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운사 Jun 05. 2023

(31)미남 무사와 미녀 춤꾼 – 시즈카 고젠(靜御前)

★ 18禁 역사 읽기 ★ (230604)

일본 역사상 양대 일족인 겐지(源氏)와 헤이지(平氏) 사이의 패권 싸움인 겐페이전쟁(源平合戰) 시절에 겐지 편의 미남 사무라이(侍)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 : 1159∼1189)가 있었다. 겐지 가문 쪽의 동량(棟樑)인 아버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와 애첩인 교토에서 이름난 미녀 토키와 고젠(常盤御前) 사이에서 출생했다. 본부인의 아들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이복동생이다. 어머니 토키와 고젠은 교토 미녀 천 명 중 백 명을 가려 뽑고, 그중에 열 명을 다시 가려 뽑았는데 토키와가 가장 아름다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런 어머니의 미모 덕분에 미청년으로 알려져 있고, 남겨진 초상화에도 대부분 귀족적인 겐지의 귀공자로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꽃미남에 출중한 무예 실력과 빵빵한 가문 출신으로 완전 황금수저인 것이다. 이런 요시츠네도 본부인을 제치고 영원히 이루지 못할 사랑을 나누던 여인이 바로 시즈카 고젠(靜御前)이다. 고젠(御前)은 이름이 아니고 일본에서 귀인이나 귀인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단어이다. 후에 시라뵤우시나 유녀(기생)를 가리킬 때도 폭넓게 쓰인 말이다. 그녀는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의 시라뵤우시(白拍子)였는데, 어머니 이소노젠지(磯禅師)도 최초의 시라뵤우시라고 한다. 시라뵤우시는 헤이안 시대 말기쯤에서 가마쿠라시대에 걸쳐 있었던 예인(藝人) 집단을 말하는데, 남장한 채 가무(歌舞)를 추던 여자예인들과 남자예인들을 통틀어 부르던 명칭이다. 이들은 대개 검고 긴 모자 에보시(烏帽子), 하얀 겉옷 히타타레(直垂ひ : たたれ), 그리고 붉은 하카마(袴) 바지의 복색이 대표적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우스개 소리로 용자(勇者)가 미인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 말이 완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간혹 용기나 힘도 없는데 운 좋게 미인을 얻은 경우에는 늘 말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백제 개로왕(蓋鹵王)이 빼앗은 도미의 아내 아랑이나, 당나라 현종의 형 영왕(寧王)이 빼앗은 떡장수의 아내, 금병매(金甁梅)의 서문경이 빼앗은 무대랑의 아내 반금련(潘金蓮)이 그렇다. 아내를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화를 당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용기와 힘으로 미인을 얻어도 끝까지 행복하지 못하고 비운으로 끝난 경우도 허다하다. 항우(項羽)와 우희(虞姬), 여포(呂布)와 초선(貂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커플들 사랑은 하나같이 비극으로 끝이 났다. 이들의 사랑도 처음에는 신분의 차이를 초월한 조선의 춘향전처럼 시작되었으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시라뵤우시의 주 무대는 수도인 교토이다. 왕궁이나 고위 관리들의 공식행사, 접대, 연회 이런 데가 주 활동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춤을 매우 잘 췄다고 하며, 군담소설인 기케이키(義經記)에 따르면 고시라카와 법황이 신센엔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서 백 명의 무희들이 춤을 봉납하게 했는데, 마지막에 그녀가 춤을 추자 비로소 비가 내렸다고 한다. 고시라카와 법황은 그녀를 일본 제일이라 칭찬하면서 ‘저 자는 신의 아이가 아니냐?’하고 감탄했다 한다. 하지만 그녀가 유명하게 된 것은 춤 때문이 아니라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연인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연애담이 워낙 유명하고, 두 사람의 첫 만남 또한 신센엔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설화가 남아 있어, 혹자는 이 이야기를 한국의 고전인 춘향전에 빗대기도 한다. 

