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른이 부재한 시대에서

9. 그래서 더 어른이 필요하다(1부 끝)

by 이칸 eKhan

묻지 않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설명하지 않는 꼰대적인 권위도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종종 권위를 침묵과 동일시한다. 말하지 않아도 따르게 만드는 힘, 질문이 사라진, 아니 못하는 자리, 설명이 필요 없는 상태를 권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침묵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질문이 막히고 설명이 멈춘 자리에서는 신뢰도 함께 멈춘다.

권위는 질문을 막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견디는 힘에서 자란다.


어른은 질문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질문을 귀찮아해서도 안된다.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도 피하지 않는다. 질문과 설명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사람 사이의 신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신뢰는 거창한 사건이 아닌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묻고, 다른 누군가가 성의 있게 설명하는, 누군가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들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조용히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 마음 위에서 권위는 조금씩 자리를 얻는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나이나 직함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기억한다.

어려운 질문 앞에서 어떻게 서 있었는지, 책임이 시작되는 순간에 물러섰는지 아니면 남아 있었는지.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들은 한 사람의 무게가 된다.

어른이라는 말은 아마 그 무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른처럼 말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차분하게 말하는 법, 상황을 설명하는 법, 갈등을 정리하는 법. 나이가 들수록 말은 점점 더 능숙해진다. 말의 모양은 단정해지고 어조도 안정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말하는 방식만 보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 능숙해지는 것과 책임을 감당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른처럼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른처럼 책임지는 일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임은 말이 아니라 선택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낯선 장면을 본다. 겉모습은 분명 어른인데도, 막상 중요한 결정 앞에 서면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 책임이 시작되는 순간, 말은 갑자기 가벼워지고 사람의 본색이 드러난다.

흉내로 세운 모습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시간은 결국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말의 무게를 아는 일에 가깝다.


세상에는 필요 없는 말이 너무 많다.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말, 관계를 풀기보다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하는 말. 말은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은 말을 아낀다. 모든 순간마다 말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지킨다. 성급한 말 한마디가 관계를 흔들기도 하고, 조용한 침묵 하나가 사람을 지켜 주기도 한다.


어른은 그 차이를 안다. 말해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그 기준은 거창한 원칙이 아닌 오래된 감각에서 나온다.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관계를 무너지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 상황을 조금 더 오래 버티게 하려는 마음 이 같은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기준이 관계를 지키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단하게 해다.


종종 이런 말이 들린다.

요즘은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

이 말에는 실망과 동시에 기대도 담겨 있다.

사람들은 사실 완벽한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아닌 질문을 막지 않는 사람, 설명을 피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책임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지는 자격도 아니고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이름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조금씩 만들어지는 굳은살 같은 것이다.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생각보다 외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질문을 받아 내야 하고, 설명을 이어 가야 하며, 때로는 책임을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조금 덜 흔들리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

어른이란 결국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그 자리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지 모른다.

마음에 굳은살이 두껍게 자리 잡은 진짜 어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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