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면 정신연령이 낮아진다.
술을 마시면 사람은 어려진다.
정확히 말하면, 바보가 된다. 최소한 나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보고서와 눈치로 보내온 인간이, 소주 두 병 앞에서 갑자기 원시인으로 돌아간다.
“좀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야, 그게 말이 되냐?”가 된다.
문장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사고도 짧아지고,
존댓말이 사라질수록 인간관계의 존중도 사라진다.
술자리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 있다.
평소엔 말수 적던 사람이 갑자기 래퍼가 된다.
“나는 말이야… 진짜 억울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인생사를 푼다.
그 순간 그는 40대도, 50대도 아니다.
그냥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 애다.
그리고 꼭 한 명은 등장한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이 말은 90% 확률로 분위기 깬다.
좋아한다는 말은 고백이 아니라 사고의 전조다.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하지만 솔직함에도 나이가 있다.
성숙한 솔직함은 책임을 동반하고,
술에 취한 솔직함은 변명을 동반한다.
다음 날이면 항상 같은 문장이 따라온다.
“어제 내가 좀 취했잖아.”
술이 무서운 건 기억을 지우기 때문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평소에 눌러두었던 투정, 인정 욕구, 비교심, 열등감이
알코올이라는 열쇠를 만나 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래서 술자리는 종종 어린이집 같다.
칭찬에 약하고, 무시에 상처받고,
자기 장난은 장난이고 남의 말은 공격이다.
그리고 꼭 한 명은 떼쓰고, 한 명은 달래고,
한 명은 “야, 그만 마셔”를 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걸 ‘어른의 술자리’라고 부른다.
어쩌면 술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힘겹게 어른 흉내를 내며 살고 있는지를 폭로하는지도 모른다.
낮 동안 쌓아 올린 품위와 자제력이
알코올 몇 도 앞에서 무너지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술 취한 사람을 보면 화보다도 연민이 먼저 든다.
“아, 오늘은 저 사람이 하루치 인내를 다 써버렸구나.”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신연령이 낮아졌다는 건, 책임까지 면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른은 술에 취해도 어른이어야 한다.
아이 흉내를 낼 수는 있어도, 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숙취보다 더 쓰린 건 발신기록이다.
어젯밤에 내가 남겨놓은 통화기록을 듣는다.
“뭐라고 변명하지?”
아~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