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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15. 2023

(24) 딸 있는 유부녀가 황후로 – 왕지(王娡)

★ 18禁 역사 읽기 ★ (230509)

중국 역사상 다른 남자의 유부녀(有夫女)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서 출세한 경우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양귀비(楊貴妃)이다. 그녀는 당(唐) 현종(玄宗)의 며느리였는데, 강제 이혼하고 며느리에서 마누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러나 품계가 귀비(貴妃)로 황후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얘기할 여자는 유부녀에 딸까지 한 명 있었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오묘한 몸으로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황후에 등극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왕지(王娡)이고 훗날 한나라의 6대 황제 경제(景帝)의 황후인 효경황후(孝景皇后)이다. 그녀는 원래 왕중(王仲)과 장도(臧道)의 손녀 장아(臧兒)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 왕중이 죽고 어머니 장아가 장릉(长陵)의 전씨(田氏)에게 재가(再嫁)하자 어머니를 따라 전씨 집에서 살았다. 이후 김왕손(金王孫)이란 자와 혼인하여 딸까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딸 왕지(王娡)가 훗날 귀해질 거란 점괘를 듣자 사위 김왕손과 강제로 이혼시키고 처녀 행색으로 황궁에 시녀로 보냈다. 청운의 꿈을 품은 왕지가 궁에 들어와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드디어 황태자의 잠자리 시녀로 발탁이 된 것이다. 잠자리 시년에서 스타 탄생하는 과정을 잠깐 들여다보자.

"태자전하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 흐흡!" 후에 한(漢)의 경제(景帝)가 될 유계(劉啓 : 재위  BC157~BC141)가 음욕(淫欲)이 가득한 눈으로 시녀 왕지(王娡)를 끌어안자, 그녀가 교태를 부리며 앙탈을 부린다. 아버지의 장기집권으로 태자는 매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파묻혀 산다. 오늘도 초저녁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간단히 목욕하고 취침하려는데, 잠자리를 보러 온 예쁘장한 시녀 왕지(王娡)를 낚아챘던 것이다. 태자는 몰랐지만 왕지(王娡)는 유부녀였다. 유부녀가 숫처녀로 행세하며 궁녀로 입궁해서 태자의 잠자리 시중을 드는 위치에까지 온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 방중술의 비법이고, 기필코 황제나 태자를 신비로운 옥문으로 녹여서 귀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 그녀는 유부녀로서 갈고닦은 방사의 기교를 발휘할 최고의 기회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자 유계(劉啓)는 그것도 모르고 그녀가 깔아놓은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미인계에 걸려든 것이다. 태자는 마음이 급해서 빳빳하게 일어난 아랫도리의 여의봉(如意棒)을 왕지의 궁둥이에 대고 비비다가 압박해 들어갔다. "어머 이게 이렇게 커졌어요?" 왕지는 양손으로 태자의 여의봉을 지그시 잡으며 너무 기쁜 즐거운 탄성을 억지로 놀란 음성으로 두려움을 나타냈다.

