
산에서 들에서 도시에서
개라는 종으로도 개의 몸을 지니고도 위협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서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가 시작이 될 수는 있지만 존재하기 위해 인간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면, 끝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표어를 다음으로 사용해야 할까, ‘소유하지 말고 공존하세요’ 이런 것?
2025. 3. 14.
그렇게 초원을 찾는다. 찾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초원을 목격하면 전화해달라는 전단지를 붙인다. 소각되어버릴 전단지와 활동하면서도 만들기 싫어서 재활용만 해본 현수막이 수십 개 마당에 쌓여있다. 어떤 동의도 없었다. 초원을 찾는데 드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나는 초원을 잃어서보다, 초원을 찾기 위해 벌이는 일들과 만들어지는 것들 때문에 지구공동체에 면목이 없다. 초원은 강한 의지로 나갔고, 초원에게 인간은 가해자였기에, 자유를 누려 본 적 없지만 원했다는 것을 알기에, 초원을 찾지 못해 슬프지 않다. 평생 뜬장에 갇혀살다가 잠시씩 하네스 없이 탈출할 때만 자연스럽게 걷고 뛰었고, 그 모습이 모노노케히메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고 멋지긴 했다. 개 본연의 삶.
'강아지는 주인이 세상의 전부'라는 말이 무서웠다. 그건 몇 번의 좌절 끝에 일어난 일일까? 말 그대로 '주인'의 '소유'였지만 주인이 세상의 전부였던 적 없는 초원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꼬리를 올리거나 흔들지 않았다. 내가 외출할 동안 집이나 울타리에 갇혀 있다가 내가 오면 밥을 주니까 반가울만도 한데 초원은 절대 반가워하지 않았다. 가만히 구석에 앉아서 멀리서 다가오는 나를 지켜봤다. 절대 내가 자신의 세상을 채우게 두지 않았다. 가축으로 살아왔지만 그는 가축화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뭐가 많다. 개의 세상에도 뭐가 많을 수 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게 모두 절망당했을 때 주인이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되고 주인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학대는 상대의 기준이지 않나? 내가 의도적인 학대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학대를 당한다고 느꼈을 거다. 하네스를 입히고 벗기는데만 줄행랑을 치고, 무서워서 오줌을 싸버렸으니. 학대자로부터 개가 도망가면 그건 기쁜 일이 아닌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행위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면 그건 자신이 만들어낸 성공적인 선택이 아닐까?
개는 나간다고 해서 100% 죽지 않는다. 여기는 더욱이 워낙 혼자 걸어다니는 개들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계속 보호소 신고는 살펴볼거고 로드킬도 확인해볼거다. 죽임당한다면 안타깝겠지. 근데 워낙 겁이 많아서 도로를 아예 피해다닐 분이다. 강변이나 산길로 다니고 있겠지.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정든 가족도 아닌데, 같이 살자고 했는데 같이 살기 싫다고 나간 그를 왜 '잃어버린' 거라고 하는지, 언제 그 개가 '내 개'가 되었는지. 왜 다시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와 별로 친분이 없어서 날 본다고 해서 오지 않을 거다. 도망이라면 몰라도. 이상한 생각일 것 같다. 책임 회피일지도 모른다. 너무 낙관적인 것일지도. 그러나 난 오히려 이렇게까지 모든 걸 동원해서 찾아 다시 가두려는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 100% 설득돼서 이렇게 해서 잡는 게 맞다고,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싶다.
2025. 11. 15.
들개와 같이 사는 세상을 상상
반려견, 유기견, 보호소견 카테고리를 나누지 말고 그저 개가 개일 수 있는 세상을 상상
같이 공부하는 동료가 '상상하면 방법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상이다. 비록 학교 교육에 의해 창의성이 엉망이 되었지만, 늦게나마 상상을 해보자. 집개의 외출을 걱정하게 되지 않는 세상을.
"다녀오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