겐페이전쟁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잡은 배다른 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에게 팽 당하여 요시츠네가 큐슈로 도망치게 된다. 이때 시즈카는 요시츠네의 가신 무사시보 벤케이와 함께 따라갔으나, 성역(聖域)이기 때문에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요시노산(吉野山)에서 이별한 뒤 교토로 돌아가던 중 종자에게 배신당해 가진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깊은 설산 속에서 미아가 되었다. 요시노산(吉野山)은 나라현에 있는 벚꽃 명소이며 슈겐도(修驗道)의 본사인 김푸센지(金峰山寺)가 있다. 예로부터 일본의 산악 영지로 여겨져 왔던 곳이다. 워낙 벚꽃이 많아서 산 밑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꼿대기까지 한 달간 아름답게 피는 명소이다. 사찰에 피난하려던 시즈카는 사찰의 승병(僧兵)에게 잡혀 취조를 받고 이런 전후 사정을 진술하게 되었다. 주지(住持) 조차도 시즈카를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이복형 가마쿠라(鎌倉) 막부의 역적의 첩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위로하고 후대하는 것 정도 이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어서 결국 시즈카는 카마쿠라로 압송된다. 이때 그녀는 요시츠네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별하던 날의 한 장면이다. 

새 세상이 돌아오고 새 봄을 맞아 그런지 올해의 벚꽃은 유난히 만개(滿開)했다. 도망쳐온 교토와 가마쿠라의 하늘엔 먹장구름이 짙게 드리웠으나, 사쿠라의 명소인 요시노산은 딴 세상 같이 하늘도 청명해 활짝 핀 벚꽃의 자태를 더욱 화려하고 눈부시게 했다. “여보 제가 당신 곁을 떠나야겠어요.” 시즈카 고젠이 연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게 말을 건넸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 곁을 떠난다니?” 요시츠네는 뒤통수를 망치로 호되게 맞은 표정이다. 산들바람이 산들산들 불자 연분홍 자태를 드러낸 벚꽃이 함박눈처럼 두 사람 위로 쏟아졌다. “벚꽃이 너무 정말 고와요!” 시즈카는 눈물을 감추려고 요시츠네의 품에 와락 안긴다. “아름다운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고, 산(山) 바람이 차가워요.” 시즈카의 약간 불룩한 배가 요시쓰네의 가슴을 압박했다. “여자는 같이 갈 수 없고, 더구나 내가 당신 곁을 떠나야 당신이 홀가분하게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곧 이곳을 떠날 거예요.” 여자의 태도는 단호하다. “우리의 사랑은 저 하늘과 이 산에 활짝 핀 사쿠라가 증명해 줄 거예요. 당신을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사랑을 함께 나누어요.” 시즈카는 어느새 알몸이 되었다. 겨우내 떨어진 낙엽과 만개한 벚꽃이 떨어져 아름다운 담요 역할을 해서, 그 위에 시즈카와 요시츠네가 얼굴을 마주 보며 한 덩어리가 되었다. “여보, 제 배를 만져 보세요.” 시즈카는 요시츠네의 오른손을 끌어당겨 봉긋하게 솟아오른 자신의 아랫배에 갖다 됐다. “어때요? 당신 쏙 닮은 아들이 뛰어놀고 있지요? 틀림없이 아들일 거예요. 설사 계집아이라도 사무라이로 키워 당신과 같이 교토를 비롯한 서일본(西日本)에서 덕망 있는 무사로 키울 거예요.”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은 함박눈 같이 쏟아져 벌거벗은 남녀의 온몸에 아름다운 수를 놓았다. “여보, 지금 우린 벚꽃 궁전(宮殿)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거예요. 저는 선녀(仙女)가 되고, 당신은 천왕(天王)이 되어 누구의 간섭도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거예요.” 연인이 이복형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로부터 쫓기는 몸이 되고부터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잘 어울리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관계도 아니고, 도리어 사무라이의 야망에 짐이 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몇 번이고 되씹고 또 되씹어 얻은 결론이다. 이제 그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산들바람을 타고 생명을 다한 벚꽃들이 훨훨 날던 나비가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듯 떨어져 두 연인의 사랑의 비로 내렸다. 아니 꽃 그림의 아름다운 담요와 이불이 되어 둘로 하여금 에로스의 정원으로 빠져들게 했다. 

