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맏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자 Aug 31. 2023

맏이 4. 오오스기소학교(大杉小學校)에서

  

 

오오스기소학교로 전학 와서의 생활은 그럭저럭 6학년 졸업때까지 계속되었다. 담임은 하세가와(長谷川) 선생이었는데 일본군 해군 출신으로 대단한 긍지를 가진 자로 밤낮 일러전쟁 때의 도고 원수의 승리를 자랑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학예회 때는 이 승리를 소재로 한 내용뿐이어서 속으로는 지루하고 기분 나빴으나 이미 그즈음에는 일본인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화가 되고 있었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짓밟힌 나라의 백성은 개인의 역량에 상관없이 승자 나라에서는 무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인의 교육이 별도로 있었으나 특히 풍습과 관용은 그들 눈에는 야만인처럼 보였다. 우리의 습관이나 생활양식은 후진국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나는 학교생활에 많은 고민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선생이 조선인 학생에게 무슨 마늘 냄새가 난다느니 도시락 반찬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어린 학생에게까지도 서슴지 않고 많은 학생 앞에서 내깔렸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도 꾹 참고 참 일본인 같이 행세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도 놀이도 또 생활도. 그래서 심지어 나는 왜 조선인으로 태어났는지 원망하며 남몰래 울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으나 반에서 중간쯤은 항상 지켜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이야기지만 나는 우리 반에서는 국어 시간의 요미카타...(ヨミカタ…… )읽기는 학교 전체에서 나를 따를 자가 없었다. 틀림없는 읽기와 나의 목소리는 다른 학생보다 잘했던 모양으로 나고야시가 주최하거나 혹은 교육위원회 같은 데에서의 경연에 늘 1등을 했다. 참으로 나는 일본인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맏이3. 나고야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