유부녀가 어린 총각을 길들이는 능수능란한 기교다. 그리고 어머니 장아(臧兒)한테서 귀가 아프도록 듣고, 허리가 휘도록 연습한 방사(房事)의 ABC다. 태자는 벌써 알몸이다. 궁녀 왕지도 호시탐탐(虎視眈眈) 기회를 노리다가 여차하면 극한(極限)의 맛을 빨리 보여주려고 잠자리 시중을 들 때에는 항상 알몸에 겉옷만 입었다. 사내가 손만 대면 8월의 물봉숭아 터지듯, 늦가을 석류(石榴) 벌어지듯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다. 그런 그녀를 태자가 오늘 건드린 것이다. 태자 유계가 왕지의 옷을 벗기자 그는 입을 딱 벌리고 얼음이 된 듯, 버킹검 궁전의 경비병처럼 꼼짝하지 않고 멈췄다. 매끈하고 감미로운 여체에 올라타려다가 너무나 황홀해서 정지화상(停止畫像)이 된 것이다. 유계는 태자가 되고서도 부왕(父王) 문제(文帝 : BC202~BC157)가 23년이나 장기 집권을 하니, 따로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빈둥빈둥 주색잡기(酒色雜技)와 계집 가랑이 사이 동굴 탐험이나 하면서 세월을 낚았다. 그래서 여자 보는 안목(眼目)에 달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잡아 놓은 대어(大魚)는 뭔가 조급 다르고 특이했다. 왕지가 걸려들었다. 부왕의 여자 빼고는 모두 태자의 몫이다. 유계는 보위엔 별 관심이 없다. 아이를 낳아본 여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농염미는 다른 궁녀들에서 보지 못한 아주 색다른 관능(官能)이었다. 부왕 문제(文帝)가 아직 건강하고, 나라도 잘 다스려 선위(禪位)가 지연되고 있으나 유계는 그 같은 부왕의 통치를 즐기는 분위기이다. 태자는 왕지와의 첫 대결에서 그녀의 방중술(房中術)에 반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태자의 잠자리 시중은 여러 궁녀가 교대로 하게 돼 있으나 왕지는 그날 이후 아예 붙박이가 되었다.

"전하 제 몸이 이상하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몸이 이상하다니?" 왕지는 욕정에 불이 붙은 태자의 손을 끌어다가 자기 불두덩 거웃 위에 살짝 올려놓으며 "여기를 살살 쓰다듬어 보세요. 그리고 귀를 대보세요. 아이가 놀고 있어요!"라고 사슴 눈처럼 맑은 두 동공(瞳孔)에서 수정 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니? 귀한 아이를 가졌으면 즐거워할 일이지 웬 눈물을 흘리느냐?" 태자는 도리어 신이 나서 아이든 배에 올라타고 마음껏 욕심을 채우고 여느 날처럼 곯아떨어졌다. 왕지는 며칠 후 일개 궁녀에서 황후 다음 품계인 1등급 미인(美人)의 신분으로 수직 상승했다. 황궁 뜰에 각양각색의 국화가 만발한 가을에 왕미인은 자기보다 더 예쁜 딸을 낳았다. 태자는 왕지가 미인으로 승진되자 본인보다 더 좋아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온지요?" "은혜는 무슨, 네가 지금처럼만 하면 되느니라…" 궁녀에서 미인이 된 왕지는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져 태자를 모셨다. 태자에게는 원래 정비(正妃) 박씨가 있었으나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여서 뒤로 밀렸다. 정비(正妃) 박씨는 태자의 할머니 효문태후 박씨(孝文太后 薄氏)의 조카로 할머니 백을 믿고 후세가 없어도 기세는 등등했다가 나중에 폐위된다. 또 가장 좋아했던 총희(寵姬) 율희(栗姬)가 있는데 그녀는 아들 몇 명을 낳아서 콧대가 높아져 기고만장(氣高萬丈)해 발길을 끊을지 말지 그러던 차이다.

그 외에도 승은(承恩)을 오래 입은 정희(程姬)·가부인(賈夫人)·당희(唐姬)·왕부인(王婦人 : 왕지의 여동생) 등이 있었다. 그러나 독특한 매력의 새로운 애인인 왕미인에게로 발길이 옮겨왔다. 게다가 예쁜 딸까지 낳아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독식(獨食)한 사랑으로 만족할 왕미인이 아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으로 왕미인은 수태(受胎)를 위해 그냥 지나는 밤이 없다. 그러나 두 번째도 딸이었다. 왕미인은 입궁하기 전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 딸은 아무리 여럿을 낳아도 소용이 없다. 아들을 낳아야 국모(國母)도 될 수 있고, 늙어서도 천덕꾸러기를 면할 수 있어! 아들을 낳아야 태자가 될 행운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딸 둘을 낳고서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졌다. 자기가 못 낳으면 여동생 왕아후(王兒姁)를 입궁시켜서라도 아들을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닿았다. 물론 친정 엄마의 생각도 그러하였다. 엄마를 쏙 빼닮은 두 딸은 죽순(竹筍) 모양 무럭무럭 자랐다. 왕미인이 입궁한 지 어느새 8년이 지나 청초하고 풋풋한 맛은 지나 농염(濃艶)하고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해 갔다.

