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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昭君怨 其四(소군원 기사) / 왕소군의 원망 4

금삿갓 漢詩工夫(250511)

by 금삿갓

昭君怨 其四(소군원 기사) / 왕소군의 원망 4

- 東⽅虬(동방규)


萬⾥邊城遠

만리변성원

●●○○●

만 리 밖 변방의 성은 멀고


千⼭⾏路難

천산행로난

○○○●◎

수많은 산이라 가는 길 험난하네.


擧頭惟⾒⽇

거두유견일

●○○●●

머리 들어 해를 바라볼 뿐이니


何處是⻑安

하처시장안

○●●○◎

대체 어느 곳이 장안이런가.

邊城(변성)이 距漢(거한)에 爲萬⾥之遠(위만리지원)하고 ⾏路(행로)가 ⼊胡(입호)에 爲千⼭之阻(위천산지조)하니 去國之恨(거군지판)이 去益深焉(거익심언)하고 滿⽬蕭瑟(만목소슬)이 無⾮胡⾵(무비호풍)이라.

변방의 성이 한나라에서 만 리 밖의 먼 거리가 되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험준한 첩첩 산이니, 고국을 떠나가는 한스러움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네. 두 눈에 가득한 소슬함은 모두다 오랑캐 지방의 바람 아닌 게 없다.

擧頭⾒在天之⽇(거두견재천지일)하고 ⾃歎息(자탄식)하되, 漢之⻑安(한지장안)이 在於何處乎(재어하처호)아하니 ⾝雖在塞外(신수재새외)나 ⼼不忘漢國也(심불망한국야)로다.

머리 들어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고 저절로 탄식하되, “한나라의 장안이 어디쯤인가?”하니, 몸은 비록 변방 밖에 있으나, 마음은 한(漢) 나라를 잊지 못하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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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虬(동방규) : 당나라 사관이며 시인, 당나라 무후 당시에 좌사로 임명되었고, 그때 시를 잘 썼다. 동방규는 종종 자신이 백 년 후에 서문표와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진자앙의 <기동방좌사수죽편서>에서 동방규의 <고동편>은 “기개가 당당하고 음운이 갑자기 꺾인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고동편>은 실전되었다. 동방규의 남은 시 4수는 <춘설>과 <소군원> 3수이다. <전당문>에는 동방규의 <자벌레부(尺蠖賦)> 등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원화성찬(元和姓纂)』과 『구당서·송지문전(旧唐书·宋之问传)』에는 동방규(東方虬)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무후가 낙남 용문을 여행할 때, 문관을 따라 시를 짓도록 명했는데, 동방규가 가장 먼저 완성하였고, 무후는 그에게 금포를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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