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테레즈 철학자의 애로서(曖露書)

여성 해방을 앞당긴 18세기 사랑법

by 금삿갓

동서양의 그림을 통한 애로서(曖露書)를 어느 정도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책에 관한 애로서를 말해 보자. 그림은 시각적으로 직접 반응을 유도하지만 책은 읽는 과정을 통하여 한 단계 더 느린 반응을 만든다. 물론 책이라고 모두 글자만 있지는 않고, 삽화(揷畫)나 사진, 도형들이 부수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림책이나 만화같이 그림이 우선이고 글씨는 부차적 설명도구로 사용되는 책도 있다. 아무튼 이번에는 로코코 시대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포르노그래피 소설인 <테레즈 철학자(Thérèse the Philosopher)>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책은 1748년에 익명으로 출판된 프랑스 소설인데, 장-바티스트 드 부아예(Jean-Baptiste de Boyer)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마르퀴스 다르장스(Marquis d'Argens)도 간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출판 직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18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인기 있는 음란 소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단순한 외설성을 넘어, 당대 계몽주의 철학 사상의 급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의 열렬한 팬 중에는 사드 후작(Marquis de Sade)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 <줄리에트(Juliette)>에서 이 소설이 “욕망과 불경건의 결합으로 행복한 결과를 얻은 유일한 작품”이며, “결국 부도덕한 책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도스토옙스키(Dostoevsky)도 그의 소설 <백치(The Idiot)>와 <악령(Demons)>에 대한 작업 노트에서 이 소설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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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목에 나오는 ‘철학자(Philosopher)’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와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녔다. 이는 무엇보다도 이성을 지침으로 삼고, 모든 지식을 이성적 기준에 따라 시험하는 과정에서 종교에 도전하거나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또 이 단어는 때때로 ‘방탕한(libertine)’과 동의어로 여겨졌지만, 후자는 이미 현대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 테레즈는 에로틱하고 도덕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를 구현한다. ‘Abbe’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수도원장(abbott)’을 의미하지만,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이 용어가 삭발을 하고 어두운 예복과 성직자 칼라를 착용했지만, 반드시 성직 서임(敍任)을 받지는 않은 성직자들을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때때로 느슨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주로 비종교 활동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Reverend’라고 불리는 정치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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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자기도 모르게 성적으로 조숙한 어린 소녀 테레즈가 11세에 어머니에 의해 엄격한 규율의 수도원에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집에서 가끔 자위행위를 하던 그녀는 수도원에서 성적 흥분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어떻게든 피해야 할 사탄의 유혹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녀의 치골을 에덴동산의 치명적인 사과에, 놀이 친구의 남근을 에덴동산의 뱀에 비유하는 고해사제들의 직설적인 교육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휩싸이던 테레즈는 몰래 밤마다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묘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축축하고 뜨거운 감각에 온몸을 떨던 그녀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강렬한 욕망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얇은 속옷 아래로 손을 넣어 은밀한 곳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점차 금지된 쾌락의 달콤함에 빠져든다. 20세가 넘어 테레즈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예수회 신부 디락(Dirrag)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디락 신부는 비밀리에 유물론 철학을 설파하며, 테레즈에게 기존의 종교적 도덕률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어느 날, 테레즈는 우연히 디락 신부가 젊은 수녀 에라디스(Mlle Éradice)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목격한다. 촛불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뒤섞이고, 에라디스의 떨리는 신음과 디락 신부의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얇은 옷자락이 벗겨지고 하얀 살결이 드러나는 순간, 테레즈는 격렬한 호기심과 질투심에 휩싸인다. 디락 신부는 부드러운 말로 에라디스를 어루만지다 점차 그녀의 은밀한 곳을 탐닉하기 시작하고, 에라디스는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신음을 흘린다. 채찍질과 함께 이어지는 육체적 관계 속에서 디락은 에라디스에게 성적인 쾌락의 본질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종교적 권위의 허점을 폭로하려 한다. 사실 디락 신부와 에라디스의 설정은 1730년 신부와 제자 사이의 불륜 관계로 종교 재판에 연루되어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 장 밥티스트 지라르(Jean-Baptiste Girard)와 카트린 카디에르(Catherine Cadière)의 이름을 아나그램(anagram) 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수녀원을 나온 테레즈는 우연히 매혹적인 여인 부아-로리에(Bois-Laurier) 부인을 만나 그녀의 보호 아래 놓인다. 숙련된 창녀임에도 불구하고 처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기묘한 소문의 주인공인 부아-로리에 부인은 테레즈에게 더욱 노골적이고 실제적인 성적 경험들을 가르쳐준다. 부아-로리에 부인의 화려한 응접실에는 매일 밤 다양한 계층의 남성들이 드나들고, 그들은 아름다운 부인의 육체를 탐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과 귀한 선물을 바친다. 테레즈는 이들의 은밀한 만남을 엿보며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하고 때로는 추악할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한 귀족이 부아-로리에 부인을 거칠게 껴안고 옷을 찢으려 하자, 부인은 능숙한 솜씨로 그를 제압하고 조롱한다. 테레즈는 이 장면을 통해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권력관계의 역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부아-로리에 부인과의 생활을 통해 테레즈는 자신의 성적 욕망에 솔직해지고, 다양한 남성들과 관계하는 것을 봄으로 인해 쾌락의 다채로운 측면을 경험한다. 그녀의 순결을 탐내는 수많은 구애자들 앞에서 테레즈는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려는 남성들의 욕망을 냉철하게 이용하고, 때로는 그들을 조롱하며 쾌락을 얻는다. 낯선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느껴지고, 거친 손길이 온몸을 탐색할 때마다 테레즈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격렬한 전율에 휩싸인다.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쾌감에 몸부림치는 순간 속에서 테레즈는 육체적인 만족감과 함께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테레즈는 C부인과 T신부가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임신을 피하기 위해 상호 자위행위와 질외사정에 의존한다고 사실을 듣게 된다.

