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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04. 2023

(22) 꽃도 부끄러워한 – 양귀비

★ 18禁 역사 읽기 ★ (230504)

중국 역사상 미인으로 꼽히는 여자는 이름만 적어도 책 몇 권이 되겠지만 그래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4대 미인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그를 시대 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서시(西施)를 침어(浸魚)라 부른다. 하루는 서시가 포양강(浦陽江) 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아름다움 모습에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도취되어 헤엄치던 것을 잊어버리고 가라앉았다고 침어(浸魚)라 했다. 세월이 흘러 전한(前漢) 때의 왕소군(王昭君)을 낙안(落雁)이라 한다. 왕소군(王昭君)이 이국땅 흉노 왕에게 공녀(貢女)로 떠나면서 말위에서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했는데, 마침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모습에 넋이 나가 날개 짓을 하는 것을 잊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고 낙안(落雁)이라 했다. 그 후 後한(後漢) 말년 왕윤(王允)의 수양딸 초선(貂蟬)을 폐월(閉月)이라 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왕윤이 미인계로 동탁(董卓)을 제거하는데 이용했다. 어느 날 달밤에 후원에서 향을 피워놓고 왕윤이 초선과 사직(社稷)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데, 그때 구름이 달을 가리는 것을 본 왕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너의 미모에 달도 구름 뒤로 숨어버렸구나'라고 했다. 초선은 실존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미인 양귀비(楊貴妃)를 수화(羞花)라 한다. 어느 날 현종과 꽃놀이를 하던 중에 양귀비가 함수화(含羞花)라는 꽃은 건드렸는데, 그 꽃이 꽃잎을 말아 올리는 것을 보고 현종이 '귀비의 아름다움에 꽃이 부끄러워 꽃잎을 말아 올렸다'라고 했단다.

일반적으로 동서양의 양대 미녀라면,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 동양에서는 양귀비가 꼽히는데, 동양의 얼굴값 즉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양의 얼굴값 팜므파탈(Femme Fatale)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번에는 당나라의 양귀비(719-756)에 대해서 설(說)을 풀어보자. 서양에 거대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동양엔 당(唐) 나라가 고구려 출신 고선지(高仙芝)가 서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72개 국가를 정복하는 등 대제국이었고, 로마에 상응하는 장안성(長安城)이 있었다. 장안은 수(隨) 나라가 건설한 대흥성(大興城)을 기초로 발전시킨 인구 100만의 당시 세계 최대의 국제적 도시다. 비단길과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점령하여 교역(交易)의 시작점과 끝점으로서 몽고, 한반도, 일본, 아랍, 러시아 등에서 귀화한 외국인만 해도 1만여 호에 달하는 거대도시였다. 그 당시에 벌써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교가 황제의 보호 아래 전국에서 포교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니 국제화된 것이다. 이런 경제력과 문화력이 막강한 제국의 황제인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이니 만큼 다채롭다.

현종(685~762)은 이름이 이융기(李隆基)로 예종(睿宗)의 3남이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말기에 궁궐 내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를 하여 27세에 6대 황제로 즉위한다. 그는 "개원(開元)의 치(治)"라고 일컬어지는 훌륭한 정치적 업적을 쌓고, 당나라는 역사상 보기 드문 풍요와 윤택이 넘치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되어 당시 전 세계 GDP의 25%에 육박하는 경제력을 갖게 된다. 이때 중국에 차(茶) 보급이 확대되자 차(茶)에 세금을 부과하여 국가 재정에 충당하였고, 좋은 차를 전매(專賣)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학업에 열중하던 현종이 환갑이 가까워오자 슬슬 정치에 싫증을 내고 땡땡이를 까면서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게 된다. 중년 남성의 로맨스 추구증후군에 걸렸는지 시시 때대로 멍 때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종은 사랑하던 마누라(황후 무혜비 : 측천무후의 조카)를 잃고 옆구리가 허전했었고, 당시 유행했던 도교의 영향으로 세상 모든 게 심드렁해 보였던 때였다. 환관(宦官) 고력사(高力士)를 시켜 전국에 미인을 골라오는 화조사(花鳥使)를 파견하여 복건성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강채평(江采萍)을 발굴하여 매비(梅妃)로 부르며, 같이 차를 마시고 춤을 추며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무료하던 현종(玄宗)이 춘심(春心)이 발동했는지 옷을 다 벗어던지고 몇 십 명의 비(妃)들과 화청지(華淸池)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속에는 매미 날개 같은 시쓰루 날개옷을 걸치고 나긋나긋한 미희들이 허우적거리며 그를 즐겁게 해 주려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데도 그냥 심드렁하기만 하다. 물놀이에 싫증이 난 현종은 회랑(回廊)을 따라 행궁(行宮)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눈길을 돌리니 예쁜 한 여자가 자기 아들과 함께 허리와 궁둥이를 하늘거리면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반쯤 기울어진 쪽진 머리와 아름다운 몸매의 자태는 사람들의 눈길을 멈추게 하였다. 그 여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쪽 뺨은 한 송이 연꽃에 가려지고 다른 한쪽 뺨의 보조개가 드러나 있었다. 아름다운 몸매는 알맞게 풍만하고 향기가 풍기는 듯하여 꽃인지 여인인지 비몽사몽(非夢似夢) 하게 되었다. 홀연히 현종은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게 자기도 모르게 아들의 여인인 그 여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 회랑(回廊)은 적금랑(積錦廊)이라 부르는데 그 구조가 교묘하였다. 비서실장 격인 고력사가 천천히 뒤 따르다 한고비 돌아가서 보니 현종이 멍하니 그 자리에 얼이 나가서 서 있는 것이다. 고력사가 옳거니 한 이 여인이 바로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인 양귀비이다.

