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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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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Aug 30. 2023

맏이3. 나고야에서

그 후의 생활은 결국 식구들이 모두 나고야로 이사하게 되었다. 풍교와 나고야는 그렇게 멀지 않은 역시 애지현愛知懸 내였다. 나는 모 소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전에 있던 학교와 달라 친구도 없고 더구나 조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나는 그 무렵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공부도 별 의욕을 갖지 못하는 소년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때 사고로 눈에 의안을 끼고 손은 불편 없을 정도로 나았으나 새로운 객지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할 수 없이 살 뿐이었다.


아버지의 성격은 원래 활달한 편이었다. 재담을 잘하며 한문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친구들이 모여 토론을 하거나 무슨 경삿집 같은 곳에서 한시로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니 같은 친구 사이에서 평이 좋아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서시는 그런 분이었다. 노래는 물론 술도 잘하셨다. 인품은 진취의 기상이 높았고 지적인 면이 풍부했다. 지금도 과거 그때 사진을 보면 그 기상이 엿보인다.


그러나 사고가 난 이후에는 젊은 패기는 점차 없어지고 가난의 테두리 속에서 현실을 타파하기에는 너무 힘이 약했다. 그러니 마음만 위축되고 자식에게도 큰소리 한 번 없었다. 인정이 많았으나 우유부단하여 자구책의 관리는 부족한 편이었다.


얼마간 그곳에서의 생활이 계속되었는데 일본인만 사는 곳이라 매사에 불편함이 많았고 나는 학교도 가기 싫어 부모 몰래 공원에서 놀다 집으로 오는 일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조선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과거 아버지와 관계했거나 같은 고향 사람이 사는 나고야의 변두리 수공정水功町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의 대삼(大杉)소학교에 3학년으로 전학했다. 물론 사촌 형과 누나도 함께.


나고야에 살면서 아버지와 사촌은 함께 힘을 모아 일했다. 무슨 일인지는 기억이 없다. 이곳에 이사 온 지 2년쯤 되었을까 사촌은 결혼했다. 지금의 학규 어머니 전우순이다. 신랑은 그 후 우리 부근에 살던 부여 출신으로 역시 일본으로 건너와 있던 한창석 매형이다. 나는 그런 속에서도 철모르고 학교 다니면서 놀이에 빠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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