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는 스승 부셰(François Boucher)를 따랐지만 점차 표현된 장면의 성격과 회화적 표현 방식 모두에서 에로스에 대한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발전시켰다. 간단히 말해, 프라고나르의 작품은 에로틱한 경험이 개인화되고 사적화(私的化)되며, 철저히 물리적인 관점에서 재정의 되는 새로운 성적 상상력을 형성했다. 그는 부셰의 레퍼토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신화적 인물이나 목가적(牧歌的) 인물보다는 당대 인물을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 더욱이 프라고나르의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특정된 인물이 아니라 익명(匿名)의 개인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가 눈에 띄지 않고, 일관성 있게 어떤 계층을 특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예를 들어, 아래에 보이는 작품 <The Volt(빗장)>에서 노란색 새틴으로 감싼 강간(?) 당한 여성의 신원이 명백히 상류층인지, 상대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어떤지 불확실하다. 이 부분의 설정도 침대의 각종 소도구, 예를 들어 베개·커튼·넘어진 와인병, 원죄의 상징인 사과 등을 보면 강간인지 화간(和姦)인지 애매하다. 단순히 여인의 오른손이 남자의 턱을 밀고 있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그렇다. 빗장을 향한 여인의 손과 체중이 실린 다리의 위치는 그리 심한 저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도 홍조가 오른 편안한 모습인 걸 보면 한 번의 뜨거운 정사를 치른 후에 정신을 차린 남성이 두 번째의 사랑을 위해 빗장을 잠그려는데, 여인은 이제 그만이라는 모션으로 읽힐 수도 있다.
<The Volt(빗장)>
그래서 화가들이 그림에 사용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그림을 이해하고 내용을 증폭시켜 음미하기 위해 꼼꼼히 챙겨보는 재미가 있다. 때론 신화와 결부된 상징일 수도 있고, 사회의 풍속에 연관된 장식이나 문학에서 차용한 은유일 수 있다. 그러나 화가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것은 색과 빛, 도형이 주는 이미지일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그의 작품 <La Gimblette(라 갱브렛)>이다. 소녀가 침대에 누워서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그림이다. 그는 이 스타일의 그림은 4가지 버전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알려진 뮌헨 버전이다. 그런데 소녀는 치마를 벗고 아래는 알몸이 되어 자신의 음부에 강아지의 부드러운 꼬리로 자극을 하고 있다. 이런 엉뚱한 발상은 로코코 '연애의 시대'가 말기에 들면서 소년, 소녀의 자위행위를 들여다보는 관음(觀淫)의 유행에 기인한다. 당시 이와 유사한 소재의 그림들은 유럽 각지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궁정화가들은 이를 그리지 않은 자가 거의 없다 할 정도였다. 당시 전 유럽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르노적 소설 <테레즈 필로조프(Thérèse philosophe)>의 영향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종류의 즐거움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프라고나르는 루이 15세의 애인이었던 뒤바리(Madame du Barry) 부인의 별장화 주문을 받고 사랑의 연작화(連作畵) 4편을 그려 주기도 했다. 주인공은 이재 막 성에 들뜬 소녀다. 침실은 황금색 휘장으로 둘러져 그녀만의 세계에서 터득한 성의 환희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벗어놓은 치마는 핑크색으로 연애와 사랑의 색이다. 소녀의 머리에는 빨간색 리본이 달려 있으며 얼굴은 성적 흥분에 의해 발그레 홍조를 띠고 있다. 비교되는 것은 강아지의 순백색과 푸른 장식리본이다. 순결과 순진함의 백색을 소녀가 아닌 그녀의 성적 도구인 강아지에게 표현한 것이다.
<La Gimblette>
다음은 <Two girls on a bed playing with their dogs>로 두 소녀가 침대에서 강아지랑 노는 모습이다. 섬세한 색채감과 브드러운 붓 터치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당시의 귀족사회의 우아하고 쾌락적인 삶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속옷을 입지 않고 음부가 보이도록 치마를 걷어 올린 소녀와 치마를 벗고 풍만한 엉덩이를 고스란히 드러난 소녀의 모습이 자유분방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가는 특이하게 여인의 성기에 음모를 그리지 않고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이하게 침대 뒤쪽으로 여인의 실루엣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흡족하지 않은 여인의 욕망을 암시하는 것일까?
<Two girls on bed playing with their dogs>
<행복한 연인들(Happy Lovers)>이다. 두 연인이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깊은 입맞춤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동일시도 판단하기 불가능하다. 다만 이 두 인물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또한 이 인물들의 개별성은 최소한으로 유지된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그들의 생김새는 관례적이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눈은 작은 점으로, 남자의 입은 초승달 모양으로, 얼굴 전체에서 감정이나 욕망의 움직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한 표현이면서도 인물의 성격이나 개성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전형적인 당시의 남녀로서 애정 어린 사랑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사회 계층보다는 욕망의 대상인 그들의 관계는 놀라운 호혜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