양옥환은 현종 개원(開元) 6년에 촉주에서 태어나 동도(東都) 낙양에서 자랐다. 그녀의 탄생 설화를 보면 어미의 몸속에서 12개월간 잉태했었고, 해산한 방에 향기가 감돌았고, 탯줄은 연꽃과 같았단다. 3일 동안 눈을 뜨지 않아서 어머니가 눈을 쓰다듬는 꿈을 꾸고 나서야 눈을 떴다는 휘황한 설이 있다. 그는 원래 현종과 무혜비(武惠妃)의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였는데, 이때에 수왕을 따라 화청지에 피서(避暑)하러 왔었다. 궁중에 지천으로 깔린 미녀들이 아양을 떨어도 모두 소 닭 보듯 봤던 건데, 이때 만난 운명의 여인이 바로 양옥환(훗날 양귀비)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양옥환은 현종의 며느리였다. 그러나 현종은 마음이 홀딱 반해 환관에게 명하여 일단 수왕비를 자신의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하였다. 현종은 수왕비(壽王妃)를 보자 한눈에 마음이 끌렸다. 수왕비는 빼어난 미모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理智的)인 여성으로 음악과 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樂譜)를 보자마자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태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하강(下降)하여 춤을 추는 듯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한 선물 공세를 마구 한다. 황제의 진상품(進上品) 중 좋은 것을 보내고, 진귀한 몽정차(蒙頂茶)와 황실공차도 보냈으나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라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전갈만 온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에는 매일 밤잠이 안 오고, 눈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급기야 양옥환의 교태에 얼이 쏙 빠진 현종은 그녀를 아예 후궁으로 앉히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황제라 해도 며느리를 자기의 후궁으로 들어앉히려니 면(面)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환관들과 화조사(花鳥使)들을 불러서 작전 계획을 짜고, 실행계획을 만들고, 예행연습하고 도상훈련을 거듭한다. 제1단계 작전은 양옥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비구니가 되기로 Comming-out 즉 양심선언을 하게 만든다. 마치 요즘 일부 집단에서 많이 쓰는 자살당하기처럼 말이다. 제2단계 작전은 1단계의 연속적인 실행계획으로 아들 수왕의 자동 이혼을 선포하고, 그에게 다른 깔쌈한 여자를 하나 붙여줘서 멀리 지방으로 보내버린다. 제3단계 실행계획은 양옥환을 아무도 손 못 대게 불교 절이나 도교 수도관에 입관시켜서 각종 기예와 방중술을 훈련시킨다. 제4단계는 적절한 시간을 두고 양옥환을 궁으로 입궁시켜 밀회(密會)를 하다가, 홍보 작전 계획이 잘 먹혀 들어가면 곧바로 비(妃)로 승격시켜서 데리고 산다. 멋진 작전 계획이다.

현종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도상연습(圖上演習)한 대로,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양귀비 자신의 뜻이라 빙자(憑藉)하여 그녀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우선 남궁(南宮)에서 살게 했다. 평소 도교를 신봉했던 현종은 그녀에게 태진(太眞)이라는 호(號)를 내리고,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은 아들 수왕 이모에게 위소훈(韋昭訓)의 딸을 보내어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양옥환을 후궁으로 들여앉혔다. 그리고는 데려온 지 몇 해 안 돼 양옥환은 일약 "귀비(貴妃)"로 파격 승진한다. 당시 황제가 공식적으로 거느릴 수 있는 후비제도(后妃制度)를 살펴보면, 황후(본부인) 1명, 부인은 귀비(貴妃), 숙비(淑妃), 덕비(德妃) 3명이고, 9명의 빈(嬪)과, 27명의 세부(世婦)와, 81명의 어첩(御妾)이 있어 모두 121명이다. 그런데 왜 3천 궁녀라고 하였을까? 황후를 비롯하여 궁궐 안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는 내명부(內命婦) 여자들 숫자가 대충 3천 명쯤 되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말로 황후의 의전담당 비서를 비롯하여 식사·전화·빨래·의상·청소·미용·주방담당 등등의 수많은 궁녀가 있다. 황후보다는 적지만 3명의 부인을 시중 하는 궁녀와, 9명의 빈과 27명의 세부와 81명의 어첩을 보좌하는 궁녀들이 각각 있고, 아울러 궁중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많은 여인들이 있어 대략 3천 명쯤 되었다. 많을 때는 4만 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물론 황제는 공식적 부부인 121명 이외에 3,000명의 궁녀들 중에서 마음에 들면 언제든지 안고 품고 잘 수 있었다. 일설에는 궁녀가 4만 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상황을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長恨歌)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후궁가려삼천인(後宮佳麗三千人) / 후궁에 3천 미녀가 있었지만, 삼천총애재일신(三千寵愛在一身) / 3천 명분 총애가 한 사람에게 내리네. 수령천하부모심(遂令天下父母心) / 마침내 천하의 부모들이,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 /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네.”라고 했다.

