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에 철 들기

by 낮밤

치과 의사인 아빠에게 진료를 받으러 갔다. 치과 진료 중에 아빠 얼굴을 봤다. 그냥 봤다는 게 아니고 거의 도합 2시간 치료를 받았으니까 찬찬히 쓰다듬듯이 봤다. 그런 적이 너무 오래 돼서 왠지 눈물이 났다. 주름도 눈썹도 눈도 턱도 오래오래 쳐다봤다.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인데 거리를 두었어서 눈물이 났고, 고생이 많고 안쓰럽고 뭐 그런 이유로 바보같은 아빠를 보면서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하지만 치과 진료 중이었기 때문에 아파서 우는 걸로 오해받을까봐 흘리진 않았다. 아빠가 새삼 유한한 존재라는게 느껴져서 아까웠다.


원래는 2월 3일 아침에 진료를 받고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빠가 진료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 기자회견이랑 1인 시위가 있어서 진료를 못 봐준다고 했다. 기자회견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힘이 되니까 인원 채우러 나도 가겠다고 했다. 청와대로. 아빠는 내가 온대서 발언문을 썼다고 했다. 원래는 즉흥으로 하는데 더듬거리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도 연대는 즐거운 일인데 아빠는 그게 너무 고마웠나보다.


어제 역에 저녁 늦게 도착해서 바니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말투가 술을 좀 마신 것 같았다. 원래 같으면 '에휴,,' 하고 대충 듣고 끊었을 텐데, 그날 아빠를 바라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약속이 많아서 우리 가족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어릴 때 엄마와 아빠가 많이 싸우고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은 우리의 세상에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울었다. 나도 아빠를 오늘 보며 느낀 걸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울고 아빠는 더 울었다.


엄마는 2월 3일 같이 외식을 하면서 내가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어려움이 있다고 하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만날 때?"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몇 년 동안 내 마음 속에 있던 응어리가 다 풀렸다. 엄마랑 얘기하는 게 가벼워졌다.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것인지 몰랐는데 엄마한텐 엄청 어렵고 어려웠을 걸 이해한다.


이제 나는 엄마도 아빠도, 이제야 두 사람으로 보인다. 원래 나를 중심으로 '나에게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고 생각했다면, 이제 그냥 본인들의 삶을 본인들의 기질과 성격과 선택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으로 보인다.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나를 만나게 된. 너무 늦은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우는 소리를 듣고 바니가 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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