시즈카는 요시츠네의 장대하고 눈부신 비장(秘藏)의 장검이 우람하게 일어나자 슬그머니 일어나 비스듬히 누은 벚나무 등걸을 붙들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 덕분에 앞으론 곤란해요. 뒤로 해 주세요. 더 신선하지 않아요? 야외니까.” 의외로 대담(大膽)하게 나오는 시즈카의 반응에 요시츠네는 짐짓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양손으로 도자기처럼 미끄럽고 봉긋한 시즈카의 엉덩이를 받치고 뜨거운 입술과 혀로 신비하고 오묘(奧妙)한 쾌락의 블랙홀을 공략한다. “아.. 아, 이제 그만 들어오세요.” 여인은 더는 참기 어려운 듯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재촉한다. 벚나무 등걸을 잡은 손엔 파란 힘줄이 불거지고 얼굴엔 벚꽃 보다 더 발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멀지 않은 어느 나무 위에선 두견(杜鵑)이가 시샘을 하는지 짝을 찾아 울고 있다. 사내는 손을 아래로 쭉 뻗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불어 오르기 시작하는 두 유방을 잡고 쾌락의 동굴로 깊숙이 들어갔다. 여인의 흥분에 겨운 고양이 울음 같은 신음(呻吟) 소리는 공교롭게도 두견의 울음소리와 엇박자를 이루면서도 중모리를 돌아 자진모리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와 등 위엔 화려함을 다 하고 낙화(洛花)가 된 사쿠라 꽃이 사무라이의 땀과 여인의 절정의 눈물이 뒤섞여 쌓였다. 사내의 손이 여인의 엉덩이를 거쳐 두 유방에 다다르자 여인은 절정의 순간을 암사자가 포효하듯 토해 냈다. “너무 깊이 들어와서 아이가 놀라겠어요.” 그들은 흐르는 땀방울과 엉클어진 머리를 수습하고 서둘러 동굴로 돌아갔다. 

요시츠네는 오랜만에 뜨거운 사랑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햇살이 얼굴을 비추자 잠에서 깨어났다. 주위엔 호위무사 몇 명이 있을 뿐 시즈카가 보이지 않았다. 문뜩 어제 산속 벚꽃 숲아래에서 정사를 떠올렸다. “당신에게 짐이 될까 당신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란 말이 떠올랐다. “시즈카는 어디 갔냐?” 무사는 말없이 쪽지 하나를 건넸다. ‘무훈(武勳)을 빕니다.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로서 떳떳한 사무라이가 되세요. 당신의 영원한 여자 시즈카 고젠 올림.’“언제쯤, 어디로 갔냐?” “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사실 요시츠네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 것을 예상을 하고 있었다. 수족과 같이 부리는 호위무사에게 넉넉한 돈을 주어 만약 시즈카가 예고 없이 떠날 때 가게무샤(影武者) 역할을 부탁해 놨던 것이다. 그러나 교토 제일의 무희 시즈카 모녀는 산중턱도 못 내려가 사찰의 승병에게 잡히고 결국 시즈카는 가마쿠라로 압송되었다. 

원래 이복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대리하여 겐지의 대장군으로서 이치노타니 전투, 야시마 전투, 단노우라 결전 등을 통하여 결국 헤이케를 멸망시키고 이복형이 실권을 잡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주변의 모함으로 인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었다. 더구나 이복형의 측근들이 모반을 꾸민다고 허위보고를 하자 형이 자객을 보낸다. 간신히 자객을 물리친 요시츠네는 성질이 있는 대로 나서 반대파를 규합해서 형을 치려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고시라카와 법황(法皇)도 요리모토의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요시츠네에게 제거 밀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 후 요시츠네는 호위무사 몇 명과 함께 오슈, 규슈, 히라이즈미 등을 전전하면서 반전을 시도하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해졌다. 그래도 사랑하는 연인 시즈카와 사쿠라꽃이 만발하는 나무 밑에서 마지막으로 영혼과 육체를 불태운 추억을 반추하며 야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요시츠네는 코로모 강가에서 추격병에 둘러싸여 본부인과 4살짜리 딸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였다. 향년 31세였다. 충실한 심복 벤케이가 이때 주인을 지키며 온몸에 화살을 맞아 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이후에도 요시츠네의 애첩이던 시라뵤우시(白拍子) 시즈카 고젠이 연인 요시츠네를 찾아 헤매다가 지치고 병들어 쓰러져 죽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의 기록이 없고 다양한 전설만 나무한다.