결국 테레즈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정부(情婦)로 삼고 싶어 하는 익명(匿名)의 백작을 만나게 된다. 처음 그녀는 출산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위행위와 상상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고 생각하여 그와의 성관계를 거부한다. 백작은 그녀와 내기를 건다. 만약 그녀가 에로틱한 책과 그림으로 가득 찬 방에서 자위행위 없이 2주를 버틸 수 있다면, 그는 그녀와의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다. 닷새째 되는 날 그녀는 그림 <Les fêtes de Priape(그리스신화의 남근신)와 <Les amours de Mars & de Vénus(마르스와 비너스의 사랑)>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시작한다. “내 상상력은 거기에 표현된 태도에 열중했고, 시트와 담요를 벗어던지고 방문이 닫혔는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내가 본 모든 자세를 따라 하려고 노력했어요.”라고 표현한다. 이야기는 두 페이지 동안 그림에 대한 묘사와 테레즈의 반응 사이를 오가다가, 그녀가 열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연인을 부른다. “백작님,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성기가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를 관통할 수 있어요. 당신은 심지어 나를 어디를 때릴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모두 똑같습니다.” 텍스트는 새로운 성적 기법과 피임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여 신체에 불을 붙이고 독자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었다. 테레즈의 초대로 백작이 등장하여 체외수정법에 대한 마지막 교훈을 주며, 낭만적인 사랑은 임신을 피하는 이러한 방식을 주장한다. 결국 테레즈는 지고 백작의 영원한 정부가 된다. 백작과의 관계 속에서도 테레즈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친밀함과 만족감을 경험한다.

이 소설은 노골적인 성적 묘사 이면에는 당대 사회의 위선과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등장인물들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태도를 통해 억압적인 종교적 도덕률과 부조리한 사회 관습에 저항한다. 그들은 유물론, 쾌락주의, 무신론과 같은 급진적인 철학 사상을 거침없이 논하며,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권위에 도전한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이며, 쾌락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종교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허구적인 체계에 불과하다.”와 같은 주장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며,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특히 여성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를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음란물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아무튼 <테레즈 철학자>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급진적인 철학적 논의가 결합된 파격적인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성과 종교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흔들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포르노그래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당대 여성계몽주의 사상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의 성적 주체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모든 종교에는 진리가 있고, 인간은 이성의 빛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종교인지 탐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내용과 삽화를 포함한 인쇄된 형태가 방탕하기는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개념에는 철학적 가치가 있다. 소설의 노골적인 성인용 내용들 사이에 등장인물 간의 유물론, 쾌락주의, 무신론을 포함한 철학적 쟁점들이 논의된다. 모든 현상은 움직이는 물질이며, 종교는 사기이지만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 소설은 18세기 사회의 성 문화와 지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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