태자는 오늘도 거나하게 술에 취해 낮거리가 급(急) 당겨서 왕미인 처소를 찾았다. 마침 두 딸도 함께 있었다.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고 오셨구나. 어서 인사를 여쭈어라!" "아버님 그동안도 평안하셨어요?" "오냐! 숙(淑, 큰딸 평양공주), 금(錦, 둘째 딸 남궁공주) 모두 공주(公主) 수업을 잘하고 있겠지?" "예 아버님!" 두 딸은 인사를 마치고 어머니 눈지시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8살과 6살의 나이답지 않게 두 딸이 성숙해 벌써 여자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아 바람둥이 태자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미를 빼닮았소. 당신을 닮은 아들 하나를 낳았으면 원이 없겠는데?" "그래요? 소첩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첩이 꼭 전하와 소첩을 반반씩 닮은 아들을 낳아 드릴게요. 아들을 낳아 드리면 어떤 선물을 주실 건데요?" "왕미인이 아들을 낳아주면 내가 선위(禪位)를 받은 뒤 황후를 만들어 주지! 그만한 선물이면 만족하겠소?" "여부가 있겠어요! 전하께서 태자가 되신 지 몇 해가 되셨지요?" "글쎄다! 한 20여 년은 됐지 않겠느냐?" 유계는 더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왕미인을 끌어당겼다.  "전하 며칠 전에 제 몸에 붉은 달거리가 지나갔습니다. 마치 좋은 꿈도 꾸었습니다." 왕미인은 전과는 사뭇 다른 몸짓으로 사내를 통째로 녹여 먹으려는 듯이 쾌락의 극치로 몰고 가면서도 태자의 영혼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표시로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끝까지 이뤄냈다. 이날은 사내의 즐거움보다 여자의 만족도가 더 충실하게 실현된 사랑의 용광로였다. 왕지(王娡)는 입궁 후 처음으로 여자로서 흡족한 욕정을 한없이 푼 듯 뒤처리도 제대로 않은 채 유계의 품에서 골아떨어졌다. 늘 태자를 위해 혼신을 다하다가 스스로 오씨(오르가슴)를 맞아들였으니 새벽녘이 되어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나 헝클어진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왕지는 만약을 대비해서 동생 왕아후(王兒姁)를 궁에 불러들여 형제는 용감했다가 아닌 자매는 용감했다를 외치고자 했다. 그래서 은밀히 꽃단장시킨 여동생을 태자에게 진상하려고 궁으로 불렀다. 왕지는 황궁 뜰까지 나와 동생을 맞았다. "아후야 오랜만이다. 피곤하지 어서 들어가자!" 규모는 크지 않지만 휘황찬란(輝煌燦爛)한 왕미인의 방엔 태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두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는 왕미인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여동생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나 궁금해 숨이 막힐 지경인 것이다. "태자전하 미녀 왕아후 들어옵니다." 궁녀가 말하자 태자는 입가에 댔던 술잔을 술상에 놓고 벌떡 일어나 "그래!"라며 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아갔다. 유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왕미인과 똑같은 여인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복식(服飾)만 다를 뿐이다. "태자전하이시다. 인사 올려라…" 왕아후는 거실로 들어오자 인사를 공손히 하고 "소저 왕아후라고 하옵니다."라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역시 언니 말대로구나!" 태자는 마른침을 꼴깍 삼기며 한눈에 여인의 전신을 스캔하여 훑은 후에 그 속의 나신(裸身)을 연상해 보았다. 그러자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준동을 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숨이 가빠오고 마른침이 자구 넘어간다. "아후야 먼 길 오느라 피곤하겠다! 더운물이 준비 됐으니 목욕부터 하고 나오너라." 태자의 한 낮 정찬(正餐) 거리를 준비하려는 마음이다. 태자로서는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즉 감히 청하지는 못하였으나 본디 바라던 바였던 것이다. 열 여자 싫어하는 사내놈 있던가? 더구나 처제(妻弟)를 털도 안 뽑고 건식할 수 있는데.

