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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r 05. 2023

(16) 예쁜 게 죄인가요 - 몬탈바니

★ 18禁 역사 읽기 ★ (230304)

동양에서 최고의 미인은 대체로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표현한다. 말하자면 너무 예뻐서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미녀이다. 최고의 미인은 언제나 최고의 권력자(權力者)의 몫이니까 그놈이 미인에게 빠져서 정치를 해롱거리며 잘못하니까 국가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한 놈만 혹(惑)하게 해서 나라를 뒤엎던지 그놈이 죽어 나자빠지든지 둘 중의 하나였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말희(妺喜),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달기(妲己), 주(周)나라 유왕(幽王)의 포사(褒姒),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양귀비(楊貴妃), 조선 연산군(燕山君)의 장녹수(張綠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서양의 역사에 한마디로 너무 예뻐서 수많은 인생을 비극으로 몰고 간 대단한 미인이 있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 그대로 그녀의 미모 역시 도(度)가 너무 지나쳐 비극이 됐던 거다. 신(神)이 질투(嫉妬)할 정도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생졸연대(生卒年代)를 알 수는 없지만 대충 르네상스 시대 15세기 이태리 플로렌스(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 그러나 가장 비극적(悲劇的)인 여인으로 기록(記錄)된 그녀의 이름은 "로자우라 몬탈바니(Rosaura Montalbani)"였다. 그녀가 얼마나 예뻤기에 초반부터 이렇게 너스레를 떠느냐고 하는 분들을 위해 문헌(文獻)에 기록된 거짓말 같은 사실들을 살짝 공개하도록 하겠다. 이 내용이 호사가(好事家)들의 술자리 Y담(談)이나 야담(野談) 꾼들이 지어낸 전설 따라 삼천리, TV시리즈인 믿거나 말거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믿건 말건 있는 걸 있는 데로 옮겨 적는 것이 적는 놈 즉 기자(記者)의 본분이니까. 적자생존은 잘 몰라도 둔필(鈍筆)이 총명(聰明) 보다 낫다는 말은 알 것이다.

일설(一說)에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 창(窓) 가에 다가서서 기지개를 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바람에 마차(馬車)의 통행이 불가능해지자 플로렌스(피렌체) 당국(當局)에서 그 지역을 상습(常習) 정체구역(停滯九域)으로 지정하여 교통경찰을 파견하여 교통지도를 했단다. 그녀가 쇼핑을 하려고 아무 상점(商店)이나 들어가서 아무리 고가(高價)의 물건을 고르더라도 상점 주인들이 한사코 값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점주인과 마누라의 부부싸움이 하루도 끊일 날이 없었다. 그녀가 성당(聖堂)에 예배를 보러 들어서면 남자들이 일동기립(一同起立)해서 보는 통에 성당은 아이돌 탑인 BTS가 온 것처럼 아사리 난장판이 됐다고 한다. 일부 작가들이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에 신이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가 한 발 내딛는 순간, 세상은 눈길 발길 모두 멈추었다. 그 여자가 한 번 바라본 순간, 세상은 혼(魂)을 잃고, 숨이 멎었다.” 6·25 때 난리(亂離)는 난리도 아닐 정도로 피렌체 시가지에서 난리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났단다.

피렌체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르노 강(江)의 어부는 매일 아침 그물에서 고기를 건지는 대신에 그녀 때문에 자살한 젊은이들의 시체를 건져야 했다. 파수꾼들은 도둑 잡는 일은 아예 뒷전으로 미룬 채 그녀에게 퇴짜 맞아 자결(自決)하는 시체를 수거하느라 바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자식들의 불행(不幸)에 격분한 부모들이 자사모(자식을 사랑하는 모임)를 결성해 그녀를 3번이나 고소(告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판사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혹(惑)하여 번번이 무죄(無罪)를 선고했단다. 한 번은 시(市)의 재무 담당관이 그녀와 사귀느라고 공금(公金)을 다 낭비하고도 그녀로부터 퇴짜를 맞자 홧김에 자살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해, 그녀에게 유죄(有罪)를 선고하였으나 아무도 형(刑)을 집행하려고 하지 않아 풀려났다. 여자의 미모(美貌) 때문에 집단 자살이나 광란(狂亂) 사태가 생기는 것이 국가의 공권력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인가에 대하여 당시 통치자 코시모 데 메디치는 회의적(懷疑的)이었다. 그런데 정치적 추방(追放)을 당한 후에 다시 복권(復權)하여 돌아온 고향 땅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본인의 정치적 재기(再起) 기념으로 재소자들을 대량 사면(赦免)하려고 재소자 기록을 보다가 몬탈바니의 기록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 “자유롭게 살기에는 도를 넘어선 외모로, 피렌체에 있어 더 이상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종신형을 선고하노라.” 타고난 외모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으로 외모 자체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삶의 기회를 박탈(剝奪)할 권리가 국가에게 있을까. 코시모는 39년 전에 내려진 그녀에 대한 판결을 보고 심각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사랑한 지오바니 공작(公爵)의 이야기는 그중에 압권(壓卷)을 차지한다. 그 공작은 총각시절에 성당에 예배를 드리러 온 그녀를 처음 보고 완전히 빠져버렸다. 이때 성당의 수도사(修道寺) 피델리오도 마찬가지였다. 금욕(禁慾) 생활을 하는 성직자(聖職者)인 피델리오가 이 정도였으니 총각의 공작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성당의 주교(主敎)가 수도사 피델리오에게 그녀를 내보내야 예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도 공작이 말려서 내보내지 못했다.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면 이렇다. 미사실의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라기엔 아직 앳되었다. 검은 거울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귀밑에서부터 가닥가닥 어깨까지 늘어졌고, 그 일부는 양쪽 옆머리에 땋아서 둥글게 올려붙이고, 보석 박힌 핀과 망사(網紗)로 각각 고정시켰다. 뽀얗게 트림 빛을 띤 동그란 이마는 눈이 부셨다. 그 아래 흑갈색 선이 또렷한 눈썹, 그리고 짙은 속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동자는 십자가와 제단(祭壇)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미간(眉間)에서부터 안쪽으로 약간 휘듯이 곧게 뻗어 내려왔다가 치솟은 그녀의 콧날은 우아했다. 오목한 콧구멍은 흑갈색 구심점에서부터 점차 장밋빛을 띠어 새하얀 피부 속에 그대로 녹아드는 듯 생생했다.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對稱)되는 곡선을 그은 턱, 그리고 가늘고 긴 목 아래 드러난 쇄골(鎖骨)과 어깨선은 성당 내부를 장식한 제단화들의 오묘한 터치와 색채가 띠는 빛을 순식간에 잃게 했다. 굽이치는 곡선을 겹쳐놓은 듯한 발그레한 입술 선의 양끝은 풋 익은 딸기 빛으로 피부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듯했다. 그녀의 상반신에 착 달라붙은 꼬따르디는 우윳빛 가슴께 아래를 금박(金箔)으로 수놓은 무늬와 검붉은 보석으로 촘촘하게 장식하여 눈부심이 더했다. 길고 우아하게 파인 가슴과 잘록하게 들어가는 허리, 그 아래 치맛자락이 사락 끌리는 순간, 시간은 멈추어 버렸다. 허벅지 중간에서부터 트임새로 여러 갈래 들어간 주름이 곧 시간을 좌우하는 바늘과도 같았다.

