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萬景臺) 고향집은 1912년 4월 15일 김일성이 태어난 생가(生家)이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 있다. 원래 만경대는 대동강 하류 부근에 넓은 지역에 솟은 언덕이다. 이곳에 김일성의 증조부가 터를 잡고 4대가 살았기 때문에 고향집으로 된 것이다. 실제 김일성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출생했는데,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안내판에는 붉은 글씨로 김일성이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10대에 혁명의 장도에 오르느라 이곳을 떠났다고 장엄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고향집 안내판도 신성시(神聖視) 되는지 안내판 앞에 받쳐진 꽃병과 꽃다발이 수북하다. 정말 북한 사람들 못 말린다.
<김일성 부모가 심었다는 백양나무와 생가>
<열심히 안내하는 안내원>
<성역화된 안내판 : 꽃다발 무더기>
정말 볼 것 도 없다. 당시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정도이다. 초가집 본채와 헛간채 등이 있다. 본채에는 흙벽으로 된 방에 오래된 장롱이 비치되어 있고, 김일성의 부모(김형직, 강반석)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고, 베틀과 농기구도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우리네 옛날 시골집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것보다는 조금 큰 편이다. 짚으로 이엉을 이은 헛간 지붕에는 박 덩굴이 잘 자라고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그네들에겐 귀중하고 최고의 존엄일지 몰라도 우리 남한 사람들에게 별 감흥도 볼거리도 없이 더운데 고생만 시킨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김일성 생가>
<김일성 부모 사진>
<생가 입구>
<본채>
열성 당원인지 몰라도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여성 안내원을 핸드 마이크를 들고 끊임없이 수령 동지를 찬양하고 있었다. 모두들 건성으로 듣고 사진만 찍고 나온다. 다른 곳의 안내원은 약간 화려한 한복을 입었는데 이곳 안내원만 유독 제사 지낼 때 입는 복장이라서 조금 특이하게 보였다. 아마도 최고의 존엄의 고향집에 대한 엄숙함 때문에 복장 규칙도 다른가 보다. 주변에는 김일성이 어린 시절부터 몸을 단련하며 애국심을 다졌던 씨름장, 맑은 샘, 학습장, 군함암, 활암, 수곡류 등 혁명 유물이 보존돼 있다. 옛집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1970년 4월 15일 개관한 만경대혁명사적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