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남겨진 태도

어느 봄날에

by 이칸 eKhan


봄볕이 한결 부드러워진 오후였다.


햇살은 유리창을 지나 실내로 스며들고, 커피는 더 이상 뜨겁지 않은 온도로 식어가고 있고.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순간들을 ‘잠시 멈춰도 괜찮은 시간’이라 부르게 되었다.

젊을 때는 쉽게 허락하지 않던 여유였다.


책을 펼쳐 두고도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나는 그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의 삶을 잠시 내려놓은 얼굴들. 그 사이에서 조용히 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키가 아직 식탁 높이 보다 작은 아이 하나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가 뒤돌아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조심스레 밀어 넣는 모습을 보고 나의 시선은 멈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보고 있다는 의식도 없는 듯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문득, 오래된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사소한 일들을 ‘가르쳐야 할 것’로 여기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스스로는 잘하지 못하면서 말로만 예의를 말하게 되었을까?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성취감도, 기대도 없다. 그저 일상의 한 동작을 마무리하는 표정이다. 아마도 그 아이는 ‘정리하라’는 말을 배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등을 오래 바라보며 자랐을 것이다.

말보다 먼저 행동이 있었고, 설명보다 앞선 침묵이 있었을 것이다.


중년이 되면 알게 된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훈계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말은 쉽게 잊히지만, 반복해서 보아온 태도는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는 것을.

그 작은 손길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을까?
조급함으로 스쳐간 등은 아니었을까? 혹은 누군가가 조용히 따라 해볼 수 있는 뒷모습이었을까?


봄볕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고, 아이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날의 장면은 나의 머릿속에 현상된 필름으로 오래 남았다.

아마도 삶이란, 이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남겨진 태도들로
조용히 사람을 설명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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