한편 시즈카를 잡아 가마쿠라로 압송해 간 요리모토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즈카를 통해 요시쓰네의 행적을 알아낼 기대를 했으나 수포(水泡)로 돌아갔다. 고문을 해서라도 정보를 빼내고 싶으나 차마 임산부에 손을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비를 강화했지만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요시츠네가 야음(夜陰)을 틈타 언제 덮칠지 몰라 요리모토는 날마다 밤잠을 설친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시즈카 뱃속의 요시츠네 씨는 어머니 배를 툭툭 차며 무럭무럭 자란다. 그해 여름 어느 날, 해맑은 아침이 열였다. 요리모토가 세운 쓰루가오카하치만궁(鶴岡八幡宮 : 무예의 신 하치만을 모신 신사)의 넓은 정원엔 아침 일찍부터 황족과 막부(幕府)의 고위 무사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모두들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들이다. 오늘 여기서 교토 최고 무희의 춤을 관람하러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전설적 전쟁 영웅 요시츠네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교토 최고의 무희이며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의 춤 공연은 단조로운 사무라이들에게 그야말로 최고의 위문공연이 아니었을까 한다. 인근 지방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총집합되는 상황이다. 마침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는 다나바타(七月七夕) 축제가 다음 날인 동시에 요리모토의 전승을 기념하는 행사도 겸한 마츠리(祭)에 시즈카의 춤 공연까지 스케줄에 들어가 금상첨화가 되었다. 하치만궁의 넓은 정원은 축제준비로 마치 우리의 가을운동회 분위기로 들떠있다. 정원 왼쪽엔 미루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고, 오른쪽엔 벚나무가 바위 같이 버티고 있어 한낮에도 엄숙하고 정숙한 신사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부터 화려하게 차려입은 막부의 고위 무사들을 비롯한 황족들이 모여들어 다나바타 마츠리의 전야제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이번 그녀의 춤 공연은 실권자 요리모토의 부인 호조 마사코(北條政子)의 생각이었다. 요리모토도 사실 미인으로 소문난 동생의 애인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누라가 그런 의견을 내니 군말 없이 승낙한 것이다. 어쩌면 호색한 요리토모가 넌지시 시즈카에게 눈독을 들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적당한 구실을 삼아서 어떻게든 시즈카를 구워삶아 먹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시즈카는 연인을 죽이려 드는 시숙(媤叔) 요리모토와 그 똘마니들 앞에서 춤 공연을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고, 특히나 지금 임신한 몸으로 춤을 추기는 더욱 싫었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의 부인인 호조 마사코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연인의 적 앞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춤을 출 바에야 마지막 춤이라 생각하고 자기의 진면목을 보여 주리라 각오를 했다. 그녀는 출산을 가까인 둔 만삭의 임산부다. 마사코도 부탁은 했으나 원만한 공연을 기대하지 않는 눈치이다. 교토 최고 무희의 자존심을 미처 가늠하지 못한 것이다. 시즈카는 춤 공연에 입을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기모노 한 벌을 요구했다. 속에는 히토에(單衣)를 입고 그 위에 여러 벌의 우치기(袿)를 입는 기모노를 요구했던 것이다. 우치기는 차례대로 색깔을 달리하고 기장을 조금씩 길게 만들어 겹쳐 입으면 소맷부리, 치맛자락, 앞여밈에서 배색이 우아하고 품위까지 풍겼다. 또한 우치기의 겉과 안의 카사네이로메(襲色目)에는 사계절의 풀·꽃·나무의 이름을 붙여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그야말로 미야비(雅)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풍정이다. 일본의 예술을 색의 예술이라 했는데 시즈카는 춤의 예술에 색채미의 정수인 기모노의 아름다움을 더하도록 했다.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시즈카 춤의 세계를 영원히 각인시켜 놓고 싶었던 것이다. 

