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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送人(송인) / 벗을 보내며

금삿갓의 우리 漢詩

by 금삿갓

送人(송인) / 벗을 보내며

- 정지상(鄭知常) -


雨歇長堤草色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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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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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임을 보내니 슬픈 노래 울리네.


大同江水何時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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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의 강물은 어느 때나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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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니

이 시는 고려시대 최고 서정 시인으로 꼽히는 정지상의 절창(絶唱)이. 그는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서 5세쯤에 전에 대동강 위에 뜬 오리를 보고 ‘何人將白筆(하인장백필) / 어느 누가 흰 붓을 잡고, 乙字寫江波(을자사강파) / 새을(乙) 자를 강물 위에 썼는가?’라는 즉석 시를 지었다.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으로 압운(押韻)은 ◎표시된 다(多), 가(歌), 파(波)로 가운목(歌韻目)이다. 우리나라 송별시 중 으뜸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설(一說)에 따르면 정지상이 홍분(紅粉)이란 기생과 헤어지며 지었다는 것인데, 알 수 없다. 대동강 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시인들이 지은 제영시(題詠詩)가 수없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중국 사신이 오면 모두 걷어치우고 정지상의 이 작품만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보이기가 마땅치 않았지만, 이 작품만은 중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는 자신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과연 이 시를 본 중국 사신들은 하나 같이 신운(神韻)이라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 허균이 지은『성수시화(惺叟詩話)』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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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상과 김부식(金富軾)의 관계는 묘했다. 시는 정지상이 한참 고수이고 김부식은 문장에 능했다. 묘청(妙淸)의 난 때 김부식(金富軾)이 제일 먼저 정지상을 죽이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소설이지만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해 본다. 이규보는 <백운소설>에서 김부식이 평생의 라이벌 정지상의 손에 불알이 잡혀 죽었다는 것이다. 김부식이 묘청의 난 진압 때 정지상을 죽이고 난 뒤 어느 날 봄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柳色千絲綠(류색천사록) / 버들 빛이 천 가닥의 실처럼 푸르고,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 복사꽃 일만 점이 붉기도 하다’ 그러자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이 엉터리 같은 놈아, 네가 무슨 재주로 버들가지가 천 가닥인지, 복사꽃이 만 송이인지 세어 보았다는 거냐? 시를 쓰려면 ‘柳色絲絲綠(류색사사록) / 버들가지 가닥가닥 푸르고,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 복숭아꽃 송이송이 붉구나’라고 써야지, 이 멍청한 놈아”라고 했다. 과연 한 글자를 바꾸었는데 시의 분위기는 완연히 바뀌었다. 바로 시를 퇴고(推敲)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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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정지상의 귀신은 끈질기게 김부식을 따라다녔다. 하루는 김부식이 절에 가서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또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불알을 힘껏 잡아당겼다. 터질 듯한 아픔을 참느라고 용을 쓰니 김부식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지상 귀신이 “술도 먹지 않았는데 왜 얼굴이 붉어지느냐?”