중국 황제들의 밤일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자. 황제가 저녁 수라를 마치고 나면, 환관인 경사방태감(敬事房太監)이 후궁과 농첩(弄妾)의 이름을 적은 녹색의 명찰(綠頭牌)을 은쟁반에 깔아 올려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선택된 여인은 시간이 되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은 몸을 노랑물들인 우모(羽毛)에 쌓여 경사방태감의 등에 업혀 황제의 침실로 옮겨진다. 태감은 침실 밖에서 사랑 행위가 너무 길게 되면, 황제의 건강을 해칠까 봐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是時候了)”를 외쳐 알린다. 세 번 외쳐도 내보내지 않으면 태감이 들어가 여인을 업어낸다. 이 경사방태감은 황제의 성생활을 조절하는 직책에 있었기에 권한이 막강하였다. 그는 황제가 어느 누구와 사랑한 날의 일시를 기록하여 그 탄생의 정통성을 증명하여야 한다. 또한 잉태(孕胎)했을 아기의 출생여부를 품의하여, 황제가 쓸모가 없다(無用)고 말하면 가차 없이 낙태시켰다.

조선시대에도 임금은 많은 부실(副室, 첩)을 거느렸다. 『경국대전』 내명부조(內命婦條)를 보면, 왕비 1명 외에 빈(嬪, 정1품)·귀인(貴人, 종1품)·소의(昭儀, 정2품)·숙의(淑儀, 종2품)·소용(昭容, 정3품)·숙용(淑容, 종3품)·소원(昭媛, 정4품)·숙원(淑媛, 종4품)과, 그 아래로 정5품인 상궁(尙宮)·상의(尙儀), 종5품인 상복(尙服)·상식(尙食), 정6품인 상침(尙寢)·상공(尙功), 종6품인 상정(尙正)·상기(尙記), 정7품인 전빈(典賓)·전의(典衣)·전선(典膳), 종7품인 전설(典設)·전제(典製)·전언(典言), 정8품인 전찬(典贊)·전식(典飾)·전약(典藥), 종8품인 전등(典燈)·전채(典彩)·전정(典正), 정9품인 주궁(奏宮)·주상(奏商)·주각(奏角), 종9품인 주변징(奏變徵)·주징(奏徵)·주우(奏羽)·주변궁(奏變宮)이 있는데, 인원수는 밝히지 않았다. 정1품인 빈으로부터 종4품인 숙원까지가 임금의 정식 첩이고, 정5품 상궁·상의 이하는 궁녀로서 각각 그 명칭이 표시하는 바대로 왕과 왕비를 보필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제왕의 행동은 무치(無恥), 즉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직급의 고하를 불문하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취하여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고, 왕비로까지 승진시킬 수도 있다. 바로 숙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천하의 요녀(妖女) 장희빈은 숙원·소의·빈을 거쳐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왕비가 되지 않았던가? 또한 숙종은 세숫물을 드리는 일을 맡은 궁궐 안의 하찮은 계집종인 무수리 출신 숙빈최씨를 취하여 영조를 낳았다. 그리고 당 현종은 자신의 18번째 며느리인 우리의 주인공 양옥환(楊玉環)을 빼앗아 귀비(貴妃)로 책봉하였다. 아무튼 황후는 죽고 없었으니까 서열 2위인 양귀비가 황후노릇 하는 거다. 도대체 양귀비가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중국 땅 그 넓은 천지의 여자들을 제치고 현종을 꽉 잡았을까? 중국 4대 미인이라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양귀비는 나머지 셋에 비해 좀 쳐진다고 한다. 양귀비는 요즘 기준으로 친다면 약간 뚱땡이에 속한다. 40-28-40 정도에 50kg 안팎으로 보고 있는 게 정설이다. 정사(正史)에도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고 기록 돼 있으며, 그녀의 라이벌이었던 매비(梅妃)는 양귀비를 일컬어 "비비(肥婢-살찐 종년)"이라 욕했다. 그녀 스스로도 "궁중에서 나를 들 자가 누구냐?"라고 말하곤 했었단다. 그러나 이게 현종의 마음을 움직인 거였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몸매와 백설기처럼 희고 보드라운 피부, 인절미처럼 쫀득쫀득한 감촉에서 일단 점수를 왕창 땄던 거다. 양귀비는 가무(歌舞)에도 뛰어나서 호선무(胡旋舞)도 출 수 있었고, 비파(琵琶)와 공후(箜篌)의 연주도 수준급이었으며,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양귀비의 별명인 해어화(解語花)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말을 알아듣는 꽃, 얼굴만 예쁜 꽃 같은 후궁이 아니라 지적인 여자라는 의미로, 동시대의 이백(李白)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양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진홍(陳鴻)의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이후 윤색(潤色)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문화 콘텐츠에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일설에 그녀는 오리지널 중국 혈통이 아니라 페르시아계통이라서, 약간 서구적 용모에 살결도 희고 목단향(牧丹香)의 체취(體臭)도 독특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동양적 외모에 갈색피부, 이국적 체취였다고 하니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이국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게 돼 있나 보다. 거기에 더하여 당시 당나라 미인의 기준인 삼백(三白 : 이마, 코, 턱)과 삼홍(三紅 : 입술, 뺨, 손톱)이 양귀비는 화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한다. 특히 요즘 여성 화장법에서 말하는 T-zone, U-zone이라 해서 얼굴선을 또렷이 보이기 위해 기를 쓰고 기술 개발하지 않는가? 문외한을 위해 알려주는데, 여체의 은밀한 Y-zone이나 W-zone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T-zone은 이마와 코 부위이고, U-zone은 양 눈 가장자리부터 뺨과 턱 부위를 말한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만이 아니라 가장 핵심인 테크닉이 남달랐단다. 당나라 시절에는 후궁에 국립섹스교육원인 귀아원(貴牙院)이라는 성애(性愛)의 기교를 가르치는 교습소를 두었다. 양귀비는 이곳의 수석 졸업생이었다고 하니 말 다한 거지. 양귀비가 이곳을 다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섹스 테크닉은 미모 못지않은 세기적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려서 집에서 노련한 삼촌으로부터 성(性)에 눈을 뜨고, 수왕(壽王)에게서 기초를 닦고, 수양아들 격인 아라비아 거근(巨根) 안녹산에 의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절기를 익혔으니 양귀비의 방중술은 가히 달인이었으리라. 그뿐인가? 노래, 춤, 비파의 명수에다가 현종의 마음을 미리 읽는 명석함까지 갖추었으니 현종이 안 넘어갈 재간 있는가?