엄마와 언니의 불타는 권력욕에 의해 여동생 왕아후의 초야권(初夜權)은 그렇게 태자에게 받쳐졌다. "아후야 부끄러워 말거라! 태자 전하가 너에겐 형부이시니! 잘 이끌어 주실 거야. 오늘이 지나면 너의 남자이기도 해." 자매를 나란히 앉히고 태자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촛불에 비친 미녀 자매는 술고래 태자의 애간장을 녹였다. 30줄에 접어든 언니 왕지은 세련되고 무르익어 사내 마음을 녹이는 꿀맛 같은 분위기라면 동생 왕아후는 들에 핀 이슬 머금은 가을 국화 같아 태자 마음을 송두리째 들었나 놓았다 한다. 불혹(不惑)을 갓 넘긴 태자는 여전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완력(腕力)을 잃지 않고 있다. 당장 달려들어 왕아후를 와락 품고 싶은 것이다. 이 같은 태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왕미인이 "전하 우리가 합환주(合歡酒) 시범을 보여 주어야겠네요!"라며 중국 4대 명주(名酒)의 하나인 서봉주(西鳳酒)를 한입 가득 물어 태자와 입을 맞추어 그의 입안으로 쏟아붓듯 넣었다. 서봉주(西鳳酒)는 진(秦)·한(漢)·수(隨)·당(唐)의 황제들이 마셨던 술로서, 송(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도 즐겼다. 싸리나무를 엮어서 만든 항아리 모양 술통 안에 면포(綿布)를 계란 흰자로 여러 겹 발라 붙이고 유채기름으로 밀봉한 주해(酒海)라는 용기에서 숙성시킨다.

"아후야 너도 부끄러워 말고 언니와 같이 서봉주를 입으로 태자 전하에게 한잔 권해라." 왕아후도 처녀 몸이지만 입궁(入宮)까지 한 마당에 몸을 사릴 처지가 아님을 알고 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입에 문 술을 태자 입에 넣으려니 바짝 붙을 수밖에 없다. 사내 얼굴은 불그스름해져 있고, 숨소리는 이미 거칠어졌다. 사내 입은 깔때기가 되었고, 여인의 입은 호로병(胡蘆甁) 주둥이가 되어 나긋나긋한 입술부터 뜨거운 육체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태자는 언니 왕지의 눈치도 안 보고 아후의 가슴께로 손이 파고 들어간다. "언니는 바쁜 일이 있어 먼저 나아간다. 네가 오늘은 이 방의 주인이다." 왕미인은 오뉴월 삼베 바지에 방귀 빠지듯이 사라졌다. 태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후를 덥석 안아 침상으로 갔다. "태자전하 살살하세요. 소저는 처음이옵니다." 태자의 귀에 아후의 말이 들릴 리 만무다. 단숨에 매미 날개 같은 여인의 옷을 벗긴 사내는 걸신(乞神) 들린 야수(野獸)같이 여인을 점령했다. 아후도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다양한 비법을 전수받은 바 있다. 더구나 서봉주 몇 잔에 정신이 알딸딸해 처녀성이 뚫어져 선혈이 흘러내려도 아픈 줄 모르고 즐겁고 영광스럽게 태자를 받아들였다. 원앙금침(鴛鴦衾枕)엔 아후의 처녀성인 선혈(鮮血)이 낭자(狼藉)하다. 또한 우우 빛깔인 아후의 샅과 엉덩이에게 장밋빛 선혈이아로저 추상화(抽象畫)를 그렸다. "네가 진정 처녀였구나!" 태자는 입가에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으며 재차 아후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욕망 껏 사랑을 나누더니 10여 년은 산 부부같이 알몸 한 덩어리가 되어 미래를 꿈꾸었다. "아후라 했겠다. 너 아들을 낳아다오. 그러면 내 태자로 봉할 것이다. 내 머지않아 선위(禪位)를 받을 것이다."

