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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후회하지 않는 삶 - 기부

금동수의 세상 읽기(210323)

by 금삿갓

“기부서약(寄附誓約)은 제가 쌓은 부가 단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선 신의 축복과 사회적 운(運)에 그리고 수많은 분들의 도움에 의한 것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존 롤스(John Rawls)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서약하면서 더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공개한 글 중의 일부이다. 젊은 벤처기업가로서 우리 사회에 던진 신선한 바람이 매우 존경스럽다.

더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2010년 8월 빌 게이츠(Bill Gates) M/S 회장과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회장의 개인재산 사회 환원 약속에 40명의 거부들이 참여하면서 만들어진 기부클럽이다. 기부(Giving)를 약속(Pledge)한다는 의미로, 세계 부호들이 생전이나 사후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면 더기빙 플레지 회원이 될 수 있다. 이 클럽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이면서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즉, 최소 5억 달러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2021년 2월 말 현재 전 세계 25개국 219명의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하고 참여 중이다. 이들의 연령대는 30대에서 90대로 다양하고 김 의장은 한국인으로 최초 가입자다. 카카오톡의 김범수 의장도 5조 원이 넘는 자기 재산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스스로 땀 흘려 번 재산을 선뜻 기부하는 것은 범인(凡人)으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런 기부를 할까? 기부 행위는 남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다. 기부를 하면 뇌에 있는 전두엽(前頭葉)의 ‘무릎 밑 영역’이 활성화되어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사회적 유대감과 낙천적 사고,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후회하는 삶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고가 베풀지 못한 점, 두 번째가 좀 더 참지 못한 점, 세 번째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한 점이라고 한다.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 자기가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보다 우위에 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타적(利他的)인 면이 공존한다. 어쩌면 근원적으로 이타적인 것 또한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

자기가 모은 재산을 기부한 역사적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사마천의 <사기(史記) :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나오는 범려(范蠡)이다. 범려(范蠡)는 BC 500년경 월(越) 나라 정치인으로서 왕 구천(句踐)을 도와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오(吳) 나라를 평정한 후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를 남기고 은퇴하여 사업가로서 성공했다. 이름을 범려(范蠡)에서 치이자피(鴟夷子皮), 도주공(陶朱公)으로 두 번씩 바꾸어 만금(萬金)을 세 번 벌어서 세 번 사회에 기부를 함으로써 삼취삼산(三聚三散)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남겼고, 중국인들에게 상성(上聖)으로 추앙을 받는다.

우리 역사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활동을 왕성하게 실천한 인사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 전공을 세우고, 병자호란에는 용인 전투에서 전사한 경주 최씨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과 그의 후손들이 9대 진사(進士), 12대 만석꾼을 유지하면서 지역사회를 잘 구휼(救恤)하였다. 가문을 지키는 육훈(六訓)과 스스로를 다스리는 육연(六然)은 300년 최씨 가문을 지탱한 뼈대였다. 일찍이 장리(長利) 문서를 소각하고, 소작료를 5할대로 낮추었으며, 흉년에도 밥 굶는 사람이 없도록 구휼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진력하였다.

사대부(士大夫)가 아닌 여성으로서 김만덕(金萬德)은 관기(官妓)의 신분에서 양인으로 벗어난 뒤 객주(客主)를 차려 거부를 이루어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녀의 상인 정신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적정가격(適正價格), 정직신용(正直信用)이었다. 정조 19년 제주 대기근(大飢饉) 때에 그가 살린 제주의 백성 수가 1,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조선 조정에서도 구호를 못한 것을 관기(官妓) 출신의 여성 객주가 구휼한 공로로 정조가 그녀의 소원인 입궐(入闕)과 금강산 구경을 시켜주었다. 채제공(蔡濟恭)이 <번암집(樊巖集) : 만덕전(萬德傳)>을 짓고, 정약용도 <경세유표>에 글을 쓰고, 그녀가 죽은 후에 제주에 유배 온 김정희가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현판을 남겼다.

정조 시대 인삼 무역상인 가포(稼圃) 임상옥(林尙沃)의 일대기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중국과의 인삼 거래로 이룬 재산으로 홍경래의 란 때에 의병과 물자를 지원하였고, 1834년에 의주의 수재민을 구제하였으며 많은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고 자기의 호(號)처럼 채마밭을 가꾸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장사는 이문(利文)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商卽人)과 재물은 물과 같이 평등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것을 좌우명으로 살았다.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일가의 활동이 가장 돋보인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으로 삼한갑족(三韓甲族)인 이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수 만석꾼이던 전 재산을 팔아서 만주로 떠났다. 이회영의 7형제 중 6명이 의기투합해서 이룬 의거(義擧)이고, 그중 5형제가 모두 이국(異國)에서 순국했다. 600억 원의 재산을 투입하여 헤이그 밀사 기획, 신민회 창설, 신흥 무관학교 설립 운영, 의열단과 다물단 운영, 무정부주의자 연맹 발족 등 독립운동의 큰 획을 그었다.

