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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04. 2023

맏이 7. 사회로


나는 大曾根中學校(다이가쿠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꿈꿨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셋째 동생 희준이가 이 무렵 태어났다.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전통 사회에서 나의 진로는 막혔다. 어느 친구의 소개로 철도국에 응시했는데 학과는 합격이었다. 많은 경쟁자를 따돌리고 합격했지만 면접 시험에서 탈락되었다. 이유가 조선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분을 참기 어려웠다. 그때 아버지는 모 조선인 교도회 간부와 함께 경찰특고부에 항의를 했는데 불만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말에 억울하게 그 건은 그 선에서 끝나버렸다. 나의 첫 번째 사회시련이었다.

공부는 하고 싶었다. 남과 같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학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욕망은 결국 깨지고 이웃에 살던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양⭕⭕(대전 출신)과 같이 놀게 되었다. 그는 공부는 형편없었으나 돈 버는 것만이 보람이라는 부모의 말을 믿고 일찌감치 소학교를 졸업하자 어느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그 친구는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 이미 4구 라디오 정도는 조립하고 전기 수리에도 익숙해 보였다.

나는 그것이 부럽고 그와 함께 놀기를 좋아했다. 결국, 놀고먹는 처지였지만 나도 라디오 정도는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만 없앤다고 부모의 꾸중도 많이 들었다. 어떻든 돈을 벌어야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평범한 사고에서였다.

마음은 항상 떳떳한 직장이라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한동안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은학이라는 친구로부터 취직의 권유를 받았다. 시내에 있는 田中轉寫(조국전사)라는 회사였는데 도자기에 꽃무늬 인쇄를 해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꽤 큰 회사였다. 나의 일은 제판부에서 꽃무늬 모양을 인쇄하는 일인데 온종일 기계에만 매달려야 했다. 총무부에서 나의 학교 성적을 떼어보니 성적이 대단히 좋다고 하여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조선인이라는 멸시도 없었다. 모두 자기 일만 열심히 했고 근로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는데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그런 사람들, 다시 말해서 서민층 사람들이었다.

나의 초임은 월 12전이었다. 그 가치가 얼마였는지는 모르고 월급을 모두 어머니께 드렸더니 그래도 자식 키운 보람이라고 좋아하시면서도 공부를 못 시켜 이런 일을 하게 했다며 한숨을 쉬신다.

공장에서의 생활은 단조롭고 매일 같은 일만 하는 것이니 마음은 편했으나 발전은 없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마음이 거기에 이르니 가끔 결근도 하게 되었다. 친구 양이 나와 만나면 그걸 그만두고 자기와 같이 일을 하자고 한다. 월급도 그곳보다 좋고 첫째 일이 자유롭고 상급학교 야간은 다닐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한동안 인내냐 전직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그 공장을 그만두었다. 공장장은 집까지 찾아와서 만류했으나 이미 나는 결정한 후였다.

과연 새로 들어간 회사는 마음에 들었다. 외근, 내근이 자유로운 전자회사인데 주로 라디오, 앰프, 스피커 등을 취급하며 일본 전국 각 학교, 회사, 공장 등에 방송시설을 해주는 업체였다. 일이 생기면 각 지방에 가서 며칠씩 있다가 오는 수도 많고 침식도 자유로와 전에 도자기 공장 때와는 딴판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공부할 요량으로 야간 공업학교 전기과에 입학했다. 헌 학생복도 사고 헌 가죽 구두도 사고 학생다운 복장을 입어보니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의 그 신나는 모습을 보고 사장, 여사무원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아버지도 사촌과 함께 무슨 일을 새로 하셨고 어머니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시며 간단한 가내수공업을 하셨다. 어머니가 볼일 보러 나가실 때 점심으로 냄비 바닥에 김치를 깔고 찬밥을 올려놓고 비벼 먹으라고 하시곤 했다. 그것을 맛있게 먹는 동생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그 향긋한 냄새는 아직도 나의 미각을 돋운다.

행복이란 무엇이었나. 그 무렵에도 나는 나의 생활에만 열중했다. 반은 일하고 반은 공부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나의 취미대로 놀았다. 아직 가정의 전체 관리 의식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미성년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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