그녀의 비밀은 또 있다. 바로 그녀의 발이 아기 발처럼 채 10cm도 안 될 정도로 작아 손바닥 위에서도 춤출 정도였다고 한다. 몸이 무거워 손바닥으로 들지는 못하지만. 전족(纏足)이 국가적으로 유행하기 전인데도 현종의 성적 로망이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 송나라 장방기(張邦基)의 저서 묵장만록(墨莊漫錄)에 의하면 전족(纏足)은 남당(南唐)의 후주(後主)인 이욱(李煜)의 궁중에서 시작됐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 남당의 마지막 황제인 이욱은 황제의 업무보다 시 짓기를 좋아하던 유명한 시인이었다. 이욱의 빈(嬪) 중에 춤을 잘 추는 요낭(窅娘)이 있었다. 그녀는 황금 연꽃 위에서 춤을 추기 위해 천으로 발을 조각달 형상으로 얽었다. 이욱은 나풀거리듯 춤추는 요낭(窅娘)의 자태에 취해 비단으로 감싼 발이 곱게 삐져나온 게 마치 달과 같다고 읊었다. 모든 것에 품격 따지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전족에도 "삼귀(三貴)의 미(美)"라는 품계를 매겼다. 일비(一肥) 즉 발 피부에 지방이 있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를 것. 이연(二軟) 즉 피부가 부드럽고 적당히 살집이 있어서 만지기에 좋을 것. 삼수(三秀) 즉 그 모양이 아름다울 것이다. 아마 이 세 가지를 양귀비가 갖춘 모양이다. 전족은 발이 기형적으로 작기에 허리에 힘을 주고 걷지 않으면 넘어진다. 자연히 가느다란 허리와 좌우로 흔들리는 둔부의 작용이 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괄약근(括約筋)과 성기(性器) 근육을 보강하여 여성의 성기능 강화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생리적인 성애물 말고도 이들은 치맛자락에 감춰진 은밀한 전족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쾌락을 위하여 여성의 발에 잔인한 학대를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송나라의 문호(文豪) 소동파(蘇東坡)도 ‘보살만(菩薩蠻)’이란 시(詩)로 전족 여인을 성적인 판타지로 묘사했다. “향기가 베인 연꽃 걸음, 긴 근심의 비단 양말은 파도를 건너간다. 보이는 것은 오직 춤이 일으키는 바람뿐, 춤추는 이의 행적은 묘연하구나. 살그머니 선 모습이 궁전처럼 평온하고, 나란히 선 두 다리는 넘어질까 위태롭다. 섬세하고 미묘함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고 싶네.(涂香莫惜蓮承步, 長愁羅袜凌波去, 只見舞回風, 都無行處踪. 偷立宫样穩, 并立雙跌困, 纖妙說應難, 须從掌上看.) 옛 중국에서는 여성의 맨발은 남편이 아닌 남성은 접촉할 수도 살펴볼 수도 없는 신체부위였다. 특히 여성의 맨발을 외간 남자에게 보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젖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행위보다도 금기시(禁忌視)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족한 발은 신체의 그 어느 부위보다도 가장 은밀한 부분이자 성적 매력의 결집체로 이해되었다. 이외에도 전족을 하게 되면 보행할 때 보폭이 줄고, 발이 작아서 뒤뚱거리며 엉덩이를 씰룩거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모습이 성적 매력으로 비치어졌다고도 한다. 또 이러한 보행 습관으로 인해 엉덩이와 생식기의 근육이 특별히 발달하게 되어 성적 쾌감이 높아졌다는 설도 있다. 전족을 페티시즘의 일부로 보는 관점도 존재하는데, 여성의 몸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킨 전족이 성행위의 상징이 되어 전족에 대한 더 심한 집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족 특유의 부패한 꼬린 냄새가 남성들의 페티시즘을 자극시켰다는 황당한 설도 존재한다.

