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류(哺乳類)는 엄마의 자궁에서 생식기를 통해서 탄생한다. ‘종의 기원’의 아니라 생명의 기원이 어디인지 밝히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귀스타브 꾸르베(Gustave Courbet)는 1866년 한 해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두 점의 그림을 그린다. 두 작품은 너무나 유명한 <잠(Le Sommeil)>과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이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일반 전시 목적이 아닌, 터키 외교관인 개인 소장가 칼릴-베이(Khalil-Bey)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칼릴-베이는 아테네에 대사로 근무하다가 파리에 대사로 와서 꾸르베를 소개받아서 주문한 것이다. 아마 당시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면 꾸르베는 종교재판에 당했던 잔 다르크의 신세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는 <세상의 기원> 작품을 자기 방에 베일로 가려서 걸어놓고,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만 베일을 젖히고 구경시켜 주었다. 이런 사실은 프랑스 작가 겸 사진작가인 막심 듀 캠프(Maxime Du Camp)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다행히 이 작품은 오랜 기간 개인에 의해 소장되어 오다 1995년에 와서야 오르세 미술관이 상속세로 물납(物納)된 것을 인수하여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그곳에서 나왔지만 영원히 신비스럽고 은밀한 그곳이다. 문정희 시인이 <치마>에서 읊조린 더 원초적이고 심상치 않은 그 무엇이다. 그래서 모든 남자들은 자기의 고향을 찾는다는 핑계를 이마에 써 붙이고 한평생 그 주변을 맴도는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가시밭 길이든, 진창이 가득한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든 상관없다. 감미로운 꿈을 꾸는 조개가 살고 있을 그곳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꾸르베가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도 무수한 누드 작품이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낮은 각도에서 적나라하게 클로즈업해서 보여 주는 작품은 없었다. 거의 춘화(春畫)나 포르노에 가깝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춘화라 부르지 않지만 대놓고 SNS나 공개된 장소에서 유통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Facebook이 2011년 프랑스 예술사가(藝術史家)가 이를 올리자 계정을 폐쇄하고, 그는 소송을 해서 바로잡았다. 그림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금삿갓보다 그곳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이 그림은 익명의 모델이 누구인지가 오래도록 논란거리였다. 그림에 작가의 서명도 없고, 동시대의 증언도 희미하여 궁금증이 더 크다. 경험이 많은 화가가 기억만으로 그렸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당시 꾸르베는 친구 미국인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뮤즈이자 모델 애인이었던 요한나 히퍼넌(Joanna Hiffernan)과 세 사람이 친하게 지냈다. 그가 그녀와 은밀하게 불륜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휘슬러는 꾸르베와 엄청 심하게 싸우고 결별했다. 훗날 히피넌이 친구 팡탱 라투르에게, 꾸르베가 자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네요! 황금색이 아닌 구릿빛 붉은색, 우리가 베네치아에서 꿈꿔왔던 모든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을 기초로 미술사학자 소피 모네라가 1978년에 이 가설을 주장하고, 1991년 오르낭의 꾸르베 박물관에서 최초로 이 그림이 전시될 때 박물관 학예사 장자크 페르니에가 맞장구를 쳐 주었다. 다른 주장은 당시 그림 소유자 칼릴 베이의 애인이 3명인데, “제비꽃 여인”으로 불리던 여류 명사 잔 드 투르베, 고급 매춘부 코라 펄, 무용수 콘스탄스 케니오(Constance Queniaux) 중 하나로 유추한다. 그중 케니오의 갈색머리로 보아 가장 근접하단다. 다른 주장은 당시 꾸르베가 누드를 그리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을 오르낭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주장이다. 2018년에 들어와서 케니오가 진짜 모델이라는 유력한 증거가 있다고 보도되었다. Le Figaro 지에 따르면, 이 발견은 프랑스 학자 클로드 쇼프가 <삼총사(Three Muskateers)>의 저자의 아들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조르주 상드 사이의 오간 서신을 읽던 중 이루어졌다. 이러한 새로운 확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판화 부서장인 실비 오베나스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녀는 케니오가 모델이라고 99% 확신한다고 선언했다. 아래는 어느 골동품상이 발견한 꾸르베의 다른 그림인데, <세상의 기원> 작품 모델의 얼굴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으나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
