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들어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고 저절로 탄식하되, “한나라의 장안이 어디쯤인가?”하니, 몸은 비록 변방 밖에 있으나, 마음은 한(漢) 나라를 잊지 못하는 도다.
* 東⽅虬(동방규) : 당나라 사관이며 시인, 당나라 무후 당시에 좌사로 임명되었고, 그때 시를 잘 썼다. 동방규는 종종 자신이 백 년 후에 서문표와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진자앙의 <기동방좌사수죽편서>에서 동방규의 <고동편>은 “기개가 당당하고 음운이 갑자기 꺾인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고동편>은 실전되었다. 동방규의 남은 시 4수는 <춘설>과 <소군원> 3수이다. <전당문>에는 동방규의 <자벌레부(尺蠖賦)> 등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원화성찬(元和姓纂)』과 『구당서·송지문전(旧唐书·宋之问传)』에는 동방규(東方虬)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무후가 낙남 용문을 여행할 때, 문관을 따라 시를 짓도록 명했는데, 동방규가 가장 먼저 완성하였고, 무후는 그에게 금포를 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