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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r 24. 2023

4> 送人(송인) / 벗을 보내며

漢詩 工夫(한시 공부)

送人(송인) / 벗을 보내며

- 정지상(鄭知常) -


雨歇長堤草色多

●●○○●●◎

(우헐장제초색다) / 비 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

(송군남포동비가) / 남포에서 임을 보내니 슬픈 노래 울리네.


大同江水何時盡

●○○●○○●

(대동강수하시진) / 대동강의 강물은 어느 때나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

●●○○○●◎

(별루년년첨록파) /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니

이 시는 고려시대 최고 서정 시인으로 꼽히는 정지상의 절창(絶唱)이. 그는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서 5세쯤에 전에 대동강 위에 뜬 오리를 보고 ‘何人將白筆(하인장백필) / 어느 누가 흰 붓을 잡고, 乙字寫江波(을자사강파) / 새을(乙) 자를 강물 위에 썼는가?’라는 즉석 시를 지었다.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으로 압운(押韻)은 ◎표시된 다(多), 가(歌), 파(波)로 가운목(歌韻目)이다. 우리나라 송별시 중 으뜸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설(一說)에 따르면 정지상이 홍분(紅粉)이란 기생과 헤어지며 지었다는 것인데, 알 수 없다. 대동강 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시인들이 지은 제영시(題詠詩)가 수없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중국 사신이 오면 모두 걷어치우고 정지상의 이 작품만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보이기가 마땅치 않았지만, 이 작품만은 중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는 자신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과연 이 시를 본 중국 사신들은 하나 같이 신운(神韻)이라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 허균이 지은『성수시화(惺叟詩話)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정지상과 김부식(金富軾)의 관계는 묘했다. 시는 정지상이 한참 고수이고 김부식은 문장에 능했다. 묘청(妙淸)의 난 때 김부식(金富軾)이 제일 먼저 정지상을 죽이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소설이지만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해 본다. 이규보는 <백운소설>에서 김부식이 평생의 라이벌 정지상의 손에 불알이 잡혀 죽었다는 것이다. 김부식이 묘청의 난 진압 때 정지상을 죽이고 난 뒤 어느 날 봄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柳色千絲綠(류색천사록) / 버들 빛이 천 가닥의 실처럼 푸르고,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 복사꽃 일만 점이 붉기도 하다’ 그러자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이 엉터리 같은 놈아, 네가 무슨 재주로 버들가지가 천 가닥인지, 복사꽃이 만 송이인지 세어 보았다는 거냐? 시를 쓰려면 ‘柳色絲絲綠(류색사사록) / 버들가지 가닥가닥 푸르고,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 복숭아꽃 송이송이 붉구나’라고 써야지, 이 멍청한 놈아”라고 했다. 과연 한 글자를 바꾸었는데 시의 분위기는 완연히 바뀌었다. 바로 시를 퇴고(推敲)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뒤로도 정지상의 귀신은 끈질기게 김부식을 따라다녔다. 하루는 김부식이 절에 가서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또 정지상이 귀신으로 나타나 김부식의 불알을 힘껏 잡아당겼다. 터질 듯한 아픔을 참느라고 용을 쓰니 김부식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지상 귀신이 “술도 먹지 않았는데 왜 얼굴이 붉어지느냐?”라고 묻자, 김부식은 “隔岸丹楓照顔紅(격안단풍조안홍) / 건너편 언덕의 단풍이 낯을 비춰 붉어지네”라는 시로 응대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더욱 강하게 불알을 잡고 “이놈의 가죽 주머니는 왜 이리 무르냐?”라고 하자, 김부식은 “네 아비 음낭(陰囊)은 무쇠였더냐?”하고 얼굴빛을 변하지 않았다. 정지상의 귀신이 더욱 힘차게 음낭을 죄므로 부식은 결국 측간에서 죽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간혹 승구(承句)의 ‘송군남포(送君南浦)’를 해석하면서, 남포(南浦) 임을 보낸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한시의 연원(淵源)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남포(南浦)에서 임을 보내는 것으로, 남포(南浦)는 한시에서 이별의 장소로 주로 쓰입니다. 기원전 300여 년에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구가(九歌)> 중 <하백(河伯)>에서 ‘그대 손을 잡고 동쪽으로 가서(子交手兮東行), 미인을 남포에서 보내네(送美人兮南浦)’라고 읊은 이후로 대부분의 문학가들이 이별의 장소는 남포(南浦)로 일컬었다. 남포의 지명은 굴원의 초사(楚辭)에서는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의 장강(章江)이 갈라지는 곳이고, 강엄(江淹)의 <별부(別賦)> ‘송군남포(送君南浦) 상여지하(傷如之何) /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려니 이 아픈 마음 어찌할까’에서는 복건성(福建省) 포성현(蒲城縣) 남문 밖을 말한다. 당나라 시대에 광윤문 밖에 배를 정박하던 곳에 남포정(南浦亭)이 있었는데 거기를 지칭하기도 했다. 왕유(王維)의 송별(送別) 시에도 ‘송군남포루여사(送君南浦淚如絲)라고 나온다.