아후는 첫날밤 초야권을 상실하면서 회임(懷妊)을 하여 이듬해 삼복더위에 한나라 제6대 황제인 경제(景帝)를 쏙 빼닮은 아들을 낳았다. 동생이 아들을 낳자 삼신할미의 시샘인지 언니 왕지도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왕직 회임을 한 후에 부왕 문제(文帝)가 승하하고, 드디어 유계(劉啓)가 보위에 올랐다. 이제부터 황궁의 후계 구도에 대한 치열한 암투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왕미인 우리 사돈을 맺읍시다!"  관도장공주(館陶長公主) 유표(劉嫖)가 갑자기 황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말고 왕지에게 정색을 하며 간청하듯 말했다. 관도장공주(館陶長公主) 유표(劉嫖)는 선왕 문제(文帝)의 맏딸로서 전한의 개국공신 당읍안후(堂邑安候) 진영(陳英)의 손자 당읍이후(堂邑二侯) 진오(陳吳)를 남편으로 맞이했고, 이때부터 남편의 봉호를 따서 당읍대장공주(堂邑大長公主)라고 불렸다. 뜻밖의 제의에 왕미인은 귀를 의심했다. 장공주는 경제(景帝)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다. 남매간의 우애가 돈독해 출가외인이긴 하지만 황궁에 입김이 만만치 않다. 그런 장공주가 아직 미인에 불과한 왕지에게 사돈을 맺자고 먼저 제의해 온 것이다. 지금 일취월장으로 쑥쑥 높아지는 아들 유철(후에 무제 BC156~BC87)의 제왕학습에 만족을 드러내는 황궁 인심을 그녀는 꿰뚫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총희 율희(栗姬)의 아들 유영(劉永)이 태자로 책봉되어 있으나 어머니의 투기로 자리가 위태롭다.

장공주는 평소 동생의 태자 시절부터 그에게 많은 여자를 소개해 주어 사랑을 받게 했기 때문에, 경제의 장자로서 태자가 된 유영을 낳은 종전의 총희(寵姬)인 율희와는 사이가 나빴다. 더욱이 장공주가 딸 진아교(陳阿嬌)를 율희의 아들과 부부의 연을 맺자고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해 황궁 안팎에서는 소문이 휑휑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태자의 어머니인 율희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 이 상황을 장공주가 그냥 흘려보낼 리가 없다. 왕지의 아들 유철을 태자로 만들어 율희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작전이다. 왕지에게도 어부지리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다. 그러나 총희 율희도 그렇게 녹녹한 상대가 아니고, 더구나 그녀의 아들이 이미 태자로 봉해져 있는 까닭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왕지로부터 혼사를 허락받자 장공주는 왕지와 협력해 율희의 단점을 동생 경제에게 늘어놓는 한편 전객을 시켜 율희를 태자의 어머니로서 황후로 세우게 주청(奏請)하도록 했다. 그 당시 방지는 유계가 철없던 시절에 약속한 황후 책봉을 경제에게 끈질기게 다그치는 바람에 그는 밤잠을 못 이루며 세상의 무엇 보다 좋아하던 방사(房事)마저 최근에는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찰나에 황후 책봉에 대한 주청이 올라오자, 경제는 노하여 전객을 주살(誅殺)하고 유영을 태자에서 폐해 임강왕으로 내쫓고 왕지의 아들 유철(후에 무제)을 태자로 삼으니, 진아교는 태자비가 되는 것이다.