정원 중앙에 설치된 무대는 30∼40평에 불과하지만 혼자서 추기에는 아주 넓어 보였다. 단조로운 샤미센(三味線 : 줄이 셋인 전통 현악기)의 음률에 맞춘 시즈카의 춤사위는 동작 하나하나와 옷깃의 펄럭임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왕년의 고수인 어머니의 샤미센 연주에 딸의 춤사위는 수백 명의 숨 죽인 눈동자를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그때 그녀는 연인의 정적인 요리모토의 음욕에 가득 차서 이글거리는 눈을 보았다. 마치 자기의 발가벗은 몸 구석구석을 그 음탕한 눈으로 훑고 있는 것 같아서 구토와 현기증이 올라왔다. 이때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연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춤이 점점 절정으로 다가가자 시즈카는 12겹의 우치기를 하나씩 하나씩 벗어 관람석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12겹의 우치기는 제각각 색깔이 다르고 기장도 똑같지 않아 한 벌 갖춰 입으면 형형색색의 빛깔이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는 연인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시즈(倭文)여, 시즈. 시즈의 실 꾸러미를 되감듯이, 옛 세월을 지금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しづやしづ 倭文(しづ)のをだまき くり返し 昔を今に なすよしもがな)” “요시노산 봉우리의 흰 눈을 헤치고 모습을 숨긴 그 사람의 흔적이 그리워라.(吉野山 峰の白雪 ふみわけて 入りにし人の 跡ぞ恋しき)”라고 요시츠네를 사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시즈(倭文)는 일본의 옛날 직물의 한 종류인데 이를 풀어서 실꾸리에 되감듯이 세월을 되돌려 놓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시즈카! 시즈카! 정신 차려라. 눈 좀 떠보거라.”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만삭의 딸 건강이 염려되어 절박한 음성으로 그녀를 안고 흔들며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길 재촉한다. 그때 시즈카는 비몽사몽간에 요시노산 벚나무 아래에서 요시츠네와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요시츠네의 입술과 혀가 그녀의 젖꼭지를 거쳐 점차 아래로 내려와 두 다리 사이의 물기 어린 연꽃잎 사이를 헤집고 들었다. 그녀는 정신이 아득하고 온몸이 솜처럼 부풀어 올랐다. 마침내 둘은 오랫동안 억제된 갈망을 풀어내듯 서로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곳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산란기의 뱀장어처럼 미끈거리는 동굴을 꿈틀거리며 힘차게 지쳐 들어왔다. 서로에게 더 깊게 더 아름답게 온몸 구석구석 끝까지 감미로운 사랑이 퍼지도록 오래오래 유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절정을 맞으려는 듯 “여보 더 깊게! 더 꼭”하고 외치려는 순간에 놀란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또한 관중들이 가설무대를 들어 어깨에 메고 “요시츠네! 요시츠네!”를 외시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이제 정신이 드느냐?”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시즈카는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춤이 끝날 무렵 흥분한 관중들이 몰려들어 가설무대를 번쩍 드는 순간 중심을 잃고 쓸어져 정신을 잃은 것이다. 시즈카가 눈을 뜨고 의식을 되찾자 한숨을 크게 내쉰 어머니는 “너의 노래와 관중들의 소란으로 쇼군이 무척 화가 난 모양이야. 우리가 무사하지 못할까 두렵구나.” 어머니의 미간 주름살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쇼군 취임 경축과 시즈카의 환심을 은근히 기대했던 요리모토는 화가 불같이 났다. 시즈카는 춤 공연으로 역적 도망자 요시츠네를 그리워하고, 관중들은 도망자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환호하는 듯 한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춤 공연을 제안한 마사코도 이복형제 사이지만 남보다도 더 관계가 안 좋은 상황을 어떻게든 돌려놓으려는 계획이 뒤틀리자 도리어 입장이 궁지에 몰렸다. 쇼군 요리모토는 시즈카를 당장 처형하자는 것이다. 살리려면 요시츠네의 행적을 당장 알아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즈카는 식음을 전폐한 채 입을 다물고 방구석에 칩거했다. 쇼군의 아내 호죠 마사코가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도 저렇게 부르겠어요. 당연한 거니까요. 용서하세요.”라고 말하여 시즈카의 목숨을 구걸하였다. 과거에 호조 마사코는 이즈로 유배 온 요리토모에게 반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만나지 못하자 야반도주까지 감행하여 요리토모와 결합한 것이다. 그러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시즈카에게 크게 공감했던 것이고 남편 요리토모도 일정 부분 수긍을 했다. 그래서 그녀를 가마쿠라에 굳이 붙들어 놓은 것은 시즈카의 뱃속에 있는 요시츠네의 아이 때문이었다.  요리토모는 아기가 딸이면 살려주고 아들이면 죽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태어난 아이는 요시츠네를 빼닮은 아들이었다. 이때 그녀와 아이를 불쌍하게 여긴 마사코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탄원했으나 비정한 요리토모는 단칼에 거부했다. 아기를 끌어안고 몇 시간이나 우는 시즈카의 앞에서 아이를 달라고 꾸짖던 요리토모의 가신을 보고 잘못하다가 딸까지 해를 당할까 봐 두려워한 시즈카의 어머니 이소노젠지가 결국 아기를 빼앗아 요리토모 측에게 건네줘 버리는 비극이 일어났다. 아기는 가마쿠라의 유이가하마(由比加浜) 해변에서 살해되었다. 