아무튼 양귀비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과일 중의 과일"이라는 여지(荔支)이다. 동남아시아 원산지인 리치(Litch)의 중국식 표기이다.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약 2천 km 떨어진 남방에서만 자라는 이 과일을 싱싱하게 공급하기 위해 현종은 5리마다 파수대를 세우고 10리마다 숙소 마련하여, 밤을 낮 삼아 말과 사람을 바꿔가며 여지를 나르게 했다. 여지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섬유질 많고, 칼로리 적은 다이어트 음식이란다. 하지만 여지를 과다 섭취할 경우 일명 리치병(荔支病)에 걸리기 쉽다. 과다 섭취 시 구강 염증을 유발하고, 다량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저혈당을 유발한다. 성인은 하루 10개 이하, 어린이는 5개 이하가 적당하다. 기네스북에 다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여지 너무는 광동성 종화시(从化市)에 있는 476년 된 명아라 중기에 심은 것으로 나무 굵기가 10명의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고, 연간 약 2~3톤의 여지가 생산된단다. 그녀는 또 탱글 팽팽한 피부를 위해 닭 날개를 즐겨 먹었는데, 닭 날개에는 콜라겐 성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 닭날개 즐기면 바람난다는 속설이 있듯이. 아무튼 양귀비 옷을 만드는 인부만 700명, 살림살이 만드는 기술자 수백 명에 달했단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가죽을 푹 삶은 아교를 복용하고, 피부 관리에도 엽기적인 방법을 동원했단다. 동물의 젖이나 신생아의 소변을 받아서 세수하고 목욕하고, 연자육과 동충하초(冬蟲夏草)를 먹었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놀음을 살짝 엿보자. 시녀의 호위를 받으며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은 선녀가 공손히 황제 앞에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추었다. "소녀 양귀비입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에 현종은 몽롱한 의식을 일깨워 목소리 주인공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꿈길에서나 먼발치로 힐끗 봤을 때 하고는 또 다른 현묘한 모습이다. "그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현종은 급한 나머지 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을 때 관절을 삐끗했으나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아픔도 잊고 눈엔 여인의 모습만 어른거렸다. 침대에선 은은한 허브향이 풍겨 나오고 한걸음 앞선 여인은 어느새 침대로 가서 요염한 자세로 사내를 기다리고 있다. 현종은 비록 초로(初老)에 접어들었으나 완숙(完熟)한 황홀경이 수왕의 풋풋한 패기(覇氣)보다 양귀비는 마음에 더 들었다. 그녀는 침대를 향해 걸어오는 현종을 어미가 젖먹이를 맞이하듯 두 팔을 벌려 가슴 깊이 안으며 침대에 눕히고 번개같이 옷을 벗겼다. 황제도 기다렸다는 듯이 여인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도왔다. "황상폐하 저는 오늘 같은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鶴首苦待) 했는지 모릅니다." 양귀비는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두 유방으론 황제의 영혼을 유혹하고, 풍만하게 부푼 한 쌍의 엉덩이는 한 번은 깊게 한 번은 얕게 황제의 물건을 받으면서 끝없는 황홀경의 절정(絶頂)으로 몰고 갔다. 남자는 물불 안 가리고 물고 빨며 여인의 깊은 곳에 몰입했다. 30여 년이란 세월의 간극(間隙)은 둘에게는 문제가 안 되었다. 두 사람은 손을 서로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될지어다."라고 했다.  이 뜻을 풀이하면, 비익조(比翼鳥)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날개가 한쪽만 있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야 날 수 있어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連理枝)는 뿌리는 둘이지만 밖으로 나온 몸통이 하나로 합쳐져 자라는 나무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양귀비에 빠진 현종은 밤낮 정사(情事)에 빠져 정사(政事)를 게을리 하자 나라가 개판이 되고, 양귀비의 방탕한 소비로 국고가 고갈되게 된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특히 변방 주둔사령관인 안녹산(安祿山)이 쿠데타를 일으켜 장안으로 밀고 내려온다. 현종이 조선의 선조처럼 피신 길에 나서는데 수행하던 장병들이 데모를 하며 개긴다. 모든 게 다 양귀비란 여우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양귀비를 처단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겠다고 아우성이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그녀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38세이다. 훗날 현종은 생애 내내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하루 종일 눈물 속에서 그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난리 통에 무덤이나 제대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양귀비의 무덤은 흙이 아닌 돌로 돼 있다. 원래는 흙으로 돼 있었는데 그 무덤의 흙을 먹거나 바르면 피부가 곱고 희게 된다는 속설을 믿고 사람들이 마구 흙을 퍼 가는 바람에 급기야 무덤이 없어질 판이 되자 문화재당국이 부랴부랴 벽돌로 분묘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양귀비의 그곳이 어떤 명기였는지는 현종이 말을 아껴서 짐작할 수 없지만 예로부터 명기에 굶주려하는 남성과 명기가 되고자 하는 여성은 많았다. 그래서 명기(名器)에 관한 약간의 고찰(考察)을 해보자. 명기(名器)가 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얼음물의 자극으로 질 회음 근육 즉 괄약근을 단련하는 것이다. 조석(朝夕)으로 큰 얼음 덩어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나체로 누운 후 얼음이 녹은 차가운 물방울이 배꼽과 둔덕 사이에 똑똑 떨어지도록 하여 차가운 느낌으로 괄약근을 움츠리는 훈련을 하는 방법이다. 기생 훈련소에서 주로 많이 수련했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항문 조이기, 소변볼 때 4~5번씩 끊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질 수축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근래에 와서 배우 서갑숙의 옥돌 비법이 한창 유행하기도 했다. 옥돌을 계란 모양으로 만들어 질 입구에서 밀어 넣었다가 뺐다 하는 방법이다. 매끄러운 옥돌을 질 속에 넣은 채로 일어서서 걸어도 돌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괄약근의 힘이 좋으면 일단 합격권이 된다.