"전하 무슨 걱정이 있사옵니까?" 왕미인이 명주실을 빼낸 누에고치 즉 번데기 모양이 된 경제의 아랫도리를 조몰락거리며 아쉬운 심정으로 물었다. "아니! 그냥 심신이 피곤하구려!" 전에 없이 힘이 빠진 경제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을 포기한 듯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호색남 유계가 여자를 보고 욕정이 일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특히 자기 같은 방중술의 대가인 왕미인을 옆에 두고 등을 돌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하 그냥 주무시렵니까?" 왕미인의 섬섬옥수(纖纖玉手)가 경제의 사타구니 깊숙이 닿았으나 사내의 여의봉은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늘은 그냥 편히 자자!" "아니 되옵니다!" 왕지는 남편의 여의봉을 물고 빨고 별짓을 다하여 드디어 꿋꿋하게 고개를 쳐들자, 어느새 사내 위로 올라가 조용하고 리드미컬하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왕미인은 미모도 출중하지만 방중술도 천하에 당할 여인이 없다. 전설상의 황제(黃帝)에게 방중술(房中術)을 가르쳤다는 소녀(素女)나 당할까? 번데기 같던 여의봉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분기탱천(奮起撑天)하여 왕미인의 연꽃 속으로 돌진하여 부딪히고, 쏟구치고, 휘돌리고 좌충우돌(左衝右突)하기 시작했다. "역시 왕미인이 네가 최고다! 내 너의 아들 철을 태자에 봉하고 너를 황후에 올려놓으리다."  왕지는 며칠 전에 장공주가 한 말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사돈지간이 되자고 한 것이 남매간에 어떤 교감이 오간듯한 느낌이다. 말대로 되면 아들 철이 태자가 되고, 율희의 아들 태자는 보위에서 밀려나고 왕지이 황후가 되면 황궁 서열이 상전벽해되는 것이다. 왕미인은 더욱 힘을 쏟아 노를 더욱 다양하고 화려하게 저었다. "요즘 장공주님이 황궁 출입이 뜸하신 것 같아요? 전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황궁에 들리시면 소첩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조금 나누어 주시고 가셨는데 근자엔 통 뵐 수가 없었어요." "그랬느냐? 나도 뵙기가 꽤 오래되었다. 혼사문제로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왕미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얘기이다. "혼사 문제라니요?" "율희 아들이 탐이 나서 몸살이 났는데 그쪽에선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해 요즘 밤잠을 설치실 것이다." 풀무질을 하며 얘기를 나누던 왕미인은 일부러 슬그머니 경제의 여의봉을 옥문에서 빠뜨렸다. 유계는 무척 아쉬운 듯 "노는 아무나 젓는지 아느냐? 천하의 왕미인도 실수를 하는구나!"라며 위치를 바꿔 역발산(力拔山)의 힘이 솟는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왕지의 동굴을 종횡무진으로 휘저으며 그녀의 비옥한 대지에 꽃비를 잔뜩 쏟아주었다. 여인의 몸은 이미 달아올랐다. 벚꽃빛깔의 얼굴에 앵두빛 입술, 삼단 같은 머리, 꼭지가 발갛게 발기되어 곧추선 두 봉오리 하며, 봉곳하게 솟은 불두덩이 밑의 살엔 가지런히 덮여 있는 거웃마저 신기해 보였다. 신나게 노를 젓던 경제가 잠시 삿대를 놓고 화려한 왕미인의 나신을 감상한 장면이다. 방중술의 도사인 자매를 동시에 차지한 경제는 이제 밤일에는 더한 바람이 없었다.

왕미인은 관도장공주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관도장공주의 덕택으로 기원전 150년 황후에 책봉되었고, 어린 아들인 교동왕 유철 역시 황태자에 올라 관도장공주의 딸 진아교와 혼인하였다. 남편 경제가 죽고 아들 유철이 황제에 올라 무제(武帝)가 되자, 황태후로 진봉 되었고 기원전 126년에 장안에서 사망하였다. 시호는 남편의 시호를 따와 효경황후(孝景皇后)이다. 남편 경제(景帝)와 시아버지 문제(文帝)는 나라의 경영을 잘하여 백성들이 먹고살기에 좋은 시절이었다. 군사적 대결을 지양(止揚)하고 경제 발전에 힘을 쏟은 까닭이다. 국방은 북쪽의 오랑캐들에게 늘 물자와 여인으로 조공(朝貢)을 바쳐서 전쟁을 막은 것이다. 그래서 북방으로 조공으로 바쳐진 왕소군(王昭君) 같은 경국지색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것이고, 이 시절은 역사가들은 문경의치(文景之治)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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