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의 충돌

강과 강의 대립! (연애 이야기임)

by 낮밤

일어나자마자 율에게 일어났다는 카톡이 와 있다. 율과 나는 지금 현재 시점에 함께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율은 현재 순간의 욕구와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반면 나는 계속해서 미래를 생각한다. 계속할 수 있을지, 얼마나 우리가 같은 선상에 놓여 있을 수 있는지, 그러니까 승산이 있는 관계이자 시간인지를 검토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궁극적으로 연애를 통해 함께 성장해갈 삶의 동반자를 얻고 싶다. 그렇지만 율은 그런 것에 반감이 있다. 그럼 이 관계를 지속하여 나에게 좋은 점이 무엇인가?


나에게 일종의 수련이나 훈련 같다. 알게 되는 것도, 놀라게 되는 것도, 새롭게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닫아놓았던 세상이 율을 통해 흘러들어온다. 세상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그는 내가 선을 그었던 것들 속에서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성실한 사람이다. 소비주의와 가족주의....... 그곳에서 나는 도망쳐 나오려고 용을 쓰고 애를 쓴 지 수년. 그게 극도로 싫고 답답하고 슬펐다. 그런데 그는 그 속에 정말 잘 적응한 사람이다. 충실히 돈을 벌어내고, 그렇게 번 돈으로 주변 사람들을 위해 쇼핑을 하고, 명품 브랜드 물건을 얻으면 행복을 느낀다. 그런 것이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중간히 도망친 나보다, 대안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그가 더 행복하다.


그러니까 극과 극이 만난 셈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버블 안에만 살아서 더 극치를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만난 - 내가 수년 동안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나와 멀리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어떨 땐 뇌가 진짜 아프다.ㅋㅋ 그러니까 정말 웃긴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이상해하며 '왜 저러지' 한다.


그런데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율을 통해 현실을 비춰본다. 율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볼지는 모르겠다. 이념을 볼까? 고집을 볼까? 그를 통해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깨닫는다.


내가 그를 만난 건 애인이라는, 얼마만큼은 서로를 종속시키기로 약속된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속박이 적은 친구와 같은 관계였다면 최소 무관심, 최대 서로를 혐오하며 멀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 나의 행동이 이웃이나 환경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다 집어치우고 순간을 편하게 즐기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대범해지고 어찌 보면 어리석어지고 어찌 보면 지혜로워지는 것이기도 하겠다. 정신 건강에 좋다. 그는 연애 전에 내게 '소소한 행복'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정말로 아쉽지만 웃긴 점이, 서로의 플러팅이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세계에서의 호감 요인이 그의 세계에선 비호감 요인이고, 그의 세계에서의 호감 요인이 나의 세계에선 비호감 요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난 중고 옷만 입어."라고 말하면 나라면 이것을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하지만 상대는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 반대로 "저녁 시켜놨어."라고 말하면 그의 세계에서는 매력적인 말이겠지만 나에게 시켜놓다는 말은 쓰레기와 직결되는 사고회로 때문에 "배달 쓰레기를 조금 더 생산해 냈어."라는 말처럼 들려 치명적인 것이다.


내가 읽는 그럴싸한 제목의 책들조차도 글을 읽기 싫어하는 그에게 하등의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우리의 회심의 한 방들은 우습게 흩어지고 오히려 "엥? 왜?"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난 중고 옷만 입어 -> 엥? 왜?

저녁 시켜놨어 -> 엥? 왜??



어떨 때는 그가 실시간으로 나를 답답해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이 관계를 먼저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매번, 내가 끝내왔지만 말이다. 나는 나름 이 관계에서 배우고 시도하는 것이 있다. 집을 깨끗이 관리하는 방법, 자기검열을 덜 하는 방법,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법. 게다가 함께 한 공간에 있을 때 마냥 즐거운 순간들도 있다.


그러니 우연한 이 만남을, 너무나 유한함이 분명한 이 만남을 즐길 거다. 그러다가 마무리의 제안이 들어오면 이 극도로 다른 두 사람이 이만큼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꼭 기억할 거다. 난 우리가 짧은 시간이나마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세계에 물들고 물들이려는 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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