이처럼 여성들이 명기가 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이유는 명기는 후천적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선천적인 명기는 몇 만 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선천적인 명기의 소유자를 다음과 같이 식별(識別)하곤 했다. “음성이 허스키하고 느린 편이며 말라 보이는 여성, 내성적인 여성이며 엉덩이와 허리 하단에 군살이 없고 뒷무릎과 정강이 사이의 살이 매끈하며, 목 근처에 약간의 근육이 있어 보이는 여성, 피부색은 검은 편이고 평상시 고개를 약간 숙이는 스타일의 여성.” 겉과 속이 같을 수는 없을 진데. 여성의 명기는 괄약근의 수축 이완 능력도 중요하지만 질(膣) 속의 음핵(陰核)이나, 소음순(小陰脣), 대음순(大陰脣), 질 벽 등의 상태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일단 남성을 삽입해서, 질 속에 마치 수천 마리의 지렁이들이 꿈틀대는 것처럼 느낌이 오는 질이 최상의 명품으로 볼 수 있다. 수 만 명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는 명기이다. 가끔 남성과 관계 중에 질이 방귀 뀌듯이 뿡뿡거리는 명기도 있는데, 이는 괄약근의 활동이 왕성한 명기가 남성의 피스톤 운동 시 공기가 흡입되었다가 질의 수축 작용으로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현상이다.

좋은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이 섹스에서 대단한 실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명기라고 한다면, 아무리 좋은 악기라고 연주자가 시원찮으면 헛일일 것이다. 따라서 명기를 만나도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남성들을 명주자(名奏者)라고 부를 수 있다. 우선 명주자(名奏者)의 조건은 성기는 크고 둥글게 생긴 귀두(龜頭)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발기(勃起)했을 땐 위로 치솟아 아랫배와 약 45도 각도가 유지되는 것, 여기에 성기(性器) 표피(表皮)에 사마귀가 있다거나 표피 자체가 우툴두툴하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크기와 강직도(剛直度), 온도(溫度), 지속도(持續度)도 무시할 수는 없다.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음경 왜소(矮小)가 의심될 정도로 작은 성기는 제외될 수밖에 없다. 요즘은 명기를 외과적 수술을 통한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단련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인테리어라 해서 플라스틱 구슬을 박거나, 링을 감거나, 낙타 눈썹을 사용하기도 했다. 요즘은 수술이 너무나 보편화되어서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 광고란은 온통 비뇨기과의원 광고뿐이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조리 단소 왜소증 환자로 만들고 있다. 단련법은 주로 철사장(鐵砂掌)이라 하여 뜨거운 모래에 물건을 단련시키는 것으로 주로 아랍인들의 비기(祕技)를 원용하는 것과 뜨거운 물과 찬물을 번갈아 가면서 담금질하는 방법도 있다. 