<세상의 기원 작품의 윗부분이라는 주장이 있는 그림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됨>
지금 현시점에 금삿갓의 눈으로 보기엔 모델이 누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림 그 자체이다. 이 그림은 처음 소유자 칼릴 베이가 도박 빚으로 소장 그림 중 많은 부분을 경매로 넘기고, 터키의 장관으로 복귀했다. 그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 그림을 수집가 앙투안 나르드에게 넘겼다. 그 후 스위스, 헝가리 등의 소장가들에게 손바뀜이 있다가 1955년 최종적으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과 실비아 바티유 부부에게 귀속된다. 그는 처남인 앙드레 마송에게 이 그림으로 이중 바닥이 있는 액자를 만들고, 그 위에 다른 작품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30년 이상을 친지들과 비밀리에 감상했다. 라캉이 1981년에 죽고, 바티유도 1993년에 사망하자 프랑스 경제재정부가 상속세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하니까 금삿갓도 파리에서 그렇게 궁금하던 비밀스러운 <세상의 기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꾸르베의 <잠(Le Sommeil)>도 엄청 논란이었다. 일상적인 누드가 아니라, 레즈비언이라는 주제가 충격적이다. 1830년대 이래 프랑스 문학에서는 테오필 고티에, 발자크, 보들레르 등이 벌써 레즈비언 주제를 다루어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실제 동성애자는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작은 판화를 제외하고는 그 예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경우에도 여성들을 지켜보는 남성이 묘사되거나 암시되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그림이 문학보다 더 엄격해야 하는지 금삿갓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림이 실물 크기인 135×200cm로 만져질 듯 그려진 작품을 보노라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일까? 사창가의 구석진 방으로 보이는 침실에서 동성애 정사를 끝내고 곯아떨어진 두 여성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역사화에 능했던 쿠르베는 춘화를 역사화처럼 그렸을 뿐 아니라, 누드를 관음자(觀淫者)의 시선 너머 풍경으로서가 아닌 그림의 일부로서 느끼도록 했다. 그녀들이 곯아떨어진 침대의 발밑 부분에는 레즈비언 행위 시 사용했던 최고급 딜도(Dildo)가 효용을 다하고 널브러져 있다.
꾸르베의 이 작품에 대한 세상의 논란은 다양한 패러디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성 성기에 대응하는 남성의 성기로 패러디한 프랑스의 여성 행위예술가인 생 오를랑(Saint Orlan)의 <전쟁의 근원(L’origine de la guerre)>이 눈에 띈다. 금삿갓이 보기엔 전쟁의 기원보다는 정복의 기원에 가깝지 않을까. 싸우기보다는 깃발 꽂기를 더 즐기니까. 행위 예술로서 나무 액자는 갇혀 있는 남자의 욕망을 암시한다. 쿠르베가 여성의 음부를 인류의 기원으로 보았다면 오를랑은 남성의 페니스를 욕망의 화신으로 보았다. 남성의 성기는 주체하지 못하는 욕구를 간직한 깃발이다. 그 깃발이 서있을 때, 섹스를 통해 종족 보존을 하고, 대상을 불문하고 깃발을 꽂을 <세상의 기원>을 찾아 영역을 확장하는 본능의 근원이다.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문화적 규범에 도전하는 것으로 유명한 룩셈부르크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Deborah De Robertis)가 꾸르베의 그림에 도전장을 들고 나왔다. 2014년 5월 29일 그녀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꾸르베의 그 작품이 걸려 있는 곳 바로 앞에서 자신의 퍼포먼스 <원점의 거울(Mirror of the Origin)>을 실행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틀어 놓고,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주저앉아서, 다리를 벌리고 그녀의 성기를 관객과 기자들에게 노출시켰다. 박물관 측은 그녀를 제지하려 했으나 불가능했고,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결국 그녀는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몇 시간 후 풀려났다. 그녀는 누드 명작 앞에서 행위 예술 하는 것을 즐긴다. 2016년에는 같은 미술관의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 르브르에서 <모나리자> 앞에서 등등 가랑이를 벌려 소중한 "기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4년 5월 29일 퐁피두-메츠 센터에서 개최한 "라캉" 전시에 들어가서, 전시된 꾸르베의 해당 작품에 “Me Too”라는 슬로건을 붙였다가 문화재 훼손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오르세 미술관의 행위예술 사진을 다른 사람의 전시회 때 끼어 넣어 퐁피두-메츠 센터에 전시하기도 했다.(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1213)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