지오바니 공작(公爵)은 그녀와 혼인하고 싶었지만 가업(家業)을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반대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녀의 환영(幻影)으로 잠을 못 이루는 나날이다. 하루는 연회를 개최하면서 그녀를 생각하며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심한 열병(熱病)에 들어 눈이 거의 실명(失明)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환영에 이끌린 나머지 붓을 들고 공작은 프란체스코성당에 들어가 성당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단다.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가 성당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 둘러보니 성당 안의 모든 그림 중에 천사(天使)나 마리아의 얼굴이 전부 그녀의 얼굴로 덧칠해져 있었단다. 젊은 공작은 설교대(說敎臺)에 죽은 듯이 기대앉아 있었고, 오직 그의 초점 잃은 눈만이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옮겨 다니더란다. 로자우라의 환영(幻影)에 정신이 회까닥 돌아 버린 거다. 성당으로 들어선 사람들의 눈에는 실물(實物)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감흥과 넋을 잃을 정도의 로자우라의 모습이 온통 성당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공작 아버지가 작성한 고소장과 그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녀는 다시 판사 앞에 서게 되었다. 이번의 판사 퓌르무스라는 사람은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를 뺨치는 강직한 독종이었나 보다. 그는 4년 전 그의 스승이며 경륜이 넘치는 분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냉정(冷靜)을 잃었던 사례를 떠올렸다. 퓌르무스라 판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의(正義)의 여신(女神)은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균형 잡힌 저울을 통해 공정한 판결을 한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도 눈을 가릴까 하다가 재판의 기록을 볼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피고인인 그녀의 얼굴을 가리도록 하여 재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플로렌스의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방지(防止) 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에 가면(假面)을 씌워 눈, 코, 입을 가려 독방(獨房)에 가둔 채 남은 생애동안 가면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종신형(終身刑)을 선고하게 된다.

무정(無情)한 세월은 흐르고 흘러 무려 그녀가 종신형을 당한 지, 39년이 휘이익 지나가 코시모대공(大公)이 정치적 복권으로 즉위하게 된다. 코시모(1434-1537)라는 친구는 저 르네상스 역사상 유명한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놈으로 르네상스를 있게 한 중요한 인물이다. 대화가(大畵家) 미켈란젤로도 이 가문의 후원을 통해 출세했다. 이 가문은 은행업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해 전 유럽에 군림했을 뿐 아니라 교황(敎皇)도 두 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가문이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코시모대공이 즉위 기념으로 죄수들에게 대사면령(大赦免令)을 내리려고, 죄수 목록과 죄질(罪質)에 대하여 검토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이름과 죄목이 괴이(怪異)하여 주목하게 된 것이다. 헐, 말이 좀 안 되는 죄목이다. "자유롭게 살기에는 너무 아름다워 가면을 씌워 종신형을 선고하노라."  도대체 얼마나 예쁘기에 궁금증이 생긴 코시모대공은 그 여인을 자기 앞으로 소환(召喚)시킨다. 그녀가 끌려 나오자 그녀의 가면(假面)을 벗기라고 명령한다. 가면을 벗은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유심히 관찰하던 그는 "이 여인이 그렇게 아름답다고?"라며 탄식하듯 신음하였단다. 그리고는 가면을 벗기고 감옥에서 내보내서 생활토록 하였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로자우라 몬탈바니는 어디로 가고 말라빠진 살결과 움푹 꺼진 눈이 퀭하게 남아 마치 해골 같은 늙은이가 있을 뿐이었으니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받은 형벌(刑罰) 치고는 너무나 가혹(苛酷) 하지 않는가? 미(美)의 여신(女神)이 질투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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