실전에 있어서 4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한 노의사(老醫師)가 밝히는 여성 명기의 판별 비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재미 삼아 읽을 만도 하겠지만, 나름대로의 경험을 축적으로 한 데이터라는 점도 인식해 주길 바란다. 말하자면 '겉보고 속 알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200명의 여성 성기를 계측해서 알아낸 통계로, 외관을 보고 여성기의 실체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①둔부(屯部)의 하수도(下垂度) ②체격의 비만도(肥滿度), ③피부색의 3포인트에 주목하면 된다. ①둔부의 하수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발뒤꿈치를 땅에 닿도록 여성을 세워 놓고 히프의 힘을 빼게 해서 둔부의 하수도를 측정해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둔부가 의외로 많이 처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19세 이하에서도 약 36%가 둔부가 처져 있었다. 그 이상의 연령이 되면 점점 하수도가 높아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둔부가 처진 여성일수록 소음순(小陰脣), 대음순(大陰官)의 발육이 좋지 않았다. 즉, 하수도가 상당히 심한 여성의 두 명중 한 명 꼴로 소음순 높이가 10mm 이하이었다. 페니스를 감싸고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는 소음순이 빈약(貧弱)해서야 남성에게 강한 자극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명기(名器)의 자격에서는 제외된다. 대음순도 마찬가지다. 페니스 삽입 후 쇽압쇼버 역할을 하는 대음순이 빈약한 것도 역시 명기에서 제외된다. 둔부의 하수도는 클리토리스의 발육에도 관련 있다. 클리토리스의 발달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음핵 포피(陰核包皮)의 길이이다. 길이 4cm 이상의 발육이 좋은 것은 둔부가 처짐에 따라서 눈에 띄게 적어진다. 반대로 발육이 나쁜 3cm 이하는 둔부가 처짐에 따라서 증가하고 심한 하수상태의 여성에서는 10명 중 6명은 클리토리스의 발육이 나쁘다. 이렇게 둔부가 처진 스타일이 나쁜 여성에게는 명기도 드문 경향이 있는 것이다. 

②체격의 비만도(肥滿度)는 한층 더 결정적으로 여성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양인의 지방 침착(沈着)은 하반신 즉, 옆구리에서 대퇴, 하복부에 걸쳐 집중된다. 이것은 지방이 상반신에 집중하는 백인 여성과는 큰 차이가 있어서 소위 '하반신 뚱뚱이'인 셈이다. 이렇게 하반신에 지방이 붙게 되면 대퇴의 지방이 사타구니 사이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저해하게 된다. 클리토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계측 데이터에 의하면 포피 길이가 3cm 이하의 것은 비만여성에서 마른 여성의 2배 이상에 달하고, 반대로 4cm를 넘는 발육이 양호한 것은 약 반수에 불과했다. 지방의 침착이 음핵(陰核)의 발육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비만형의 여성은 거의 2명에 1명꼴로 클리토리스의 발육이 빈약하다. 더 나아가서는 포피의 길이뿐 아니라 그 횡경(橫經)에서도 같은 경향이 보인다. 비만형의 여성은 그 반수 이상이 횡경 5mm 이하의 빈약한 음핵 귀두(龜頭)의 소유자다. 또 비만은 클리토리스뿐 아니라 대․소음순의 발육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소음순의 높이를 봐도 10mm 이하의 발육불량은 압도적으로 비만체의 여성에 많다. 뚱뚱한 여성의 10명 중 4명은 아주 빈약한 소음순의 소유자다. 또 비만여성의 소음순은 지방 사이에서 압박되어 있는 때문인지 좌우 짝짝이가 되기 쉽다. 소음순의 좌우대칭(左右對稱)의 비율을 마른형, 보통형, 비만형의 순으로 보면 77.3, 72.9, 67.9%로 비만함에 따라서 좌우 짝짝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③피부색에 대한 계측 결과 검은 피부의 여성일수록 둔부(臀部)의 하수도가 심하고, 반대로 흰 피부의 여성일수록 하수도가 적은 즉, 히프가 쭉 위로 올라붙은 여성이 많다. 이 경우 피부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햇볕에 가장 덜 타는 여성의 대퇴부 맨 위 사타구니 부분의 안쪽을 기준으로 하고 이곳을 색견본(色見本)과 대조해 봤다. 그 결과 흰 피부 여성은 32.1%, 보통색이 42,0%, 검은 피부가 25.9%이었다. 이 계측데이터와 둔부 하수 데이터를 대조해 본 결과 피부가 흰 여성은 히프가 올라가 있는 여성이 많고, 검은 피부의 여성일수록 히프가 처져 있는 경향이 있음이 판명되었다. 즉, 피부가 흴수록 그 비율이 좋아서 흰 피부는 히프의 하수가 적고, 명기의 소유자라는 도식이 성립된다. 