독립운동의 이회영 가문에 버금가는 문화계의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도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위창(葦蒼) 오세창(吳世昌)을 만나 문화 독립운동에 눈을 떴다. 그는 한남서림을 인수하여 그 많은 재산을 쏟아부어 일본이나 해외로 반출되거나 반출된 국보급 문화재들을 수집하였다. 그가 주목한 화가들은 겸재(謙齋) 정선(鄭歚),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등이었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던 영국인 수집가 존 개스비(John Gadsby)로부터 국보와 보물급 고려와 조선의 자기(瓷器)들을 대거 수집했다.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은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과 맞물려 매우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진 수집이었다. 해례본은 필자도 알고 있는 안동 주촌(周村)의 진성이 씨 종택에서 소장하던 것인데 당시 종손 이용준으로부터 11,000원(당시 기와집 11채 값 : 현재 가치로 77억 원)에 인수했다. 일만 원은 책값이고 일천 원은 사례비로 주었단다. 간송의 해례본 인수 사실을 들은 외솔 최현배 박사가 “반갑도다! 훈민정음의 나타남이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 국보 제70호이고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무가지보(無價之寶)이다.

서양의 기부 기록으로 오랜 것은 로마시대이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무덤에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을 35개의 문단(文段)으로 새겼다. 처음에서 14번 문단은 정치에 관한 업적, 15 ~ 24번째 문단은 공공사업에 대한 업적인데, 여기에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시민들에게 돈, 토지, 곡물들을 기부한 내역을 담고 있다. 또한 수 십 개의 신전 건립, 가도(街道) 보수, 수도 사업, 포룸(Forum) 건설 등의 공공사업, 검투사 시합들을 개최한 내용도 함께 기록되어있다. 아우구스투스는 국가의 재산이 아닌 개인 재산을 털어 이러한 사업들을 벌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기부를 받은 시민의 숫자가 수 십만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양의 기부는 동양과 달리 주로 왕이나 귀족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유럽의 봉건귀족이 구성원들에게 베푼 향응과 잔치는 자선이라기보다는 제도화된 재분배 정책에 가까웠다. 베푸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자선의 외양(外樣)을 띠고 있었지만 사실상 귀족의 의무였을 수 있다. 봉건경제에서 시장에 의한 자유주의 경제의 개막으로 기부와 자선은 도리어 사회 발전과 인류의 행복을 악화시키는 ‘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꿀벌의 우화>(1714)에서 개인의 악덕(惡德)이 사회의 이익이라고 보았다.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게 일자리를 주고, 얄미운 오만(傲慢)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린다.”며 시장의 자율 조정에 대해 설파했다. 그의 영향은 받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빵집·정육점·양조장 주인들의 자비심 때문에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사고는 19세기로 이어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개인 대 국가>에서 “자선은 생존에 부적합한 사람을 제거하지 못하게 한다.”며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즉 관용과 자선은 가족윤리 테두리에 있어야지 국가차원으로 되면 게으름과 방종(放縱)이 만연되어 사회가 퇴보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허버트 스펜서의 <종합철학체계>에 나온 적자생존의 철학을 철저히 기업에 접목하여 거대 부호가 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왜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를 했을까? 콜로라도주 러드로 광산 학살(Ludlow Massacre)로 어린이와 부녀자 등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잔혹한 사업가 석유왕 록펠러(John Rockefeller)는 젊은 프레더릭 게이츠(Frederick Taylor Gates) 목사의 자선재단 설립 권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카네기는 평소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신봉하여 자선이나 기부는 노동 의욕을 저하시켜 사회를 퇴보시킨다고 생각했다. 많은 유산 또한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해서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고 부(富)의 대물림을 혐오했다. 심지어 그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To die rich is to die disgraced).”라고 하며, <부의 복음>이란 책을 썼는데 “재산을 안고 지구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천국의 명패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을 직접 돕는 것은 게으름과 의타심 조장으로 사회가 타락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선사업도 직접 기부하지 않고 자기가 사업을 운영하듯이 했다. 그의 자선 활동은 직접 기부가 아니라 철저히 공공도서관(3,000여 개)이나 학교(카네기 멜런대) 등 사회적 기반에 투자되었다.

