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의 사진은 익명(匿名)의 여성 예술가 모임인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가 여성 예술가의 차별에 대하여 항의하며 발표한 광고 사진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여성은 옷을 벗어야 할까요?” 이는 현대 미술분야의 4% 미만의 여성 예술가만이 메트 미술관에 진입하는데 반해, 전시되는 누드의 76%가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능력은 보지 않고,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이다. 몸을 상품으로 보면 예술이 외설(猥褻)로 변질될 수 있다. 1992년 고(故) 마광수 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제작 배포에 해당된다고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抗訴) 및 상고(上告)했으나 1995년 6월 대법원은 상고 기각 판결로 유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소설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30년이 흐른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라면 법원의 판단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을까?
로베르티스의 행위 예술 모습
2017년 10월 프랑스 법원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자신의 외음부를 드러낸 행위 예술가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Deborah De Robertis)의 성적 과시 행위에 대해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유는 “범죄의 실질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음모 때문에 그녀의 성기를 실제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계 예술가인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계적인 걸작 앞에 앉아 속옷을 발가벗고 다리를 벌려 관객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켰다. 그녀는 곧바로 체포되었고, 체포 과정에서 말다툼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비원 한 명의 재킷을 물어뜯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기 되는데, 사람이 재킷을 물었으니 노출 범죄 혐의에 깨문 것도 추가되었다.
<퐁피두-메츠 센터, Marc Domage, 2023, Exposition Lacan, l'exposition. Quand l'art rencontre la 정신분석학>
로베르티스(Robertis)가 파리 미술관에서 옷을 벗고 체포된 것은 여러 번이다. 그녀는 유럽 사진 박물관(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에서 알몸의 상체에 케첩을 듬뿍 발랐고, 장식 예술 박물관( 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유명 인형을 기념하는 전시회에서 가짜 젖꼭지와 가짜 음모(陰毛)를 한 알몸 바비인형(Barbie Doll) 분장을 하기도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의 <세상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기도 했다.(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1207) 참조. 2016년 1월에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네(Musée)의 <올랭피아(Olympia)>를 재연(再演)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녀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작품 자체나 작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에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는 제도를 겨냥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제가 올랭피아든 바비든, 모델 역할을 맡을 때, 그것은 그것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구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전시에 참여하게 되면, 그 전시는 제 것이 됩니다.” 그녀는 또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이며, 따라서 체포는 작품 자체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을 고발을 하지 않는 기관의 침묵은 도리어 자신의 행위 예술을 공연이 부정하고,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전략적 침묵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논란이 일어야 자기의 행위 예술의 존재 가치가 부각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법이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승리자 아모르(Amor Vincit Omnia)>
예술가가 모델을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무시하고, 심지어 대상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경우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개척자인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가 수 세기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동성애자로서 수많은 말썽을 피웠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를 용서해야 하나 아니면 그의 작품을 부인해야 하나? 위의 그림은 그의 <승리자 아모르>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칼 안드레( Carl Andre)는 그의 부인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와 결혼 생활 중, 부인이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 안드레는 1988년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람들은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고, 그의 작품 전시를 거부하는 시위를 계속한다. 조각가이자 활자체 디자이너, 그리고 판화가였던 에릭 길(Eric Gill)은 사춘기였던 두 딸을 연쇄적으로 성적 학대를 했고, 그의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개에 대한 성적 학대 또한 관련이 있다. 그는 두 딸을 상대로 성적 학대뿐만 아니라 욕조에 있는 관능적이고 은밀한 누드를 그렸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을 구분해서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같은 선상에 두고 평가를 하는 것이 맞을까?
<목욕하는 소녀 II>
위의 그림이 에릭 길이 자기의 딸 페트라를 모델로 삼아 그린 <목욕하는 소녀 II>이다. 그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를 모델로 누드를 그리기도 했다.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문화적 규범에 도전하는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의 행위예술이 세상과 예술을 보는 시선을 바꾸어 주었을까? 그녀의 파격적인 접근 방식은 전통적인 예술 관습에 도전하지만, 관람객에게 도리어 불편함과 관음증적 성향을 드러내 보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의 대담함과 끈기를 통해 예술에서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다루어지는 지에 대한 논의에서 그녀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성인잡지 <허슬러> 등을 발행하는 래리 플린트(Larry Claxton Flynt)는 음란죄 등으로 수차 기소되고, 성조기 팬티로 국가모독죄 등 여러 차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플린트는 최종적으로 무죄 또는 승소 판결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그의 법정 투쟁기가 영화 <래리 플린트>로 제작되었다.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살인은 불법이다. 그러나 살인을 찍은 사진을 뉴스위크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걸 사진으로 찍어 잡지에 실으면 감옥에 간다. 어떤 게 더 유해한가?” 필자 금삿갓이 우스개 소리로 예술과 외설의 판단 기준을 말해 보겠다. 작품을 눈이나 귀로 감상했을 때 감동이나 느낌이 안 오면 예술도 외설도 아니다. 감동이 머리에서 시작되어 가슴까지 오면 예술이고, 느낌이 머리에서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면 외설이라고 보면 된다. 작품 자체의 평가도 간단하지 않지만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객관화하느냐도 매우 어렵다. 아래의 작품은 에릭 길의 작품 <이브>이다.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걸까 아니면 이브가 뱀을 유혹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