하여간 피부가 흰 여성에는 명기의 소유자가 많다는 게 옛부터의 단순한 속설이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또 이 피부색과 클리토리스의 발육도를 비교해 보면 흰 피부의 여성과 검은 피부의 여성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클리토리스의 횡경(橫經)이 5mm 이하의 발육이 나쁜 경우는 검은색 피부의 여성에게 많고, 이에 비하여 7mm 이상으로 발육 양호한 클리토리스는 흰 피부의 여성에게 가장 많은 것이다. 성기의 발육도에 관해서 말한다면 비만이 여성의 대 적(大敵)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성기나 감도의 문제뿐만 아닐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날씬한, 스타일이 좋은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생리적인 문제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요인에서 일게다. 아무리 살이 쪄도 그것에 대해서 아무 염려도 하지 않는 여성은 남자에 대해서 무신경, 동물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늘씬한 여성이 신경이 섬세하고 문명적인가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심리적으로 주는 인상은 역시 큰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섹스의 목적 중 자손의 번영에 큰 비중이 걸려있던 시절의 미녀의 조건은 다산계의 풍만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혹은 한때의 중국 왕궁에서의 섹스와 같이 쾌락 추구에 섹스의 목적 비중이 커지게 되면 그 기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성 측에도 그런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이 요청됨에 틀림없다. 기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반면에 일본의 섹스연구가이며 작가인 이로카와 와다루(色川涉)씨의 경험과 이론을 참고로 보자. 그는 무려 12살 때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상대는 경험 풍부한 성인여성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 여성이 꽤나 명기였다. 그녀에게 인도되어 질속으로 들어가자 마치 질 속에 손바닥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몇 개나 되는 손바닥이 나의 페니스를 감싸듯이 문질러 천천히 물어 왔다. 나는 앗 차 하는 사이에 사정(射精)하고 말았는데 그 순간 애액(愛液)을 짜듯이 입구를 몇 번이나 수축시켰다. 그때의 기분 좋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에 의하면 명기라 일컬어지는 여성은 외견으로 판별할 수 있는 일정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우선 명기의 조건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 6가지로 집약된다. ①질문(膣門)이 좁다. ②질벽에 가늘고 깊은 주름 같은 것이 있다. ③어떤 음경이라도 꼭 맞는 신축 자재성이 풍부하다. ④일어선 상태일 때 질문의 방향이 다소 하향으로 내려간다. ⑤질 근육의 확대수축이 불규칙하고 크다. ⑥클리토리스가 질구(膣口)의 바로 위에 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밑에 붙은 성기로, 삽입 때는 좀 답답함 속에 넣으면 남근을 압박할 정도로 질의 주름이 휘감긴다. 그리고 깊숙이 있는 자궁구의 주름이 앞 끝을 감쌀 정도의 길이로 삽입시의 감도도 좋다. 더욱 속되지 않은 방법으로 말하자면 질속에 지렁이 천 마리 또는 청어알 천장이 있는 것이다. 또 긴짜쿠(에로시대 때 매춘부를 달리 부르던 말) 같은 조여드는 여성기가 남자를 포로로 하는 명기라 할 수 있다. 지렁이 천 마리의 명기는 1만 명에 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극상의 물건이다. 지렁이 3백 마리나 5백 마리 정도의 여성은 꽤 있다. 손가락을 속에 넣으면 비교적 간단히 알 수 있지만 본인은 물론 상대 남성도 명기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이로가와씨 자신도 19세 때 자기가 지렁이 천 마리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여성을 만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상대는 3살 연상의 대학선배였다. 일단 삽입하려는 순간 입구가 이상히 작아서 충분히 젖어 있었는데 좀체 삽입이 되지 않았다. 이로카와씨가 어떻게든 삽입하려고 1시간 정도 애쓰고 있으려니까 자기가 명기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선배는 ‘미안해, 미안해’라고 연발하며 눈물을 흘리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겨우 삽입하자 이번에는 그가 “미안해”를 연발할 차례였다. 입구는 찔끔찔끔 일정 간격으로 조였고, 좁아진 질도는 깊은 주름으로 페니스를 감싸듯 한다. 그것도 귀두부에는 자궁구의 꽃잎이 꾸불꾸불 달라붙었다. 너무나 기분 좋음에 당황하여 허리동작을 멈추었는데, 동작을 멈추어도 그녀의 질은 자유자재로 움직여 자기도 모르게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단다. 그녀와는 6번 정도 어울렸지만 언제나 같은 상태였단다. 결국 한 번도 그녀를 절정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가 외견으로 명기를 판별할 수 있는 비법을 들어보면, 명기를 가진 여성은 크게 7가지 공통점이 있다. ①보통 살집에 보통 키, ②허리의 짤록한 부위에서 히프까지가 짧고 허리가 길게 보이는 것 같은 여성에는 명기가 적다. ③얼굴은 콧대가 그다지 높지 않고 짧다. 앙증스러운 코로 콧방울도 작은 여성이 좋다. ④신장에 비하여 얼굴이 작고 이마가 넓은 것도 명기여성의 공통점이다. 또 걷는 모습도 명기의 판별 포인트가 된다. ⑤엉덩이의 형이 정원형(正圓形)으로 쑥 튀어나와 걸을 때는 수평으로 크게 흔들린다. 여기에 더하여 ⑥섹스를 선호하는 것, ⑦여성기는 소위 “밑붙음”인 것도 명기의 조건이다. 이것은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명기는 결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여성뿐이었다. 얼굴의 미추(美醜)와 명기의 관계는 거의 없는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횡설수설(橫說竪說) 섹스학 강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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