라고 묻자, 김부식은 “隔岸丹楓照顔紅(격안단풍조안홍) / 건너편 언덕의 단풍이 낯을 비춰 붉어지네”라는 시로 응대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더욱 강하게 불알을 잡고 “이놈의 가죽 주머니는 왜 이리 무르냐?”라고 하자, 김부식은 “네 아비 음낭(陰囊)은 무쇠였더냐?”하고 얼굴빛을 변하지 않았다. 정지상의 귀신이 더욱 힘차게 음낭을 죄므로 부식은 결국 측간에서 죽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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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승구(承句)의 ‘송군남포(送君南浦)’를 해석하면서, 남포(南浦) 임을 보낸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한시의 연원(淵源)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남포(南浦)에서 임을 보내는 것으로, 남포(南浦)는 한시에서 이별의 장소로 주로 쓰입니다. 기원전 300여 년에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구가(九歌)> 중 <하백(河伯)>에서 ‘그대 손을 잡고 동쪽으로 가서(子交手兮東行), 미인을 남포에서 보내네(送美人兮南浦)’라고 읊은 이후로 대부분의 문학가들이 이별의 장소는 남포(南浦)로 일컬었다. 남포의 지명은 굴원의 초사(楚辭)에서는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의 장강(章江)이 갈라지는 곳이고, 강엄(江淹)의 <별부(別賦)> ‘송군남포(送君南浦) 상여지하(傷如之何) /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려니 이 아픈 마음 어찌할까’에서는 복건성(福建省) 포성현(蒲城縣) 남문 밖을 말한다. 당나라 시대에 광윤문 밖에 배를 정박하던 곳에 남포정(南浦亭)이 있었는데 거기를 지칭하기도 했다. 왕유(王維)의 송별(送別) 시에도 ‘송군남포루여사(送君南浦淚如絲)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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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이야기 하나더 붙이면, 조선 시대 어떤 서울 나그네가 평양감사(平壤監司)로 있던 친구를 찾아가 노니는데, 기대에 비해 대접이 시원치 않았다. 술맛은 맹물을 탄 맛인데다가 수청하는 기생도 데면데면하다가 이별의 즈음에도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이래저래 서운했던 그는 감사를 향해 다짜고짜 “대동강 물이 며칠 못 가서 마르겠네.”라고 하였다. 감사(監司)가 영문을 몰라 “무슨 말인가?”하고 되묻자, 서울 나그네 왈, “술잔에는 첨주(添酒)의 물이 있는데, 사람은 첨파(添波)의 눈물이 없으니 어찌 강물이 마르지 않겠는가[杯有添酒之水(배유첨주지수), 人無添波之淚(인무첨파지루), 江水惡得不盡乎(강수오득부진호)]?” 참으로 찰진 독설(毒說)이다. 친구 대접하는 감사의 눈치가 빤하니 기생인들 무슨 애틋한 정이 있었으랴 만은, 술에 물을 타느라고 강물도 소모하고 계집은 이별의 눈물도 강물에 보태지 않으니, 과연 대동강 물이 곧 마르지 않겠는가? 『고금소총(古今笑叢)』 「기문(奇問)」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시와 정지상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자못 떠들썩하다. 신광수(申光洙)는 “그때 남포(南浦)서 님 보내던 그 노래, 천년 절창 정지상(鄭知常)이라[當日送君南浦曲(당일송군남포곡), 千年絶唱鄭知常(천년절창정지상)].”이라고 했고, 신위(申緯)는 「논시절구(論詩絶句)」에서 이색(李穡)의 「부벽루(浮碧樓)」 와 함께 나란히 세워 이렇게 평가했다.

長嘯牧翁依風岉(장소목옹의풍물) / 바람 부는 산비탈서 휘파람 불던 목은옹(牧隱翁)

綠波添淚鄭知常(녹파첨루정지상) / 푸른 물결 위에다 눈물 보태던 정지상(鄭知常).

雄豪艶逸難上下(웅호염일난상하) / 호방함과 아름다움 우열 가리기 어려워라

偉丈夫前窈窕娘(위장부전요조랑) / 늠름한 장부 앞에 정숙한 아가씨라.

기구(起句)는 목은(牧隱)의 시 "길게 휘파람 불며 산비탈에 기대었자니, 산은 푸르고 강은 홀로 흐르도다[長嘯依風岉(장소의풍물), 山淸江自流(산청강자류)]."라 한 데서 따온 것이다. 목은의 웅장하고 호방한 기상과, 정지상의 염려(艶麗)하고 표일(飄逸)한 풍격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가늠키는 어려우니, 비유하자면 헌헌장부(軒軒丈夫) 앞에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수줍게 서 있는 격이라는 평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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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상(鄭知常) : 정지상(?∼1135)은 서경 출신으로 초명(初名)은 지원(之元)이고 호는 남호(南湖)이다.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장가로, 그의 작품들은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받지만,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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