마사코는 어떻게든 시즈카를 지켜주고 싶으나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나쁘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그냥 방기 할 수는 없다. 비록 배다른 형제지만 그녀와는 동서(同壻) 지간이나 다름없고, 더욱이 교토의 춤 문화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사코는 나름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다음날 저녁이다. “여보 오늘은 일찍 퇴근하셨네요.” 전에 없이 마사코가 요리모토에게 다정한 척한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소.” 요리모토는 정무(政務)를 끝내고 사무라이들과 사시미에 니혼슈(일본 전통술) 몇 잔을 마시고 들어와 기분이 약간 들떠 있는 상태다. 시즈카만큼 예쁜 마사코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클로버 무늬의 기모노 차림이 청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남편의 표정이 밝아 보여 여인은 서재로 따라 들어갔다. “당신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마사코의 두 손이 등 뒤에서 요리모토의 허리를 휘감는다. 니혼슈의 은은한 향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나 마사코의 코를 자극했다. 요리모토는 니혼슈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부부 관계 때도 예외 없이 즐겨 마셨으며, 그러면 부부관계도 더 뜨거워지고 길어졌다. 아니다 다를까 마사코가 따라 들어올 것을 예상한 듯 요리모토는 남의 여자를 겁탈하듯 거칠게 다룬다. “잠깐만요. 제가 잠시 물을 끼얹고 나올게요. 그리고 침실에서 해요.” 마사코는 버둥대며 요리모토의 품을 벗어나려 했으나 오비(帶 : 기모노를 매는 넓은 띠)가 풀리면서 삽시간에 알몸이 되었다. 

마사코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지만 옷을 입고 있을 때 보다 발가벗은 가장 원초적 상태에서의 모습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 : 일본 태양의 여신)를 연상할 정도로 강인하여 세상의 사내들이 탐낼 일본 제일의 속살 미녀다. 이들은 마치 일본 신화의 쌍둥이 남매이자 부부의 신(神)인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이자나미(伊邪那美)와 같이 원초적으로 행동했다. “피곤해요?” “조금. 행사가 잦아서 약간 귀찮고 짜증 나오. 전장에서 싸우는 것보다 마츠리가 더 피곤하오.” 요리모토는 마사코에게 느긋하게 몸을 맡긴다. “눈을 감으세요.”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 밑에서 올려다볼 때 여체의 아름다움은 사뭇 다르다. 자그마한 몸일지라도 배 위에 올려 놀고 누워서 쳐다보면 여체의 굴곡과 볼륨은 더 환상적이다. 남자가 위에서 군림하는 자세로 볼 때는 욕망의 동산인 에로스의 메카에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고, 젖과 꿀이 넘치는 달콤한 낙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밑에서 쳐다보는 여체는 좀 더 환상적이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아득하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끝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비너스 품같이 느껴지기까지 하다. 마사코의 예쁘고 가녀린 두 손이 사내의 굳건한 사타구니에 와닿자 누에고치 속에서 잠들어 있던 것처럼 쪼그라들었던 여의봉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서서히 일어섰다. 요리모토는 눈을 감은 척하면서 실눈으로 마사코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원래 쇼군도 그리 크지 않은 키다. 마사코의 검은 머리가 여러 개의 불빛에 비쳐 움직일 때마다 머릿결에서 빛이 반사되어 묘한 신비감이 풍겨졌다. 사내는 적당히 취한 상태여서 기분은 더없이 즐겁다.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베기 전의 그런 전율에 한층 기분이 들떴다. 