록펠러는 53세쯤 탈모증(Alopecia) 비슷한 암 진단으로 1년 시한부 통보를 받은 후 어머니의 충고로 자선사업에 눈을 돌렸다. 물론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훈육을 통하여 교회에 십일조 헌금만은 철저하게 지켰고 스스로 그의 부는 하느님이 준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게이츠 목사의 권고로 록펠러재단을 설립하고 자선을 베풀었는데, 97세까지 장수하였고 기부하는 동안에도 재산은 계속적으로 불어났다. 재단 이외에도 시카고대학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사회적 공기(公器)에 기여하였다. 동기야 어떻든 동시대 이 둘의 기부 행위가 귀감(龜鑑)이 되어 미국 기업가들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선박 및 철도왕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의 밴더빌트 대학, 신문왕 윌리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 영화와 항공산업가 하워드 휴즈(Harward Huge)의 휴즈의학연구소, 자린고비 석유재벌 폴 게티(Jean Paul Getty)의 폴 게티 미술관 등등이 기부의 산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더욱 활발해져서 더기빙 플레지 클럽의 219명 가입자 중 80%가 미국 국적의 사업가들이다. 전 재산 99% 기부 약속을 한 마크 저커버그, 전 재산 기부 목표를 달성한 면세점 DFS의 척 피니, 이혼한 부부 모두 기부왕에 이름을 올린 제프 베이조스와 전처(前妻) 맥켄지 스콧,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등 쟁쟁한 인사들이 기부 행위를 견인하고 있다.

영국의 자선구호단체인 CAF(Charities Aid Foundation)가 지난 10년간 기부 경향을 종합하여 2021년 국가별 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를 발표했다. 기부지수는 낯선 사람을 돕는 정도, 자선 기부금액, 자원봉사 단체 활동 시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기부지수의 순위를 살펴보면 역시 미국이 미얀마와 함께 공동 1위이다. 상위 10개국을 보면,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순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소득이나 재산이 많아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는 하위 그룹인데도 불구하고 기부지수가 최상위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57위로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높지만 태국, 이란,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 대만, 네팔 등에 뒤진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자긍심이 있었는데 국제적 평가가 아쉬운 부분이다.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가 기업인으로 일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좋은 사례가 되어 많은 기업인들이 재산을 사회 환원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의 수준과는 격차가 심하다. 그 외에 이름 없는 독지가(篤志家)나 연예인들의 기부 동참도 사회에 좋은 선순환 구조를 가져온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1억 이상 기부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가입자가 2,500명에 달했다. 기부행위도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저변의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부도 잘못하면 세금 폭탄을 맞는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하버드 등 해외의 대학에 42억 원을 기증했다가 27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상도동 사저(私邸)와 거제도 땅, 어장(漁場) 등 60억 원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서 도서관을 지어 기증했는데 30억 원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교차로의 창업주 황필상 박사가 아주대에 보유 주식 90%인 180억 원 상당을 기부하고 140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세법상 기업의 대주주는 지분 5%를 초과해서 기부하면 60%의 증여세가 부과되고, 개인도 공익법인이 아닌 단체에 기부할 경우 증여세가 부과된다. 미국의 경우 자선단체의 기부는 무한정 비과세이다.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세제 개혁이 필요한 이유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10월에 별세를 했다. 세간(世間)에는 이 회장의 유산과 소장(所藏) 미술품 그리고 상속세 규모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상속세만 11조 원이 넘을 거라 전망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0년 11월 5일에 <기업승계 시 과도한 상속세 부과의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상속세율이 50%로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최대주주 할증평가(20% 할증)를 적용하면 60%에 달해서 세계 1위이다. 반면에 미국(39.9%), 독일(30%), 영국(20%) 등 우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세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기업을 처분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되는 게 문제이다. 실제로 쓰리세븐(손톱깎이 세계 1위)은 상속세 부담으로 도산 위기에 처했었고, 유니더스(콘돔 세계 1위)도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기게 되었다. 부의 대물림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존속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국보급 문화재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 회장의 미술품에 대한 안목과 수집 경향은 “그림도 머리(대표작)를 잡아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결집된다. 인재의 S(Super)급 초빙과 미술품의 대표작 수집이 일맥상통한 경영철학이라고 보인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 게 대세이므로 거기를 채우는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 세계적인 걸작이 관광객을 유인하는 요인이 때문이다. 삼성가(三星家)에서 수집한 것이 13,000점이 넘고, 감정가격이 1,000억 원을 초과하는 세계적 걸작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생존 시에 기증 등 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삼성가와 국가가 좋은 방법을 찾아서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간송미술관이나, 미국의 뉴욕 MoMA(뉴욕 현대미술관)와 폴 케티 미술관처럼 이 회장의 소장품들이 우리 국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의 눈을 호사롭게 해 주길 기대한다. 필자를 포함해 누구든 후회하지 않는 삶을 마무리하자면 베푸는 것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겠다. 재산상의 기부가 아니라도 육신을 이용한 재능기부(才能寄附), 봉사 활동, 낯선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기 등등 누군가를 위한 스스로의 희생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하다못해 조그마한 동호회의 회장과 총무라도 구성원을 위한 봉사의 역할이고 덕을 쌓는 일이다. 썰렁한 ‘아제 개그’이지만 영어의 ‘주다(Give)’와 우리말의 ‘주다(기부)’는 모두 기부이다. 골프 칠 때 ‘기부(Give me : Concede)’도 많이 주면 좋은 동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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