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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昭君怨(소군원) / 왕소군의 원망

금삿갓의 漢詩工夫(250511)

by 금삿갓

昭君怨(소군원) / 왕소군의 원망

- 東⽅虬(동방규)


漢道⽅全盛

한도방전성

●●○○●

한나라의 정치가 한창 융성하고


朝廷⾜武⾂

조정족무신

○○●●◎

조정에는 무신들이 넉넉한데도.


何須薄命妾

하수박명첩

○○●●●

하필이면 운명이 기구한 첩이


⾟苦事和親

신고사화친

○●●○◎

모질게 화친을 하게 하는가.

昭君怨者(소군원자)는 去漢歸胡之當時(거한귀호지당시)에 怨恨(원한)이 弸中者也(붕중자)러니. 唐⽂章(당문장)이 追述其事(추술기사)하여 傳於世(전어세)하니라.

소군원이라는 것은 왕소군(王昭君)이 한나라를 떠나 오랑캐 땅으로 시집가던 당시에 원망과 이 가득 찬 것이었으니, 당(唐)의 문장가(⽂章家)들이 추억하고 서술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昭君(소군)이 嘆息⾔(탄식언) “漢國(한국)이 ⽅當全盛之時(방당전성지시)하여 ⼸⾺之武⾂(궁마지무신)이 衆多(중다)하니 征伐之可也(정벌지가야) 어늘, 何必⼀箇妾⾝(하필일개첩신)으로 爲和親之餌耶(위화친지이야)아”하니, 其悲傷歎息(기비상탄식)이 ⾄於此極也(지어차극야)로다.

소군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한(漢) 나라가 한창 융성한 때를 맞아서 활 잘 쏘며 말 잘 타는 무신(武⾂)이 매우 많아 흉노를 정벌하는 것이 옳거늘, 하필 일개 첩(妾)의 몸으로 화친(和親)의 미끼로 삼아야 하는가”라고 하였으니, 소군의 애처로운 탄식이 이에 극(極)에 달하였다.

* 東⽅虬(동방규) : 당나라 사관이며 시인, 당나라 무후 당시에 좌사로 임명되었고, 그때 시를 잘 썼다. 동방규는 종종 자신이 백 년 후에 서문표와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진자앙의 <기동방좌사수죽편서>에서 동방규의 <고동편>은 “기개가 당당하고 음운이 갑자기 꺾인다.”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고동편>은 실전되었다. 동방규의 남은 시 4수는 <춘설>과 <소군원> 3수이다. <전당문>에는 동방규의 <자벌레부(尺蠖賦)> 등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원화성찬(元和姓纂)』과 『구당서·송지문전(旧唐书·宋之问传)』에는 동방규(東方虬)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무후가 낙남 용문을 여행할 때, 문관을 따라 시를 짓도록 명했는데, 동방규가 가장 먼저 완성하였고, 무후는 그에게 금포를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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