여자의 손이 사타구니 주위를 맴돌더니, 드디어 입술로 여의봉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손은 아랫배와 가슴을 넘나들며 알맞게 자란 털을 어루만지며 쇼군의 절정의 순간을 유도한다. 쇼군은 오랜만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여걸처럼 콧대 높은 마사코의 헌신적인 공세에 요리모토는 숲 속에 있는 에로스 궁전보다 이빨이 난 더 황홀한 천국의 요람(搖籃)에 단비를 흠뻑 뿌리고 말았다. “어째 이렇게 빨리? 기분 좋으셨어요?” 마사코는 끈적하고 뿌연 생명의 물을 꿀꺽 삼켰다.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소중하고 깨끗이 정리했다. 쇼군의 물건이 적장을 사로잡은 장수처럼 화려하게 용맹을 떨치더니, 마사코의 리드미컬한 공세에 그만 나가떨어진 것이다. 사쿠라 꽃의 절정처럼 화려했지만 금세 풀이 죽어버린 사내의 축 늘어진 물건을 보면서 여인은 욕망의 불길을 다시 재촉했다. 그녀의 요술에 못 이기는 체 다시 고개를 쳐든 물건의 머리를 잡고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자신의 동굴에 집어넣었다. 사내는 그 속이 너무 황홀하다.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이 뜨거우면서도 감미롭고, 조이면서도 부드럽게 그를 환영해 주는 것이다. 마사코는 두 손으로 다시 쇼군의 가슴을 짚고 사내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天照)가 하강하듯 내려왔다. 사내는 여인의 봉긋한 두 봉우리가 얼굴로 다가오자 양손으로 지긋이 잡고 앙증맞은 꼭지를 번갈아 빨고 잘근 잘근 깨물기도 한다. 그러다가 붕긋한 두 엉덩이 사이에서 요동치는 자신의 성난 백말을 깊숙이 몰아넣으려고 용을 쓴다. 날카로운 침을 가진 벌을 영접한 활짝 핀 장미는 자기의 향기로운 꿀을 듬뿍 뿜으며 독침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황홀한 장미꽃 암술들이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천상의 희열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자 독침은 제대로 쏘지도 못한 채 향기로운 꿀단지에서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스러져 갔다. 두 차례의 경기가 다다미(疊) 바닥에서 낭자하게 치러진 것이다.

요리모토가 오래간만에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자, “시즈카를 당신 여자로 만들면 어때요?” 마사코가 요리모토의 배 위에서 내려오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불쑥 내뱉었다. 쇼군은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쇼군이 되받았으나, 자기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무안한 마음이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하오리(羽織 : 옷 위에 입는 겉옷)를 걸치고 서재를 빠져나갔다. 마사코는 예상한 듯 담담하게 남편의 싸늘한 뒷모습에서 울고 있는 시즈카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마사코의 끈질긴 설득에도 별 효험 없이 여자 무희에겐 생명과도 같은 머리를 깎인 채 시즈카는 교토로 유배되었다.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려 교토가 온통 설국(雪國)이 되었는데, 교토의 은각사(銀閣寺 : 긴카쿠지)에 어머니와 함께 유폐가 된 것이다. 모녀는 비구니로 위장해 쇼군이 보낸 역시 비구니로 변신한 호위무녀(武女)의 처절한 감시를 받으며 교토에서 살도록 허용되었다. 예술 특히 춤을 아끼는 마사코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배려된 것 같으나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교토 그것도 은각사 주위가 감시하기 가장 쉬워서 혹시 그녀를 만나러 요시츠네가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즈카는 마사코와 요리토모의 딸 오오히메(大姬)로부터 많은 보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그녀의 행적은 기록이 없고, 다만 전설에 따르면 자결했거나 얼마 되지 않아 요절했다고 한다.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니이가타 토치오시(新潟栃尾市) 라는 곳에 시즈카 고젠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이 있다고 한다. 시즈카 고젠이 마지막까지 요시츠네와 함께 하려고 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히라이즈미(平泉)로 가려했지만 병에 걸려 사망하는 바람에 그곳에 무덤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