우스개 이야기 하나더 붙이면, 조선 시대 어떤 서울 나그네가 평양감사(平壤監司)로 있던 친구를 찾아가 노니는데, 기대에 비해 대접이 시원치 않았다. 술맛은 맹물을 탄 맛인데다가 수청하는 기생도 데면데면하다가 이별의 즈음에도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이래저래 서운했던 그는 감사를 향해 다짜고짜 “대동강 물이 며칠 못 가서 마르겠네.”라고 하였다. 감사(監司)가 영문을 몰라 “무슨 말인가?”하고 되묻자, 서울 나그네 왈, “술잔에는 첨주(添酒)의 물이 있는데, 사람은 첨파(添波)의 눈물이 없으니 어찌 강물이 마르지 않겠는가[杯有添酒之水(배유첨주지수), 人無添波之淚(인무첨파지루), 江水惡得不盡乎(강수오득부진호)]?” 참으로 찰진 독설(毒說)이다. 친구 대접하는 감사의 눈치가 빤하니 기생인들 무슨 애틋한 정이 있었으랴 만은, 술에 물을 타느라고 강물도 소모하고 계집은 이별의 눈물도 강물에 보태지 않으니, 과연 대동강 물이 곧 마르지 않겠는가? 『고금소총(古今笑叢)』 「기문(奇問)」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시와 정지상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자못 떠들썩하다. 신광수(申光洙)는 “그때 남포(南浦)서 님 보내던 그 노래, 천년 절창 정지상(鄭知常)이라[當日送君南浦曲(당일송군남포곡), 千年絶唱鄭知常(천년절창정지상)].”이라고 했고, 신위(申緯)는 「논시절구(論詩絶句)」에서 이색(李穡)의 「부벽루(浮碧樓)」 와 함께 나란히 세워 이렇게 평가했다.             

長嘯牧翁依風岉(장소목옹의풍물) / 바람 부는 산비탈서 휘파람 불던 목은옹(牧隱翁)

綠波添淚鄭知常(녹파첨루정지상) / 푸른 물결 위에다 눈물 보태던 정지상(鄭知常).

雄豪艶逸難上下(웅호염일난상하) / 호방함과 아름다움 우열 가리기 어려워라

偉丈夫前窈窕娘(위장부전요조랑) / 늠름한 장부 앞에 정숙한 아가씨라.

기구(起句)는 목은(牧隱)의 시 "길게 휘파람 불며 산비탈에 기대었자니, 산은 푸르고 강은 홀로 흐르도다[長嘯依風岉(장소의풍물), 山淸江自流(산청강자류)]."라 한 데서 따온 것이다. 목은의 웅장하고 호방한 기상과, 정지상의 염려(艶麗)하고 표일(飄逸)한 풍격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가늠키는 어려우니, 비유하자면 헌헌장부(軒軒丈夫) 앞에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수줍게 서 있는 격이라는 평가겠다.


★ 정지상(鄭知常) : 정지상(?∼1135)은 서경 출신으로 초명(初名)은 지원(之元)이고 호는 남호(南湖)이다.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장가로, 그의 작품들은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받지만,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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